이재명 살아나자 다시 살아난 ‘기본소득제’ 이슈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7 10:00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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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도 “기본 취지 공감” 화답
차기 대선 어젠다로 떠오를 듯

“잡다한 복지 프로그램을 없애고 현금으로 소득을 보전해 주는 단일 프로그램으로 대체돼야 한다.”-밀턴 프리드먼(미국 시카고학파의 리더 격)

“나는 모든 미국인이 적어도 최소한의 생활수준은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버니 샌더스(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우리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검토해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누구에게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충격흡수 장치가 생기는 셈이다.”-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CEO)

해외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4차 산업혁명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것이 바로 기본소득제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로 인한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해법으로 기본소득제는 처음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일러스트 정찬동
ⓒ일러스트 정찬동

이재명, 2016년 기본소득제 책까지 번역

기본소득제가좌우 양쪽 진영에서 모두 환영을 받는 이유는 제도의 양면성 때문이다. 진보진영에서는 국가가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해 줌으로써 자유와 평등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보수진영은 복잡한 사회보장제도 관리비용을 줄여 행정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적극 도입하려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에선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제 전도사’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성남시장 재직 시절 무상공공산후조리원, 무상교복과 함께 부분적 기본소득제인 청년배당을 제도화하면서 이 지사는 이 이슈를 선점했다. 애써 외면해 왔던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해 소비가 급속도로 위축되자 재난지원금 성격의 기본소득제를 일부 도입하면서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 지사가 기본소득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대선을 앞둔 정략적 성격의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지사는 2016년 기본소득스페인네트워크 대표인 다니엘 라벤토스 바르셀로나대 교수(경제학)가 쓴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를 번역하기도 했다. 책에서 저자는 “기본소득은 복지와 마찬가지로 빈곤을 없애자는 제안이지만,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빈곤을 없애는 것은 자유의 실현을 위한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제가 좌파진영의 어젠다가 아닌 우파진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기본소득제는 여권의 선거전략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략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화답하면서 정치권의 관심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7월14일 니어(NEAR)재단이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 조찬 강연에 참석해 “한계를 명확하게 구분 지어 특정 계층을 상대로 일정 금액의 기본소득제로 확정해 시행하면 저소득층이나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또 “재원 마련 등 현실적 문제로 처음부터 논의를 차단해서는 안 된다”면서 “중요한 것은 어느 범위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 위원장이 비판한 것은 기본소득제 반대론자들의 주요 논리다. 반대론자들은 기본소득제가 자칫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동과 무관하게 소득이 가계에 지급될 경우 노동시간당 통화가치가 감소해 경제활동 참가율과 산출량이 줄어든다. 그 결과 세율이 인상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생필품 및 서비스 수요 증가도 인플레이션 압력 요인이 될 수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의 지적처럼 재원 마련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찬성론자들은 재원 마련을 위해 소득 상위 1%와 고가 소비재에 대한 누진세를 높이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배당 등에 대한 중과세 등 조세제도도 손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세 저항은 불가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정부 역시 기본소득제 도입에 부담을 느껴왔다. 정부가 기본소득제 대신 전 국민 고용보험 카드를 들고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사회안전망 강화 방안으로 “2025년까지 일하는 전 국민에게 고용보험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 지사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남아 있어 경우에 따라 기본소득제 논의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지사와 관련된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 조치되면서 동력이 살아났다. 기본소득제와 관련해 이 지사의 의지는 매우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대선판에 본격 뛰어들 경우 기본소득제를 놓고 정치권은 더욱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가 4월7일 광화문광장에서 국민 재난기본소득을 1인당 200만원씩 모든 국민에게 지급할 것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가 4월7일 광화문광장에서 국민 재난기본소득을 1인당 200만원씩 모든 국민에게 지급할 것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증세 등 재원 마련 놓고 사회 갈등 커질듯

이 지사는 7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미 재난기본소득(재난지원금)에서 체험한 것처럼 국민소득과 소비로 연결시켜 복지와 경제 활성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으로 전액 지급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제와 토지세 개념을 합친 이 제도에 대해 이 지사는 “토지불로소득 환수로 부동산 투기 억제, 증세와 복지 확대 및 불평등 완화 등을 이뤄낼 수 있으며 일자리와 소비 축소로 구조적 불황이 우려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제 활성화 등 다중복합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야권의 차세대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 의원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기업에 ‘로봇세’를 부과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원 마련의 구체적인 방법에서 차이를 보일 뿐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해서는 큰 틀에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위해선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2016년 스위스에서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최종 부결 처리된 것도 당장의 재원 마련 없이 성급하게 도입될 경우 미래 세대의 곳간을 축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전형적인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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