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실검 전쟁’ 또 시작됐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8 14:00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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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취임 100일 시작으로 3년째 계속되는 진보와 보수의 ‘검색어 1위’ 전쟁

“2시 땡 하면 시작합니다” “현재 5위입니다, 화력 집중” “내일 실검 제안합니다!”. 7월22일 오후 한 네이버 카페에서 만든 ‘세금폭탄 문재인탄핵’ 키워드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0분이었다. 이날 오후 2시 정각 ‘실검 올리기’를 시작한 지 약 20분 만에 단어는 10위권에 진입하더니 이내 1위에 올랐다. 카페엔 실검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참여를 촉구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고 최숙현 선수 관련 국회 청문회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국회 대정부질문 등 동시간대의 뜨거운 이슈들을 어렵지 않게 제쳤다. ‘세금폭탄 문재인탄핵’은 그렇게 4시간 가까이 실검창에 머무르다 서서히 10위권을 벗어났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에 항의하는 회원 1만700여 명이 모인 네이버 카페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이하 617 피해자모임)은 6월30일부터 연일 이른바 ‘실검 챌린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활동은 평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하며, 검색어는 회원들로부터 제안을 받아 최종 결정한다. 이들은 6월30일 ‘617 소급위헌’을 시작으로 그간 ‘김현미 장관 거짓말’ ‘문재인 지지 철회’ ‘조세저항 국민운동’ ‘3040 문재인에 속았다’ 등을 단숨에 실검 1위로 띄웠다. 지난 7월20일엔 이들이 ‘문재인 내려와’라는 검색어를 올리자, 문 대통령 팬카페와 트위터를 중심으로 ‘문재인 힘내세요’를 띄우며 맞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전혀 상반된 이 두 키워드는 이날 종일 실검 차트 1·2위를 다퉜다.

조국→총선→부동산으로 이어진 전쟁

포털 실검창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대결장이 된 건 3년 전부터였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인 2017년 8월17일, 문 대통령 지지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중심이 돼 네이버와 다음 포털에 ‘고마워요 문재인’을 실검 1위로 올렸다. 그러자 야당에선 여론조작이라며 맹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후 양 진영 지지층이 ‘실검 대 실검’으로 정면충돌한 건 이듬해 1월24일 문 대통령의 생일날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당시, 생일 선물로 ‘평화올림픽’을 실검 1위에 올리는 지지자들의 행동에 맞서 일부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서 ‘평양올림픽’을 실검에 띄우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이날 새벽 1시경 시작한 실검 다툼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잠잠해졌다.

그 후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실검 전쟁은 지난해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절정에 이르렀다.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이 있던 8월부터 조 전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12월말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진영 간 실검 경쟁이 벌어졌다. 가장 뜨겁게 맞붙은 날은 조 전 장관에 대한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이 벌어진 8월27일이었다. 오후 2시 ‘조국힘내세요’ 키워드가 네이버 실검 순위 20위에 오른 뒤 1시간여 만에 1위로 수직상승하자, 이내 반대층은 ‘조국사퇴하세요’ 키워드를 단숨에 3위까지 끌어올렸다. 집회가 한창이던 10월7일에도 ‘조국구속’과 ‘조국수호 검찰개혁’이 2시간 간격을 두고 1위를 주고받았다.

이처럼 실검 조작이 과도하게 용이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포털 다음은 지난 2월 실시간 검색어 기능을 전면 폐지했다. 다음 측은 “실시간 이슈 검색어가 자연스러운 결과를 보여주고자 하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결과의 반영이 아닌 ‘현상의 시작점’이 됐다고 판단했다”고 폐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양 진영은 네이버로 화력을 집중해 실검 경쟁을 이어갔다.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보수 지지층을 중심으로 개표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실검을 띄우기도 했다.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 여론이 많아지면서, 최근 들어 일부 보수 유튜브 또는 정치인이 제기한 음모론에 가까운 키워드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 1월 김정숙 여사의 지인이 부동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된 후 돌연 ‘김정숙 5000억’이 실검을 장악하기도 했다. 또한 3월1일엔 ‘조선족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과 함께 ‘차이나게이트’가 ‘삼일절’ 키워드를 꺾고 종일 실검 1위에 올랐다. 이들 키워드는 주로 검색량이 적은 새벽 2~5시 사이 빠르게 1위를 차지해 그날 저녁까지 상위권을 지키는 흐름을 보였다.

실검 1위엔 고도의 ‘기술’ 필요

실검을 올리는 방법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기술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617 피해자 모임에서도 실검 올리는 방법을 자세히 적은 게시글이 매일 소개되고 있다. 모바일로 사용할 경우 한 번만 집계되는 와이파이가 아닌 데이터로 연결해야 하며, PC의 경우 크롬 앱을 사용해 ‘시크릿 모드’로 전환한 후 검색하도록 하는 등 방법이 구체적이다. 여기에 실검 통일을 위해 띄어쓰기에 유의하라는 주의사항과, 검색 후 관련 기사를 클릭해 10초 이상 유지하라는 상세한 팁도 전하고 있다. 이는 아이돌 팬덤에서 오래전부터 공공연히 사용했던 방법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네이버는 ‘드루킹 사건’으로 실검 조작 논란이 커지자 실검 집계 시스템을 좀 더 까다롭게 개편했다. 한 사람이 1분 내에 특정 키워드를 2회 이상 입력할 경우, 1번만 입력한 것으로 카운트되며, 네이버 로그인을 해야만 검색 횟수가 집계되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특정 실검 올리기에 주력하고 있는 이들은 이를 피할 방법을 발견해 활발히 공유하고 있다.

현재 실검창은 포털 기사 댓글 또는 블로그 게시물에 비해 불법적·편향적 내용을 ‘필터링’할 만한 시스템이 부재하다. 구조상 실검을 자의적으로 걸러낼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또 다른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커 네이버 측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매크로(자동 프로그램) 실검에는 대응하겠다면서도 “사람이 직접 입력하는 키워드는 개인 의사에 따른 것이다. 마케팅이나 팬클럽 등 카테고리별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네이버 관계자 역시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급상승 검색어(실검)는 본래 사용자가 긴급하게 알아야 할 이슈, 평소 관심 못 받던 이슈들이 수면으로 올라오면서 널리 관심을 받고 공유되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알고리즘도 절대 검색량이 아니라 상대적인 검색 상승량으로 순위가 매겨지게 설계돼 있다”고 설명하며 “본래 만들어진 취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실검을) 바라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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