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영화 《소리꾼》과 《미녀와 야수》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9 16:00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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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감독의 영화 《소리꾼》을 연이어 다섯 번 봤다. 상업성과 거리가 먼 주제로 영화를 만드느라 어려움이 많다는 소문을 듣던 중이었고, 하필이면 코로나19로 극장이 텅텅 비는 시즌에 개봉한다니 무엇보다 ‘응원단’ 마인드로 마주한 영화였다.

피눈물 나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얼얼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낸 《소리꾼》과의 첫 만남이 참 좋았다. 그리고 ‘영화 번개’를 주선하면서 연거푸 봐도 지루하기는커녕 더 좋아졌다. 분명 팔이 안으로 굽는 ‘팬심’ 때문이었을 수 있지만, 좋은 공연 같은 영화의 여운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었다.

영화 《소리꾼》의 한 장면 ⓒ(주)리틀빅픽처스
영화 《소리꾼》의 한 장면 ⓒ(주)리틀빅픽처스

영화 《소리꾼》은 판소리의 태동기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 권력과 결탁한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된 아내를 구해 내기 위해 눈먼 어린 딸을 데리고 길을 나선 소리꾼 학규가 ‘심청’의 이야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담은 음악극 영화다. 가상의 이야기 구조 위에 《심청가》와 《춘향가》의 소리 조각을 결합해 감독이 생각하는 판소리의 역사를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 소리꾼과 고수의 대화, 일상의 움직임, 청중들의 의견과 반응 등이 하나둘씩 삽입되는 사례들이 자연스럽게 제시돼 ‘아! 판소리가 이렇게 만들어졌겠구나. 그러니까 판소리는 어느 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모두의 노래였구나. 이 시대의 노래였구나’라는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또 영화를 보는 내내 《심청가》와 《춘향가》의 주요 소리 대목들을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판소리는 본래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이야기의 장면 장면을 실감 나게 소리로 표현하는 극적인 노래다. 어떤 무대 장치나 자막 서비스 없이 오직 소리와 몸동작만으로 내용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소리꾼들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물의 생김새,  멀고 가까운 풍경, 기쁨과 슬픔, 분노와 탄식 같은 감정은 물론, 사람 사는 세상의 ‘도리’와 있어서는 안 될 ‘비리’의 이면까지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조정래 감독은 이런 판소리 특유의 디테일을 소리 원작과 영상으로 균형감 있게 담아냈다.

영화에서의 소리는 실제 판소리를 전공했고, 종종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인 이봉근이 주연으로 캐스팅돼 현장에서 직접  했는데, 영화 맨 마지막 부분에서 부르는 《심봉사 눈뜨는 대목》의 소리가 대단하다. 워낙 명곡이긴 하지만, 영화 《소리꾼》의 맥락 안에서 가장 돋보이는,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봉근의 노래로 재탄생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흥행은 부진하다. 아직 몇 군데 극장에 걸리고는 있지만, 하루 관객 수가 천 명을 밑도는 수준이고, TV-VOD를 동시에 개봉하며 ‘관객 50명만 모인다면 감독과 배우가 어디든 찾아가겠다’는 이벤트까지 진행하며 힘겹게 힘겹게 상영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 《소리꾼》이 임권택 감독의 판소리 영화 《서편제》(1993)와 《춘향뎐》(2000)에 이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되기를 응원했던 입장에서 많이 아쉽다. 제작 단계에서 부닥쳤을 재정 문제, 개봉 이후 상영관의 스크린 수와 상영시간 분배 문제 등 감독의 열정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웠을 문제들이 눈에 선하다. 

판소리로 ‘음악극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조정래 감독의 생각을 읽으며, 먼저 떠오른 것은 옛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빌 콘돈 감독의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2017)였다. 총 제작비 1억6000만 달러(1797억원)를 들여 동화 속의 환타지를 상상 이상으로 멋지게 구현해 낸 음악영화 《미녀와 야수》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됐을 때 500만 명이 넘는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다. 제작비 규모와 흥행지수,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압도적이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자니, 응원과 기대만으로 《소리꾼》 얘기를 마무리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이라도 영화 《소리꾼》이 좋은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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