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문학촌 촌장이 된 이순원의 장편소설 《춘천은 가을도 봄》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9 12:00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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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의 도시에 스며든 유신시대의 삶과 사랑

후일담 소설이라는 장르가 문단을 풍미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공지영, 김인숙, 권여선, 공선옥 등이 그 장르를 주도했다. 주로 여성 작가들이었다. 하지만 후일담이라는 말이 주는 데카당스(퇴폐주의)한 분위기가 싫어 작가들은 은근히 이 표현을 싫어했고, 평론계에서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삶에 새겨진 상처를 핥으면서 이야기를 꾸미는 것도 소설가에게는 숙명이다.

그런데 사반세기가 넘은 최근에 오십 중반의 소설가들이 다시 과거를 이야기하는 흥미로운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소설이 이순원이 최근 출간한 《춘천은 가을도 봄》과 공지영의 《먼바다》 등이다. 중년 작가를 대표하는 남녀 작가군에 속한 두 사람이 모두 첫사랑을 소재로 한 것이 특이하다. 다만 공지영은 그 사랑이 재회한 이야기다. 이순원의 소설 속에서는 이별까지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최근 춘천에 위치한 김유정 문학촌의 촌장을 맡으면서 대학 시절을 보낸 춘천에 정주하는 작가를 만나봤다.

《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이룸 펴냄│364쪽│1만4000원 ⓒ조창완 제공
《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이룸 펴냄│364쪽│1만4000원 ⓒ조창완 제공

첫사랑과의 이별까지를 다룬 후일담 소설

소설은 주인공 진호가 처음 입학한 서울의 대학(고려대)에서 유신 반대 선언문을 뿌리는 모임에 참석한 후 제적 처분을 받고, 1977년 3월 춘천에 있는 강원대에 입학할 때가 배경이다. 그에게는 시대는 물론이고, 고향 명진(강릉)에서 양조장을 경영해 부자가 된 집안까지 모든 것에 저항하고 싶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그 이야기 속으로 용기 있게 들어간다.

“흔히 말하는 386세대의(지금은 586세대)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앞서 유신세대의 학원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다룬 소설은 많지 않다. 학원에서의 사랑 이야기는 더더욱 그렇다. 80년대보다 더 폭력적이고 숨 막힐 것 같은 당시 상황에서도 젊은이들은 사랑하고, 또 불안 속에서도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걱정했다. 그 사랑의 상대가 출생 신분만으로도 손가락질을 받던 혼혈아여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실제로 책은 진호가 학보사에서 일하면서 만난 혼혈아 입학생 채주희를 만나 사랑을 키워가고, 마지막에는 피치 못하게 떠나는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주희에 대한 사랑 못지않은 게 춘천에 대한 사랑이다. 이 소설 속 춘천의 지명은 실제에서 가져왔다. 조운동, 명동, 팔호광장은 물론이고 커피숍 이디오피아, 복성원, 팔호광장 분식 등은 여전히 춘천에서 낡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반면에 몽마르뜨, 소리전파사, 봄내 경양식 등처럼 이제 상호에서 찾을 수 없는 곳도 있다. 그 애정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을 물어봤다.

“외지에서 춘천으로 오는 사람에게 꼭 둘러보라고 말하고 싶은 곳이 공지천이다. 그곳의 ‘이디오피아 집’에서 강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셔보라고 말하고 싶다. 또 지금 내가 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유정 문학촌에도 꼭 한번 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춘천의 이면에는 고향 명진도 있다. 그곳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통대 의원(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인 아버지와 이데올로기의 사슬을 감고 살아가는 수재 출신 당숙을 비롯해 형과 동생들이 존재한다. 진호의 집안은 지방의 유지였지만, 서울대에 입학한 수재인 여동생 정혜가 그렇듯 그들 역시 세상의 또 다른 먹이사슬 속에서 괴로워하고 고통받는다.

“대학생이 되면서 만났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사건(1974년 12월), 김상진 할복 사건(1975년 4월), YH사건(1979년 8월) 등과 내 삶은 무관할 수 없었다. 거기에 유신헌법으로 만들어진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원으로 나서는 아버지 등은 결국 예민한 진호에게 참담한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고, 그 상황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렇게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개인의 이야기지만 시대라는 요소를 작가는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순원의 작품 중에는 새로운 지명을 갖게 한 《은비령》 등 낭만적인 소설이 많았다. 이번 소설은 그의 창작 세계에서 어떤 의미일까.

“내게는 자전적 느낌의 소설이 여러 편 있다. 유년의 기억을 담은 작품이 《수색 그 물빛 무늬》다. 청소년기의 기억을 담은 작품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지금도 실리고 있는 《19세》이고, 우리나라 초·중·고 교과서에 동시에 실렸던 작품인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역시 그 안에 상당 부분 자전적 요소가 있다. 《수색 그 물빛 무늬》나 《19세》와는 주인공의 집안 배경이 다르지만, 1970년대 후반 춘천에서 대학 생활을 한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소설 역시 내 청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담은 자전적 소설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후일담의 느낌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요즘 이 작가는 생활의 대부분을 경춘선 김유정역 인근에 자리한 김유정 문학촌에서 한다. 김유정 문학촌은 춘천을 넘어, 우리 문인들에게 다양한 정감을 주는 곳이다. 주변 금병산을 돌아보고, 김유정 문학촌을 돌아보면 그의 작품들이 떠올라 빙그레 웃음이 나는 곳이다.

 

“김유정 문학촌, 춘천의 문학 허브로 만들 것”

“이곳 실레마을은 김유정 선생 작품의 산실이다. 선생의 많은 작품이 이곳을 무대로 쓰였다. 한 작가의 작품이 사후 80년이 지나 세계적인 문학마을로 변했다. 세계에 한 작가의 작품과 마을이 거의 백 년이 지난 다음까지 이렇게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호흡하는 곳은 없다. 선생의 작품도 세계로 알려나갈 것이지만, 애초 작품의 무대이기는 했으나 그게 점점 발전해 김유정의 작품과 이름으로 하나의 마을이 이루어진 이 현상도 세계적인 문화상품이다. 이 멋진 상품을 국내외에 더 널리 알려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곳 김유정 문학촌이 낭만과 문학의 도시 춘천의 문학적 허브가 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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