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북 김씨…말없이 갔지만 흔적은 남았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7.31 16:00
  • 호수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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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월북 탈북민’ 김씨의 정체…“월북자 백이면 백 전부 후회”

20대 청년이 대한민국 안보체계를 뒤흔들고 자취를 감췄다. 7월18일 월북한 탈북민 김아무개씨(24) 얘기다. 경찰은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던 김씨가 월북한 뒤에야 행방을 쫓았다. 군은 김씨의 탈출 루트를 감지하고도 그를 놓쳤다. 통일부는 북한이 김씨의 재입북 사실을 보도한 뒤에야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의 정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관계 당국의 발표와 김씨 지인들의 입을 통해서다. 김씨 자신이 SNS에 남긴 흔적도 발견됐다. 탈북한 그는 왜 월북한 것일까. 또 월북 이후 북한에서 그의 삶은 어떻게 될까. 김씨의 행적을 추적했다. 

강간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20대 탈북민 김아무개씨가 월북한 가운데 7월27일 그가 거주하던 김포의 한 임대아파트 현관문에 우편물 도착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강간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20대 탈북민 김아무개씨가 월북한 가운데 7월27일 그가 거주하던 김포의 한 임대아파트 현관문에 우편물 도착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1. 김씨는 누구?…3년 전 ‘수영 탈북’ 청년 

김씨는 개성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이후 2017년 6월18일에 탈북했다. 지난 6월 유튜브 채널 ‘개성아낙’에 출연했을 때 탈북 계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개성공단이 깨지면서 장사가 잘 안됐다. 약초를 캐봤지만 단가가 안 맞고 돈 벌기가 힘들었다.”

일각에선 김씨가 강화도 서쪽에 있는 교동도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보도했다. 반면에 김씨는 유튜브에서 “수영을 한참 하다가 유도를 지나 분계선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유도(留島)는 김포시 북쪽(월곶면 보구곶리)에 있는 외딴섬이다. 교동도와는 약 18km 떨어져 있다. 김씨가 귀순했을 당시에도 군 당국은 “김포반도 북단 한강하구 지역을 통해 들어왔다”고 발표했다. 이곳은 북한 해안과의 거리가 2.5km에 불과하다. 

김씨는 하나원(탈북민 정착지원사무소)을 수료한 뒤 김포시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게 됐다. 정부가 제공한 집이다. 남한 정착 3년째이던 7월18일 김씨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2. 어떻게 월북?…작은 체구로 감시망 뚫어

김씨가 북한으로 넘어갈 때 이용한 루트는 탈북 때와 일부 겹친다. 7월31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김씨는 18일 오전 2시20분쯤 인천 강화도 월곳리의 정자 ‘연미정’ 주변을 통해 월북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연미정 주변의 배수로를 기어 나갔다고 한다. 배수로는 지상의 철책 밑을 가로질러 뚫려 있다.

당시 배수로는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왜소한 체구의 김씨는 이를 모두 벌리고 나갔다. 김씨의 키는 163㎝, 몸무게는 54㎏이다. 김씨는 불과 10여분 만에 배수로를 통과한 뒤 한강에 뛰어들었다. 군 당국은 김씨가 물 속에서 구명조끼 등 수영 장비를 착용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3년 전 귀순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스티로폼 등 부유물을 양팔에 끼고 헤엄쳐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터득한 ‘수영 탈북’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이번에 김씨는 한강을 헤엄쳐 김포 유도를 거쳤다. 이 역시 김씨가 귀순할 때 지나쳤다고 밝힌 섬이다. 그는 유도를 경유해 개성시 개풍군 탄포 지역 강기슭에 18일 오전 4시경 도착했다. 연미정에서 직선거리로 약 5km 떨어진 곳이다.

김씨는 미리 월북을 철저히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월북 전날인 7월17일 강화도와 교동도 등을 방문했다. 탈출 경로를 사전 답사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편 김씨의 월북 루트가 드러나면서 군 당국의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17일 김씨가 강화도∙교동도를 들렀을 때 군 CCTV에 포착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군은 자체 보유한 CCTV와 열영상관측장비(TOD) 등으로 강화도 북쪽 해안을 감시 중이었다. 그럼에도 김씨는 유유히 경계를 뚫고 탈출했다.

김씨가 그의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 ⓒ김씨 페이스북
김씨가 그의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 ⓒ김씨 페이스북

3. 왜 월북?…‘돈 문제’ ‘성폭행 혐의’ 등 추측 제기돼

김씨는 귀순 초반에 전문대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 지난해 중반부터 직장생활을 했다. 돈벌이에 나선 배경을 두고 김씨는 “(북한에 있는) 부모님을 한국에 모셔오고 싶어서”라고 개성아낙 유튜브 채널에서 밝혔다. 이와 관련해 채널 운영자 김진아씨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월북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지난해 남북하나재단이 탈북민 2만86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한 생활에 불만족하는 가장 큰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해서(27.6%)’를 꼽았다. 

경제적 사정도 거론된다. 북한 보위부(정치사찰 수행기관) 출신으로 2016년 탈북한 이진호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김씨가 김포에 살 때 집도 내놓고 빚을 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김씨의 하나원 235기 동기생들에게 들었다는 내용을 전제로 이와 같이 전했다. 김씨는 월북하기 직전에 직장도 그만둔 상태였다고 한다. 

김진아씨는 “(김씨가) 임대아파트 보증금 1500만원에다 미래행복통장, 취업장려금, 자동차 판 금액 등 대략 3000만~4000만원을 달러로 바꿔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매각한 자동차는 김진아씨가 김씨 앞으로 명의를 이전해 줬던 기아 K3였다. 

김씨가 성폭행에 연루되자 월북을 결심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씨는 6월12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7월4일 국과수는 증거물에서 김씨의 DNA가 검출됐다고 경찰에 통보했다. 김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DNA 검출 사실을 토대로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이후 7월21일 경찰은 김씨에 대한 구인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김씨는 이미 남한 땅을 떠난 뒤였다. 북한에선 성범죄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는 2018년 보고서에서 “북한 여성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러 보안소(경찰서)에 간다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유엔에 따르면 2015년 북한에서 강간죄로 처벌받은 사람은 5명뿐이었다.

탈북민 이진호씨는 “김씨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며 “여자친구를 폭행한 적도 있고 여자친구 차를 맡긴 뒤 빌린 돈을 갖고 도망가기도 했다”고 했다. 이 여자친구는 성폭행 피해 고소인과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이씨는 또 “김씨가 사석에서 친구들에게 ‘북한으로 도로 가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사전에 월북할 징후를 주변에 노출했던 셈이다. 

김씨의 탈북·월북 추정 경로
김씨의 탈북·월북 추정 경로

4. 그의 운명은?…“추방돼 감시받으며 살아갈 것” 

북한으로 돌아간 김씨는 어떻게 될까. 북한 안내통역원 출신 심하윤씨는 “자의로 재입북한 탈북자들이 체제 선전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 생활을 3~4년 경험했던 북한의 한 기업인은 전역에서 강연을 돌며 남한에 대해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 ‘사람을 죽이는 안기부가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다만 김씨가 강연자로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심씨는 “(김씨가) 중국을 통해서 탈북한 게 아니라 국경을 헤엄쳐 건넜다고 하는데, 이는 38선이 뻥 뚫렸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라며 “(김씨가 강연을 하면) 북한의 경계가 허술하다는 게 들통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 “북한이 전면에 내세우려면 말을 잘해야 하는데 김씨는 너무 어눌하다”고 지적했다. 김진아씨 또한 김씨에 대해 “정말 착하고 어리바리한 친구”라고 묘사했다.

일단 김씨를 바라보는 북한의 태도부터 호의적이지 않다. 7월26일 조선중앙통신은 “악성 비루스(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월남 도주자’ ‘불법적으로’ 등 부정적 표현이 등장한다. 그 밖의 신원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보도에 인용된 월북자를 김씨로 특정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임지현씨의 재입북 때와 대조적이다. 임씨는 2014년 탈북해 국내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다가 2017년 월북했다. 북한은 그를 대외선전 매체에 출연시켰다. 임지현은 해당 방송에서 자신의 실명을 ‘전혜성’이라고 밝히며 “남조선 생활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주장했다. 북한 매체는 “따뜻한 품으로 돌아온 전혜성”이라며 그를 감쌌다.

탈북민 유튜버 ‘아오지언니’는 “월북한 사람은 백이면 백 전부 후회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남한에서 갖고 간 달러로 고향에서 잘살 수 있을 거라 믿었겠지만, 북한 당국은 개인이 달러를 갖고 있는 걸 발각하면 즉시 회수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김씨가 달러를 환전했다는 정황이 이미 국내 보도를 통해 드러난 상황이다. 보위부 출신 탈북민 이진호씨는 “김씨는 지방으로 추방돼 보위부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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