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은 이제 CBD 아닌 CRD다 [김현수의 메트로폴리스 2030]
  • 김현수 단국대 교수(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8.09 11:00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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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놀면서, 거주하는 장소로 사람들 모여…청년들 정착할 만한 지방 거점 조성해야

코로나19 이후 전통 제조업이 위기에 직면한 반면, IT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눈에 띈다. 지난달 미국 나스닥지수를 사상 처음으로 1만 선까지 밀어올린 것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다. 이들 기업은 코로나 팬데믹 선언 이후 6월말까지 주가가 평균 45% 올랐다. 빅테크 기업들이 화려한 성적을 거두는 것과 달리 전통적인 제조기업들은 매출이 반 토막 나는 수모를 겪고 있다. 포드자동차는 2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앞서 제너럴모터스(GM)도 사정이 비슷했다. 르노·닛산·미쓰비시 3사 연합은 2분기에 6조원이 넘는 대규모 손실을 봤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있는 판교테크노밸리 ⓒ시사저널 우태윤
네이버와 카카오가 있는 판교테크노밸리 ⓒ시사저널 우태윤

대도시로, 도심으로 모여드는 성장기업들

우리나라에서도 바이오와 배터리, 인터넷과 게임 등 ‘언택트’ 문화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분야의 기업들이 약진하고 있다. 특히 카카오, 네이버, 엔씨소프트의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고용노동부가 7월30일 발표한 6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영업일 기준으로 제조업에 속한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전체 종사자 숫자는 365만2000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7000명(2.1%) 줄어들었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산업 간 구조조정이 이루어져 왔는데 코로나19가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역 간 격차가 심해지고, 성장기업들은 대도시로, 도심으로 모여든다. 신성장 산업은 정보통신업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전국에는 총 60만 명의 정보통신업 종사자가 있는데, 이 중에서 48만 명이 수도권에, 그중 36만 명이 서울에서 일한다. 연구개발서비스 전문기업 인력이 2018년 1년간 2만4000명 증가했는데 서울에서 1만 명, 인천에서 900명, 경기에서 1만2000명 늘어났다.

산업단지가 대도시로, 도심으로 들어온다. 항만의 산업단지, 외곽 공업지역의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첨단화, 소프트화된 기업, 연구소, 스타트업과 벤처회사들은 도심으로 모여든다. 대학 캠퍼스만 한 판교테크노밸리의 매출이 90조원이라고 하니, 국가산업단지 10여 개 규모다. 이런 기업들이 도심에 입지한다고 해서 주변 환경과 충돌하지 않는다. 주거와 생산, 경제활동의 장소가 가까이에서 복합화되어 간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있다. 주택과 일자리가 혼합되고 있으며 도시의 일자리에는 재미와 쾌적함까지 요구되고 있다. 

도심을 CBD(Central Business District·중심상업업무지구)라고 했는데 이제 CRD(Central Recreational District·도심첨단산업단지)라고 부른다. 재미와 쾌적함을 찾는 혁신인력, 경제활동의 새로운 주체인 창조계급들은 일하면서(work), 놀면서(play), 거주하는(live) 그런 장소를 찾아서 모인다. 뉴욕의 폐철도를 활용한 하이라인(High Line) 주변으로 도심 상권이 살아나고 혁신기업들이 모인다. 혁신인력들은, 밀도가 높은 지역을 선호한다. 자기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교류하고 생각을 섞어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또 대중교통의 환승결절에 잘 모인다. 지하철 환승역이면서 버스터미널이 집적하고, 쇼핑과 레스토랑, 미술관과 카페가 많은 그런 곳에 혁신인력들이 잘 모인다.

이제 기업들은 혁신인력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찾아간다. 구글과 아마존이 뉴욕으로 움직이고, 카카오와 네이버가 판교에 둥지를 틀었다.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은 철도망과 문화, 쇼핑, 예술, 혁신기업, 공공임대주택을 잘 섞어 놓은 가장 성공적인 도심첨단산업단지다. 여기에 구글, 삼성과 같은 혁신기업, 미술관과 박물관, 예술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즉, 일자리가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 과거에는 항만과 도로, 공장을 만들면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들이 기업을 따라 움직였다. 보스턴의 켄달스퀘어, 시애틀의 사우스레이크 유니언, 바르셀로나의 포블레노우 등은 성공적인 혁신지구의 사례로 꼽힌다. 마포 공덕동에 입지한 프론트원은 스타트업 지원센터로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규모다. 공항철도 등 4개 철도가 환승하며, 도심 접근성이라는 입지적 잠재력과 인근의 행복주택 공급도 큰 장점이다. 대중교통과 접근성, 어메니티와 저렴한 임대료 등의 조건을 공급해 주는 것이 도심첨단산업단지의 성공 요인이라 말할 수 있다.

서울 마포 공덕동에 있는 스타트업 지원센터 프론트원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마포 공덕동에 있는 스타트업 지원센터 프론트원 ⓒ시사저널 이종현

도심첨단산업단지는 균형발전 뉴딜의 핵심전략

그런데, 도심첨단산업단지는 아무데서나 만들어지기 어렵다. 산업단지는 철도와 도로, 항만과 공항 등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제일 중요한 조건이다. 도심첨단산업단지는 혁신인력이 즐기고, 일하고, 모이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주위에는 대학이나 기업, 연구소가 집적해 있어야 하고, 이런 사람들을 빈번하고 즐겁게 만날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 어메니티가 갖추어져야 한다. 더욱이 대도시와 빠르게 접속할 수 있는 환승역도 인접해 있어야 한다. 결국 이런 장소는 대도시, 광역시의 고속철도 역세권이 제격이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산업이 다시 대도시로, 도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이동과 변화의 핵심은 생산양식(mode of production)이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공장으로 이동하던 생산 장소(place of production)와 방식이 이제는 도심의 혁신공간, 도심첨단산업단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다. 특히 청년들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2019년 수도권으로의 순유입이 8만 명인데 80%가 취업과 교육 문제로 움직인 청년들이었다. 즉, 지방 대도시에 이들이 안정감 있게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와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일자리, 교육, 문화, 복지 등 환경 수준을 갖춘 소수의 거점을 광역시 등 지방 대도시의 중심지에 조성해 서울로 빠져나가는 청년들을 정착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는 지금 20년 전 국가균형발전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당시에는 고속철도나 5G통신이 없어 ‘지리적 균형’으로 국토를 보았다. 지리적 중심에 세종시를, 그 주변의 동심원에 혁신도시 10개를 배치했다. 지금은 5G통신으로 플랫폼기업이, 고속교통으로 국토 공간이 초연결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대도시로, 수도권으로 청년들이 몰린다. 인구와 성장산업을 소수의 지방 대도시 거점으로 모아주는 일이 균형발전의 초석이다. 진주에서 태어난 청년이 부산에서, 순천에서 자란 청년이 광주에서 일할 수 있는 그런 균형국토를 만들어 가자. ‘도심첨단산업단지’는 균형발전 뉴딜의 핵심전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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