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비하고 도전한 기업만 성장한다
  •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2 14:00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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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내외 산업 환경 변화 속 더욱 절실해지는 혁신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한국의 산업은 2010년대 중반을 지나며 급격한 둔화를 보이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언뜻 중국이 성장하면서 대중(對中) 수출이 감소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 압력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산업에서 여전히 대량생산 기반 제품의 비중이 높고,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요소투입형 성장에 기반하고 있으며, 혁신활동이 부진했던 게 좀 더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신흥국 시장에 주력하면서 몸집을 불렸으나 수요의 다양화와 세분화에 대응하는 제품 구조의 고도화와 생산방식 전환에 대부분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이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이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혁신 부진, 성장 둔화로 이어져 

생산 주체 측면에서도 한국 제조업은 일부 주력 상품과 수출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어 대외 여건에 대해 변동성이 크다. 실제로 40개 제조업 중 상위 10대 산업의 수출과 생산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대기업이 총 수출에서 80%를 점유하고 있어 특정 부문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제조업은 산업별로 성장 속도를 달리하면서 구조적인 변화를 보인다. 실제로 2000년에 우리 10대 수출산업에는 섬유, 컴퓨터, 가전, 통신기기 산업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2010년에는 이들 산업이 대부분 해외로 이전하고 디스플레이, 기계가 주력산업으로 부상했다. 

지난해에는 통신기기가 해외생산이 늘어나면서 10대 수출산업에서 제외되고 정밀기기와 특수목적 기계 산업이 진입했다. 지난 20년 동안 상위 10위를 유지한 산업은 반도체, 자동차, 화학, 정유, 철강, 조선뿐이다. 국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하면서 산업구조가 꾸준히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위 10위를 유지한 6개 산업 역시 산업 내 제품 구조는 부단히 변화했다. 반도체는 나노 단위의 첨단제품 개발을 선도해 왔다. 자동차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넓혀 가면서 세계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으며 자동차 전장부품의 경쟁력도 함께 높아졌다. 조선은 수리 조선에서 시작해 벌크선, 컨테이너선을 만들더니 LNG 운반선과 특수선에서 경쟁 우위를 구축해 왔다. 철강, 화학, 정유 역시 산업 성장에 필수적인 고기능성 소재의 비중을 점차 높여 가면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처럼 도전과 변화를 통해 성공한 기업 혹은 산업들은 단기적인 수익보다는 미래 트렌드에 대응해 과감하게 준비하고 투자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세계시장을 목표로 하는 경쟁 우위를 구축하기 위해 외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신사업 분야로 재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가 보유한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와 제조 경쟁력에 기반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면서 보다 높은 가치를 창출했다. 마지막으로 장기투자가 필요한 기술 개발과 인적 자본 확충으로 첨단소재, 정밀부품, 핵심장비, 그리고 고기능 제품으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완성하면서 진입장벽을 무너뜨렸다. 

이러한 변신은 부분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구조재편이라는 적극적인 목표를 갖고 이뤄졌다. 말 그대로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과 경쟁원리에 도전하면서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한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잘 만들어 시장에 판매하면 그만이라는 공급자 중심주의가 아니라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이에 잘 대응했다. 실제로 건강, 환경, 편리, 재미, 프리미엄, 개성과 같은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 혹은 산업이 성공했다. 

구조재편을 통한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생산구조 혁신과 제품 포트폴리오의 전환이 필요하다. ‘잘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잠재된 소비자의 요구를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첨단기술 적용과 아울러 문화적 요소를 결합한다면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도 보듯이 국가 브랜드 강화를 통한 글로벌 시장의 확대가 가능할 수 있다. 

 

새 패러다임에 도전하며 ‘대전환’ 꾀해야 

둘째, 국내 생산 여건을 개선해 고비용 구조로의 전환에 대응하는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촉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와 생산뿐 아니라 연구개발, 디자인, 엔지니어링, 마케팅, 해외수출 네트워크 확대 등 가치사슬 전반을 상향 이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가치사슬을 글로벌 관점에서 보고 기획, 연구개발, 디자인, 마케팅, 핵심 부품·소재 및 자본재 생산 등 다양한 활동을 국내외에 재배치하는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 

셋째, 지능정보 기술을 활용해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을 강화하고 플랫폼 전략을 통해 수요자들의 요구를 기업이 기민하게 포착하고 공급 시스템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 대전환의 시대에 주력산업에 대한 고도화는 기존의 빠른 추격자 전략에서 벗어나 선발자로서의 역량과 비전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과거 패러다임이 효율적 공급체제, 가격경쟁, 산업 혹은 기업 경쟁력을 중시했다면, 앞으로는 소비자 대응, 제품-서비스 융합 시스템의 경쟁, 유연한 사업재편과 적응역량의 강화가 관건이다. 

넷째,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원천기술 연구개발, 사업화, 인력 양성, 규제개혁 등은 산업정책과 긴밀하게 연계성을 갖고 통합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인력수요 구조·요구 역량에 대응하는 인력 양성과 재교육 프로그램이 강화돼야 한다. 특히 산업현장에서는 소프트웨어 및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으므로 대학 등의 인력 양성 체계가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업정책의 목표, 정책 대상, 정책수단, 추진체계에서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책 대상은 기존 기술에 최적화된 생산-수요-경쟁-제도-정책 패러다임의 전면적 전환을 목표로 해야 한다. 아울러 산업 생태계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정책수단은 기업 혁신을 위한 비즈니스 여건 조성, 패키지형 정책에 중점을 둬야 한다. 정책의 추진에서도 승자선발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목표설정 방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시장 실패에만 개입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기업들이 투자를 회피하거나 주저하는 리스크가 큰 기술과 프로젝트에 선제적 투자를 함으로써 미래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정부 개입에서 적기성과 정책 간 정합성을 도모해야 하지만, 민간 부문의 혁신역량을 강화하고 확산을 촉진해야 하며, 정책 개입에 의한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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