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지붕 위의 소들’ 수십km 섬진강 물살 헤치고 극적 생환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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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재씨 ‘소 3마리’ 50~70여㎞ 떨어진 하동·남해 바닷가서 구조
섬진강 물 속에서 2일 간 버티며 경남과 전남 사이 하구에 도착
소주인 “기적 같은 일에 감사…애지중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

전남 구례 한 축산 농가에서 침수로 떠내려간 소 3마리가 섬진강 하구 경남 하동과 남해의 바닷가에서 구조돼 무사히 생환했다. 이들 소는 구례읍 봉동리 양정마을 축산농가 조선재(58)씨의 지붕에서 차오르는 물에 어쩌지 못하던 이른바 ‘지붕 소’였다. 소들이 이동한 거리는 50~70km이며 2일 동안 물속에서 버텼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 구례읍에서 50여km 떨어진 경남 하동군 섬진강 하구 바닷가에서 발견돼 생환한 조선재(58)씨의 소.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구례읍에서 50여km 떨어진 경남 하동군 섬진강 하구 바닷가에서 발견돼 생환한 조선재(58)씨의 소. ⓒ시사저널 정성환

이들이 우사를 떠난 것은 지난 8일 오전 10시 50분쯤 집중 호우로 구례 서시1교 주변 제방이 무너지면서 1시간 만에 봉동리 일대가 5m 높이까지 침수되면서다. 소들은 물에 잠긴 외양간을 빠져나와 헤엄쳐 급히 피신했다. 하지만 이들이 마주한 것은 홍수로 성난 섬진강이었다. 소들은 세찬 물살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다가 섬진강 하구 바닷가 뭍에 닿아 소방당국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경남 하동소방서는 10일 오전 10시15분께 하동군 금성면 연막마을 갈사만 매립지 쪽 바다 경계선에서 암소 1마리가 표류하고 있다는 어선의 신고를 받았다. 하동 갈사만은 구례읍으로부터 50여km 떨어진 곳으로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장소다. 영남과 호남이 해상에서 접하는 곳으로 갈사만 서쪽에는 광양제철이 자리 잡고 있다. 김시종 119구조대장 등 대원 5명은 갈사만 제방 매립 탓에 육로 접근이 불가능하자 한 주민의 어선을 빌려 타고 현장에 출동했다. 

구조대원들이 신고 40여 분만에 갈사만에 도착하자 암소가 물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몸에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가끔 졸린 듯 눈을 감기도 했다. 탈진 상태였던 소는 구조가 시작되자 잔뜩 겁에 질린 채 발버둥 쳤고, 구조대원들이 몸에 동여매 20여 분간 힘겨루기 끝에 무사히 육지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매립지에 올라선 소는 구조대원들이 고인 빗물을 건네주자 허겁지겁 마셨다. 곧이어 연락을 받고 달려온 하동군 축산팀과 농민이 3개 업체의 사료를 건네자 A회사 사료만 먹었다. 이후 소는 하동군 축협생축장으로 옮겨져 공수의사로부터 영양·안정제를 맞고 기력을 일부 회복했다.

경남 하동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10일 오전 하동군 금성면 연막마을 갈사만 매립지에서 구례 ‘지붕 소’를 구조하고 있다. ⓒ하동소방서
경남 하동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10일 오전 하동군 금성면 연막마을 갈사만 매립지에서 구례 ‘지붕 소’를 구조하고 있다. ⓒ하동소방서

하동군청 농축산과 직원들은 소 귀에 붙은 일련번호를 확인했다. 소의 귀표에 찍힌 일련번호를 전산으로 확인하면 면 단위까지 주소지를 파악할 수 있다. 놀랍게도 소의 고향은 이곳에서 약 125리나 떨어진 구례읍 양정마을 한 축사였다. 지난 8일 구례읍에 범람한 서시천 물에 휩쓸려 떠내려 온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같은 소식은 소 주인에 전해졌다. 다음날 오전 조씨 농장에서 소 운송 일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관계자가 하동축협 축사를 찾아 인계받은 후 자신의 순천 우사로 데려가 기력을 회복 중이다. 생후 20개월된 암소다. 또 이날 아침 6~7시쯤 경남 남해에서 전남 광양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난초섬 안쪽에서 어선에 의해 조씨의 소 1마리가 추가로 발견됐다고 이날 오후 남해군청 축산팀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남해 축협생축장에 임시로 옮겨진 소도 서둘러 데려 올 예정이다.  

앞서 11일 조씨가 사육하던 소 1마리도 50여km 떨어진 하동 가사리 바닷가에서 발견돼 주인 품에 안겼다. 자식 같은 소를 되찾은 조씨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용케 살아왔다”며 기뻐했다. 그는 “갑자기 물이 불어나면서 축사에는 있는 소들이 전부 다 물에 빠져 죽을 거 같아 잠궈 놓은 문을 일부러 열어놓았다. 그 중 소 몇 마리는 근처에서 발견됐다”며 “거친 물살에 얼마나 힘들었을 지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 미어지지만 너무 반갑다”고 울먹였다.

체중이 300㎏이상 나가는 소가 이틀 동안이나 물에 떠 있으면서 호흡을 유지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으로 남는다. 조씨는 이들 두고 대학원생 큰딸이 학창시절 배웠던 사자성어로 ‘우생마사’라고 했다고 전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는 홍수가 나 물에 빠지면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뜻이다. 

'소 주인' 전남 구례 선재농장 조선재(58)씨. ⓒ시사저널 정성환
'소 주인' 전남 구례 선재농장 조선재(58)씨. ⓒ시사저널 정성환

조씨는 “기적 같은 일에 감사한다. 애지중지 잘 보살피며 끝까지 함께 하겠다”면서 “악조건 속에 소들의 귀환이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힘든 분들에게 한줄기 희망을 주는 소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기수 남해군 축산팀장도 조씨와 전화 통화에서 “대단한 소다. 팔지 말고 잘 키우라”고 당부했다.

기적 같은 소의 생환은 전남 광양에서도 있었다. 광양시에 따르면 지난 9일 밤 다압면 신원리 섬진강 둔치에서 젖소 한 마리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광양시 구조 요청을 받은 119구조대가 젖소 귀표 번호를 확인하니 남원시 송동면의 한 농장에서 사육하던 소였다. 광양과 남원까진 약 60㎞ 정도 떨어져 있다. 지난 7~8일 집중호우가 내려 섬진강 제방이 무너졌고, 남원 젖소 농장도 큰 피해를 봤다. 우사가 텅텅 빈 구례 용정마을의 다른 축산 농가들도 애지중지 키웠던 소들의 생환 소식을 애태우며 기다리고 있다.  

구례군의 한 주민은 “소들이 이틀 가까이 사투를 벌이며 필사적인 생존 의지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갑자기 불어난 물에 떠다니다 살아남은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오만을 경계하고 세상을 순리대로 살라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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