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가수와 배우, 두 가지 모두 나를 설레게 해”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5 14: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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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마담》으로 돌아온 '만능 엔터테이너' 엄정화

밝았다. 그리고 맑았다. 지난 27년 롱런의 비결일 것이다. 편안해 보였다. 꽤 긴 공백 기간을 가졌지만 조바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쌓고 쌓아 올려진 단단한 내공일 것이다.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잘 웃는 엄정화는 참 예뻤다.

1993년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데뷔한 그는 곧바로 1집 앨범 ‘눈동자’로 가수에 데뷔했다. 《배반의 장미》 《포이즌》 《초대》 《몰라》 《페스티벌》 등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1990년대를 누빈 ‘댄싱퀸’이었다. 스크린 속 엄정화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았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해운대》 《댄싱퀸》 《미쓰 와이프》 등 수두룩한 흥행작을 만들었다. 지난 2013년엔 《몽타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 무려 11년 만의 정규앨범인 10집 ‘더 클라우드 드림 오브 더 나인’을 발표했다. 2010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뒤 나온 앨범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말 그대로 댄싱퀸의 귀환이었다.

그가 《미쓰 와이프》 이후 5년 만에 코믹액션 영화 《오케이마담》으로 복귀했다. 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난데없이 비행기 납치 사건에 휘말린 부부가 평범했던 과거를 접어두고 숨겨왔던 내공으로 구출 작전을 펼치는 초특급 액션코미디다. 극 중 엄정화는 테러범에게 공중 납치된 비행기에서 활약하는 전직 특수요원을 연기한다. 영화 개봉 직전 그녀를 만났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번에 코믹액션 장르로 컴백했다.

“제가 액션에 대한 로망이 컸어요. 그동안 제게는 액션 장르 섭외가 안 들어왔거든요. 이제 소원 성취했습니다. 하하. 열심히 연습해 촬영장에 갔는데, 막상 액션을 해야 하는 공간에 딱 들어서니 부담감이 확 올라오는 거예요. 스스로 액션을 겁내지 말자고 매일 다짐하는 날들이었어요. 그래도 전 액션이 참 좋아요!”

 

현장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고 들었다.

“부산에서 두 달간 촬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회식을 많이 하게 됐어요. 밥 먹다가 영화 얘기를 시작하면 괜히 맥주나 소주를 한잔하게 되는 식이죠. 영화를 보시면 제가 부어 있는 모습이 간혹 있을 거예요. 그게 회식의 여파랍니다(웃음). 어쨌든 현장의 즐거웠던 에너지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저는 참 좋았어요.”

 

엄정화라는 연예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엔터테이너다. 가수와 배우라는 직업, 지금의 엄정화에게는 어떤 느낌인가.

“어떤 게 천직일까요? 분명한 건 여전히 두 가지 모두가 저를 설레게 한다는 거예요. 10집 앨범이 나오기까지 10여 년이 걸렸어요. 목을 회복하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그 앨범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 꼭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가수 엄정화’를 많이 아껴요. 힘들게 해 왔고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에도 책임감 있고 멋지게 내려올 거예요.”

 

그 앨범의 《She》라는 노래의 가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

“계속 앞으로 가고 싶은데, 대중에게 계속 기억되고 싶은데, 그 안에 있고 싶은데 상황이 그렇지 않잖아요. 세월의 영향이 가장 크겠죠. 자연스레 뒤로 물러나야 하니까요. 목 수술을 하고 10여 년 가까이 슬픈 시기를 보냈어요. 마음도 다쳤고요.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없다고 했을 때 정말 그런지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어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때를 돌아보는 사람이 된 마음을 녹여낸 가사예요. 힘들게 녹음을 했지만 잘 해낸 제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해요.”

 

많은 후배가 롤모델로 엄정화를 꼽는다.

“제가 제일 오래된 선배잖아요(웃음). 저 때만 해도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제가 겪은 어려움과 한계를 후배들은 안 겪었으면, 나이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후배들에게 힘을 받고 있으니까 후배들에게도 제가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그런 모습을 녹여가며 연기와 음악 모두 오래 하고 싶어요.”

 

정작 자신의 롤모델은 누구일까.

“윤여정 선배님, 김희애 선배님 등등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제 또래 여배우들과 선배들 모두를 존경해요. 서로를 바라보면서 힘이 되고 꿈이 되는 것 같아요.”

 

요즘 ‘환불원정대’가 화제다(환불원정대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이효리가 제안한 걸그룹이다. 이효리를 포함해 엄정화, 제시, 마마무의 화사와 걸그룹을 결성하겠다고 한 농담에서 시작했다. 가요계 ‘센 언니’들로 이들과 함께라면 어느 매장에서도 쉽게 환불이 될 것 같다는 의미로 지은 그룹명이다).

“애초엔 ‘환불원정대’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어요. 요즘 친구들은 정말 작명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어쨌든 기분이 좋았어요. 사석에서는 모르겠지만, 무대 위에서는 항상 강해 보이길 원했거든요. 무대에서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최근에 다 같이 첫 회동을 했는데, 반가웠고, 재밌었어요. 같이 할 수 있는 음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데뷔 후 지난 27년간 호불호 없이 사랑받는 스타다.

“정말 감사하죠. 덕분에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반겨주시기까지 하니 너무나 감동이죠. 사실 제가 특출 난 것도 아니잖아요.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주변에 좋은 사람, 오래된 친구가 참 많다.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든 순간들이 있잖아요. 희로애락이 있기에 기쁨도 더 크죠. 특히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괴롭고 힘든 순간을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데, 그럴 때 친구들이 제게 큰 힘이 돼요. 모든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특히 재형(가수 정재형)이라는 친구는 제게 특별해요. 대화를 가장 많이 하는 친구고, 제게 거르지 않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해 주는 친구이기도 하고요. 제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옳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을 재형이와 상의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어떤 리뷰를 들었을 땐 힘이 나고 확신이 들어요.”

 

몸매 관리 비법도 궁금하다.

“20대 때는 운동의 필요성을 못 느끼다가 30대 초반부터 운동을 시작했어요. 한데 운동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럴 때마다 ‘난 운동을 즐기고 있어’ ‘운동하는 내 모습은 너무 멋있어’ 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운동이 일상이 됐죠. 몸은 거짓말을 안 하잖아요. 최근엔 요가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요가를 하다 보면 힘들어서 무념무상이 돼요. 딱 끝나고 나면 물리치료를 받은 것처럼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영원히 우리 곁에 ‘엔터테이너’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즐겁게 해 나가고 싶은데, 여러 가지 환경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놓치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 시절의 모습을 녹일 수 있는, 노래와 연기를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끝없이 두 가지 일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겠지만 그것 역시 저는 기대됩니다. 쭉 지켜봐 주세요!”

화려한 언변은 아니었지만 그 눈빛, 손짓, 말투에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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