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사각지대 머물던 P2P금융의 덫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5 14:00
  • 호수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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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걸러 사건·사고, 온투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지난 7월31일 넥스리치펀딩(넥펀) 대표가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넥펀은 그동안 중고차 매매업체 등에 자동차를 담보로 대출하고 수익금을 돌려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넥펀은 차주가 상환하지 못할 경우 담보로 잡은 자동차를 매각해 투자금 변제가 가능하다고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실제로 전체 대출 1809건 중 자동차 담보 대출은 2건에 불과했다. 투자자들로부터 모집한 자금을 중고차 매매업체에 신용대출로 내준 것이다.

이런 가운데 대출을 받은 중고차 매매업체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일이 틀어졌다. 넥펀은 이후 신규 투자자에게 모은 투자금을 종전 투자자의 원리금을 돌려주는 데 사용하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했다. 이로 인한 피해금액은 약 251억원에 달한다. 2000여 명의 피해자는 현재 피해를 보전받기 위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동산 담보 전문 P2P금융 팝펀딩과 블루문펀드에서도 최근 사고가 터졌다. 이들 업체는 온라인 유통업자 등이 보유한 상품 재고를 담보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대출해 주는 방식으로 영업해 왔다. 그러나 이들 업체도 넥펀의 경우처럼 신규 투자금으로 원리금을 돌려막다 결국 폐업했다. 이 일로 팝펀딩 대표는 지난 7월 구속됐고, 블루문펀드 대표는 같은 달 말까지 휴가를 낸 뒤 잠적한 상태다.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인 수천여 투자자들은 현재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일러스트 오상민

피해자 수천여 명 ‘발 동동’

P2P금융은 사업자가 투자자로부터 모집한 자금을 대출자에게 중계해 주는 신종 금융업이다. P2P금융업체는 온라인을 통해 개인 간 금융거래를 연결해 이익을 얻는 구조로 영업한다. 온라인을 통해 모든 대출 과정을 자동화하기 때문에 지점 운영비용, 인건비, 대출 영업비용 등 불필요한 경비 지출이 없는 게 특징이다.

P2P금융은 투자자들에게도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P2P금융은 통상 6~8% 이상의 수익률을 제시한다. 간혹 10%를 상회하는 상품이 출시되기도 한다. 저금리가 이어지는 지금 제1금융권 예금 금리가 1~2%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P2P금융은 상당히 매력적인 투자처임이 분명하다. 영업이 IT 기반으로 이뤄지는 만큼 투자도 간편하다. 여기에 토스나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계열 금융 플랫폼은 다양한 P2P 대출상품을 연계해 플랫폼 내에서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차주들에게는 P2P금융이 대안 금융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넘기 어려운 금융 약자나 스타트업, 영세 소상공인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의 대출 수요가 P2P금융에 집중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P2P금융 업계는 소상공인 대출수요 확대를 노리고 관련 상품을 연이어 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P2P금융 업계에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사건 외에도 ‘아나리츠’ ‘더하이원’ ‘오리펀드’ 등 굵직한 대출사기 사건이 있었다. 시야를 최근 3년까지 넓혀보면, 2018년 5월 이후 부실 내지는 사기대출 등 각종 혐의로 적발된 P2P금융업체는 모두 18곳에 달했다. 자연스레 P2P금융에 대한 인식도 악화됐다. 현재 주요 포털사이트에 ‘P2P’를 입력하면 첫 자동검색어로 ‘사기’가 나올 정도다.

투자금 570억여원에 달하는 P2P금융 블루문펀드의 사기 혐의에 대해 경찰이 최근 수사에 착수했다. ⓒAP 연합
투자금 570억여원에 달하는 P2P금융 블루문펀드의 사기 혐의에 대해 경찰이 최근 수사에 착수했다. ⓒAP 연합

P2P금융 관리·감독 위한 기관·권한 ‘불명확’

이는 P2P금융이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현재 P2P금융업체들은 통상 ‘통신판매업’으로 등록한 후 ‘대부업’ 자회사를 설립하는 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투자자와 대출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업과 해당 플랫폼을 통해 모집된 금액을 대출자에게 전달하는 여신업을 동시에 묶어 규정할 수 있는 법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리·감독 기관이나 권한도 명확하지 않다. 대부업의 경우 금융위원회에 등록해 직접 관리·감독을 받지만, 정작 모회사인 통신판매업에 대해서는 당국의 관리·감독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P2P금융에 특화된 규제가 적용되지 못한 탓에 등장 이후 대출 규모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투자자 보호 측면에선 취약한 것이 사실이었다.

금융 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사전에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3월 연이은 사건에 P2P 대출 투자에 대해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동시에 부실 P2P업체를 걸러내기 위한 전수조사도 벌였다. 당시 240여 개 P2P업체에 대출채권에 대한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발송한 것이다.

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해 7월 대출상품을 활용한 ‘돌려막기’ 등 P2P금융의 불건전 영업을 막기 위한 조치도 마련했다. 이 밖에 금융 당국은 △다른 플랫폼을 통한 투자자 모집행위 금지 △고위험 상품 취급 금지 △투자금 관리 기관을 은행·증권금융회사·저축은행 등으로 제한 △투자자에게 과도한 재산상 이익을 주거나 받는 행위 금지 △투자 손실 보전을 사전에 약속하는 행위 금지 등의 가이드라인도 함께 내놨다.

그럼에도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최근엔 동산 담보 업계 1위 P2P금융업체인 시소펀딩에서 원금 상환 지연이 대거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시소펀딩은 8월18일 원금 지급 예정인 상품들의 원금 지급이 지연될 것임을 통보했다. 지연 대상 상품은 현재까지 20여 개 이상으로 파악됐다. 최근 P2P금융에서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어서 투자자들은 큰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온투법 시행돼도 ‘유예기간 1년’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법적인 구속력 없는 자율적 규제에 불과해 P2P금융 업계 건전성 제고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18일 P2P금융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 시행령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에 따라 온투법은 같은 달 27일 시행될 예정이다. P2P금융이 제도권 내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온투법 시행령은 사업자 등록요건을 강화했다. 대출 규모에 따라 최소 자기자본 요건을 5억~30억원으로 차등해 규정했다. 또 사업자가 연계대출의 80% 이상을 투자자에게 모집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만 자기자금 대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온투법은 또 다양한 투자자 보호 장치도 담고 있다. P2P금융업체의 정보 공시 및 투자상품에 대한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고, 고위험 상품 등을 취급하는 것을 제한한다. 또 투자 손실 보전 약속이나 과도한 혜택 제공도 금지한다.

다만 금융 당국은 법이 시행되더라도 1년간의 유예기간이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에게 유의를 당부했다. 이 기간을 악용해 ‘먹튀’를 노리는 불량 업체들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기존 P2P업체에는 법 시행 이후 1년간은 등록 유예기간이 주어진다”며 “온투법을 적용받지 않고 불건전·불법 영업행위를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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