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좌파 청년이 60대 실리주의자 돼 ‘포스트 메르켈’ 노려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7 11: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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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민당, 총리 후보로 올라프 숄츠 장관 지명 거론에 갑론을박

내년은 독일에 정치적으로 매우 중대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아직 정확한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내년 8월말에서 10월말 사이 20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가 열릴 예정이다. 이 선거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바로 2년 전 메르켈이 더 이상 총리직을 수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2005년 11월22일부터 독일 총리직을 맡은 메르켈은 20대 연방의회가 개회함과 동시에 16년간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이로써 메르켈은 기독민주당 출신 헬무트 콜 전 총리(1982~98년 재임)와 함께 최장 기간 총리로 기록된다.

물론 코로나19로 독일 사회가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고 그에 따라 최근 메르켈의 난민 정책 또한 실패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연방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영국·프랑스 등의 수장이 두어 차례 이상 바뀌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메르켈의 장기집권은 독일의 정치적 판도를 꽤나 견고하게 지탱해 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 때문에 ‘포스트 메르켈’ 시대의 총리는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와 사회민주당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명된 올라프 숄츠 장관. 사진은 2018년 메르켈 생일날 숄츠가 꽃다발을 전달하는 모습 ⓒEPA 연합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와 사회민주당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명된 올라프 숄츠 장관. 사진은 2018년 메르켈 생일날 숄츠가 꽃다발을 전달하는 모습 ⓒEPA 연합

같은 말 되풀이해 ‘숄츠기계’란 오명 얻기도

올 초부터 차기 총리 후보에 대한 추측과 논평들이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기민당 쪽에서 여러 후보군이 오르내렸다. 반면에 사회민주당 쪽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없어 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던 차였다. 코로나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한동안 차기 총리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들던 중, 지난 8월10일 사민당에서 기습적으로 총리 후보를 발표하면서 다시금 선거전에 불을 지폈다. 그게 바로 현 재무장관인 올라프 숄츠다.

숄츠는 사민당 소속 정치인 중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전문가들은 그를 두고 “추진력이 있고 타협의 귀재로 불리지만, 유연성이 없고 고루하다”고 평가한다. 독일 국민이 대체적으로 포스트 메르켈 시대의 총리에 메르켈과 가장 유사한 사람을 원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만한 사람도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지금까지 나타난 숄츠의 정치적 행보다.

숄츠는 1958년생으로 함부르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젊었을 때 좌파적 성향이 강했던 그는 만 17세에 사민당 당원이 됐다. 이어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사민당과 연대하는 청년 정치조직 ‘유조스(Jusos)’ 연방대표직을 수행했다. 독일 통일 이전, 서독과 동독의 체제 갈등이 심했던 시기에 숄츠는 마르크스주의적 신념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하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거시 정치적 결정들을 비판하는 청년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유조스 활동이 끝난 다음부터 노동법 전문가로 함부르크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며 조용히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그가 연방 차원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2002년 10월 슈뢰더 총리의 제2차 내각에 사민당의 총비서로 임명되면서부터다. 2차 슈뢰더 내각은 ‘어젠다 2010’을 통해 독일을 돌이킬 수 없이 변화시켰다. 어젠다 2010은 소득세율을 인하하고 해고 제도를 완화하며 실업수당 및 의료보험을 축소하는 등 고인 물을 다시 흐르게 만들자는 대대적인 변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정책이다.

당시 숄츠는 총비서로서 어젠다 2010을 방어하고 옹호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앞서 언급했듯 그의 정치적 입문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비판에서 비롯되었다는 부분을 감안했을 때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기 숄츠는 총비서로서 자신의 단점들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때 그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듯한 차가운 이미지를 얻었고,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총리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여 ‘숄츠기계(Scholzomat)’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숄츠의 총비서 재임기간은 18개월에 불과했다. 그의 이미지는 실추됐고, 이후 특별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 2007년 숄츠는 메르켈 내각의 연방노동부 장관으로 다시 등장하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앞서 긍정했던 어젠다 2010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실직급여 장기화에 힘을 썼다. 현재 그가 총리 후보로서 내세우고 있는 정책 중 1순위 또한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 인상이다. 누구도 그가 과거 어젠다 2010에 찬성했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울 것이다.

비교적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은 장관직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2년 후, 2차 메르켈 내각이 들어섬에 따라 숄츠는 다른 이에게 자리를 넘겨야 했다. 그리고 2011년 그는 함부르크의 제1시장으로 선출됐다. 여기서 그의 이성적인 면모는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범죄율 감소, 주거지 조성으로 인한 집세 통제, 탁아소 전일 운영 등 중산층을 겨냥한 선거운동을 펼쳤고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쳤다. 당시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숄츠는 실리를 추구하며,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려 열광시키기보다는 묵묵히 이성을 따라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 시기의 숄츠 모습에 대해 사람들은 청년기의 열성적 마르크스주의자가 현실과 타협한 실리주의자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2018년 그는 연방 재무장관직과 연방 부총리직에 오른다. 하지만 이로써 그가 만족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9년 그는 사민당 대표직을 맡고자 했지만, 2차 투표에서 2위에 머물러 실패했다. 이러한 결과는 곧 숄츠가 당원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는 것으로도 해석됐다. 하지만 한 차례 실패에도 1년여 만에 그가 다시 총리 후보로 등장하게 됐다. 이같이 다소 모순적인 결정에 독일 언론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지금 꼭 후보를 내야 했나” 비판 목소리도

발표 이후 사민당 내 정치인들은 이러한 당의 결정에 긍정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는 반면, 기민당-기민련은 비판적인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바이에른주 주총리이자 기민련 대표 마르쿠스 죄더는 “현재 상황은 코로나바이러스를 막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할 시기이지 선거운동을 시작할 시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기민당 총비서인 파울 치미악 역시 내부적으로 “총리 후보를 지금 발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비판도 일리가 있다. 아직 선거까지 1년 넘게 남아 있고, 여름 휴가철을 거치면서 독일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베를린에서 열리는 반(反)정부 집회가 점차 커지면서, 정부를 향해 “당장 목전에 있는 문제들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총리 후보로 지목됨으로써 숄츠의 행보와 그의 정치적 입장에 다시금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20대의 열렬한 좌파 청년이 60대의 이성적 실리주의자가 돼 독일 정치에 어떤 바람을 불러올지 지켜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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