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뿌리내리는 사천의 항공MRO 사업, 왜 정치권에서 짓밟나”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3 13: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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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도근 경남 사천시장
“성공적인 사천 항공MRO 단지 조성에 정부 지원 필수”

“항공MRO 단지 조성을 시정(市政)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습니다.” 송도근 경남 사천시장은 9월4일 본지 인터뷰에서 “올해 들어 인천 지역 국회의원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직접 항공정비(MRO)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인천국제공항공사법 일부개정 법률안’ 개정을 추진 중에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천의 최우선 과제는 정부의 (항공MRO 단지 조성) 집중 지원을 이끌어내는 일”이라고 밝혔다. 

사천은 2014년 8월 항공산업 특화단지 지정과 2017년 12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MRO 사업자 지정 이후 우리나라의 항공산업 메카로 성장했다. 사천에는 국내 최초 MRO 전문업체인 한국항공서비스(KAEMS)가 있다. 국내 유일 완제기업체인 KAI를 중심으로 한 항공부품업체와 60여 개 항공 관련 협력업체가 입주해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등 7개 대학 항공 관련 학과에 205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항공산업과 MRO 사업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이 모두 갖춰져 있다. 단일 도시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항공산업 도시인 셈이다.

송 시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사천이 단기간에 세계적인 항공산업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항공기 개발과 MRO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뛰어난 인프라 덕분”이라며 “31만1880㎡ 규모의 항공MRO 단지를 성공적으로 조성해 국가균형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도근 경남 사천시장 ©사천시
송도근 경남 사천시장 ©사천시

국내 항공MRO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실제로 국내 항공MRO 수주물량은 연간 300억원 규모다. 시장 자체가 매우 협소한 셈이다. 특히 자체 정비를 시행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제외한 국내 LCC업체의 기체 중정비는 연간 150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항공사들이 항공기를 점검하고 유지하는 데 2조7600억원을 사용했다. 하지만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해외에 의존하는 엔진 정비와 자체 정비가 가능한 운항 정비 부분을 빼면 시장 자체가 크지 않다. 항공산업은 대표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분야다. 한정된 시장에 여러 업체가 진출할 경우 공멸할 수밖에 없다.”

국내 MRO 시장 규모는 항공산업 성장세에 비해 적정한 수준인가.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성장률과 세계 6위권인 항공운송 시장을 감안하면 국내 MRO 사업은 저조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MRO 사업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이 전체 시장의 62%,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21%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전 세계 MRO 시장은 2019년 819억 달러 규모에서 2029년 1159억 달러로 연평균 3.4% 증가가 예상된다. 특히 아태지역의 경우 2019년 245억 달러에서 2029년 426억 달러로 연평균 5.6%의 고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국내외 모든 항공기의 운항이 중지되면서 항공산업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4년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송도근 경남 사천시장이 지난해 6월27일 ‘용당(항공 MRO) 일반산업단지 조성공사 착공식’ 행사에서 항공 MRO 사업의 본격 추진을 역설하고 있다. ©사천시
송도근 경남 사천시장이 지난해 6월27일 ‘용당(항공 MRO) 일반산업단지 조성공사 착공식’ 행사에서 항공 MRO 사업의 본격 추진을 역설하고 있다. ©사천시

사천은 오래전부터 MRO 사업을 추진했다. 

“그렇다. 2014년 8월 산업부가 사천 항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했고, 그해 12월 경남도와 사천시, KAI는 항공정비사업 MOU를 체결했다. 이후 사천은 MRO 사업 유치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17년 12월 국토부 공모에서 MRO 사업자로 KAI가 선정됐다. 경남 서부지역이 MRO 중심지로 성장해 국가균형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란 국토부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당시 인천시와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가 주축이 된 인천컨소시엄은 MRO 전문 민간사업자를 구하지 못해 공모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후 KAI는 2018년 항공정비 전문업체인 KAEMS를 설립한 데 이어 2019년 제주항공 B737의 초도정비를 시작으로 제주항공·이스타항공 등 국내 LCC업체들의 기체 중정비를 수행하고 있다. 경남도와 사천시는 항공MRO 산업 발전을 위해 사천읍 용당리 일원에 31만1880㎡ 규모의 MRO 단지를 조성 중이다.” 

사천 지역을 중심으로 MRO 인프라는 어느 정도 구축돼 있나. 

“사천읍 용당리 일원에 40%의 공정률로 MRO 단지를 조성 중이다. 부지 조성에 1500억원, 항공기 정비 행거동 건립 등에 2729억원 등 총 4229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사천에는 국내 최초 항공전문 MRO업체인 KAEMS가 있다. 국내 유일 완제기업체인 KAI를 중심으로 한 항공부품업체와 60여 개의 항공 관련 협력업체가 입주해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경상대, 남해대, 거창대 등 7개 대학 항공 관련 학과에 205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항공산업과 MRO 사업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이 모두 갖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MRO 사업이 항공기 개발에 준하는 인프라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MRO 기술은 항공기 개발 기술과 분리된 별도의 기술이 아니다. MRO 사업의 입지조건에 항공제조업 기반이 조성돼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인건비가 비싼 탓에 단순 기체 정비가 아닌 고부가가치 MRO 사업인 엔진 손상 수리와 기체 개조 MRO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항공기 제작에 준하는 기술이 필수다. 사천시는 항공기 개발 기술을 보유한 국내 유일 완제기업체인 KAI와 협력업체들이 포진돼 있다. 항공제조업과 MRO 사업을 위한 인프라가 국내 어느 지자체보다도 잘 조성돼 있다.” 

최근 인천을 중심으로 한 ‘인천국제공항공사 MRO 사업 유치’의 동향은 어떤가.

“인천시는 올해 항공산업육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항공정비사업 육성에 3677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이 예산으로 인천국제공항 제4활주로 인근 164만㎡에 격납고 17개소, 계류장 20개소 외 엔진·부품 정비시설, 교육 훈련동, 행정지원센터 등을 건립해 MRO 단지를 조성하고 전문 항공정비업체를 유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천은 MRO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 상태에서 법을 개정한 후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외국 MRO 업체를 유치·위탁할 경우 보조금이 지급돼야 한다. MRO 사업은 사전준비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런 보조금 지급행위는 외국 민간기업에 특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국내 전문기업 대신 해외 MRO 전문기업을 유치한다면 이는 국부 유출이며, 우리나라 MRO 사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인천 지역 국회의원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직접 MRO 사업과 항공 종사자 양성 교육 등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인천국제공항공사법 일부개정 법률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 매우 우려스럽다.”

송도근 경남 사천시장이 지난해 7월2일 사천 항공상생물류센터 건설 현장을 찾아 진척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천시
송도근 경남 사천시장이 지난해 7월2일 사천 항공상생물류센터 건설 현장을 찾아 진척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천시

국내 공항별로 MRO와 관련한 역할을 나누려는 움직임을 어떻게 보나. 

“앞서 말했듯이 국내 MRO 사업자의 신규 수주물량은 연간 150억원에 불과하다. 근데 이것을 둘로 나눠 윈-윈하자는 발상은 서로 공멸하자는 얘기다. 우선 시장을 키우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선행돼야 하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 있는 MRO 사업을 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천의 MRO 사업은 2019년 6월 착공돼 전체 40% 공정률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정치권이 나서서 이제 막 뿌리내리는 사천의 MRO 사업을 짓밟으려 하는 활동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자 지자체 간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이다. 만약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그동안 정부의 장기계획을 토대로 진행된 사천 MRO 사업은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한국공항공사, KAI 등 정부 출자기관이 참여한 항공정비 전문업체 KAEMS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천시와 인천시 양 지역의 항공정비 사업이 동반 실패하는 것 또한 불 보듯 빤하다.” 

운항 항공기가 많은 인천은 운항 정비만 맡으면 된다는 견해인가.

“비행기는 자동차와 달리 계획정비가 주를 이룬다. A, B 체크라고 불리는 비행 전 점검의 경우 인천이나 김포에서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일정 기간 운항 후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C, D 체크(중정비)나 비행시간과 관계없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소위 캘린더 정비는 사천에서 진행하는 게 맞다. 실제로 인천공항처럼 세계적인 대형 국제공항에서 MRO를 하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미국은 오클라호마, 일본은 오키나와, 프랑스는 툴루즈, 독일은 함부르크 등 대형 국제공항과 수십, 수백㎞ 떨어진 곳에서 항공기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싱가포르도 창이국제공항에서 간단한 운항 정비만 맡고 있고, 군공항이 있는 파야 공항에서 MRO 전문업체인 STA가 MRO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구조인데, 이는 공항에 착륙한 항공기를 정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항공정비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 전부터 예약하고 정비하는 계획정비를 하고 있다.”

항공MRO는 기체 수리, 엔진 수리, 기체 개조가 핵심이다. 사천은 항공업체 집적화 기반을 갖추고 있나.

“MRO 사업 분야 중 운항 정비와 부품 교체는 부가가치가 낮다. 반면에 기체 수리나 엔진 수리, 기체 개조 분야는 부가가치가 높아 향후 우리나라 MRO 사업이 지향해야 할 분야다. 이를 위해서는 항공기 개발과 동등한 수준의 기술과 인력, 시설, 장비가 뒷받침돼야 한다. 사천은 이미 이런 항공업체 집적화 기반을 다 갖추고 있다. KAEMS는 보잉737 등의 기체 중정비와 외부 재도장에 대한 인증을 이미 획득했고, KAI 등 협력업체를 통해 다양한 기종의 기체 부품과 엔진 부품 가공·수리가 가능하다.”

향후 사천시의 MRO 사업 추진 방향은.

“사천시는 사천읍 용당리 31만1880㎡ 부지에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사업비 4229억원을 투입해 MRO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총 3단계 사업 중 1, 2단계 사업은 2021년 준공을 목표로 14만9628㎡ 부지에 10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진행 중이다. 현재 1단계는 완료, 2단계는 40%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3단계 사업은 2023년 준공을 목표로 16만2252㎡ 부지에 사업비 500억원을 들여 산단을 조성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2021년부터 3년간 1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항공정비 전문인력 양성을 계획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경남 항공우주 전문 훈련원’을 사천시에 설립해 항공정비뿐만 아니라 항공산업 전반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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