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진짜 매력은 화려함 아닌 조화로움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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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하이라인·보태니컬 가든
세계 도시 조성에 참고서 되는 미국 뉴욕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추기 전인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 여행을 다녀왔다. 뉴욕은 두말할 것 없는 전 세계 경제·문화의 중심지다. 위험하고 복잡한 도시라는 이미지도 있었지만 도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해오면서 거대도시에 필요한 좋은 공간, 새로운 공간의 레퍼런스가 풍부해진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서울에도 뉴욕의 사례들을 참고해 탄생한 공간들이 많다. 뉴욕을 돌아보다보니, 서울 도시환경의 현주소가 자연스레 보이는 듯 했다.

록펠러센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센트럴파크. 맨해튼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가 인상적이다. ⓒ김지나
록펠러센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센트럴파크. 맨해튼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가 인상적이다. ⓒ김지나

센트럴파크는 뉴욕의 고전적인 명소이자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맨해튼이라는 이름의 칵테일은 장식으로 체리나 올리브를 사용하는데, 어느 손님이 “이게 무엇이냐”고 묻자 바텐더가 “센트럴파크”라고 대답했다는 썰렁한 유머를 들어봤는가. 이 3.4km2(약 102만 평) 면적의 거대한 공원이 뉴욕이란 세계적인 도시의 중심, 맨해튼의 상징인 것이다. 요즘은 워낙 도시의 녹지나 공공 공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어서 새삼스러울 수 있지만, 센트럴파크 조성이 처음으로 공식화된 것은 무려 1853년의 일이었다.

폐철도를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 '서울로'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지나
폐철도를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 '서울로'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지나

‘서울로’가 벤치마킹한 뉴욕 하이라인

그렇게 미국에서 조경 계획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공원이 탄생했다. 맨해튼 한 가운데를 당당히 점령한 이 푸른 녹지의 위엄은 록펠러센터 전망대에서 한눈에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공원과 비교해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점은 공원이 주변의 도시구조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센트럴파크는 ‘목적지’이기도 했지만 도시 내를 이동하는 ‘길’이기도 했다.

뉴욕의 하이라인은 서울역고가도로를 보행 전용로로 만든 ‘서울로’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비교대상으로 등장하는 공원이다. 실제로 서울로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뉴욕에서 하이라인을 보고 온 뒤 추진한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라인은 1920년대에 고가 형태로 지어진 화물 철도로, 60년대 육로수송이 발달하기 전까지 식재료와 공산품들을 실어 나른 도시의 핵심 인프라였다.

그러다 운영이 중단되면서 철거를 앞두고 있었는데, 하이라인의 가능성을 알아본 몇몇 사람들에 의해 1999년 "하이라인 친구들(Friends of High Line)"이라는 비영리조직이 탄생됐다. 그들은 하이라인을 어떻게 활용할지 시민 아이디어 공모도 하면서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2004년 비로소 공원화가 결정되기에 이른다. 때문에 서울로와 굳이 비교를 한다면 ‘어디가 더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그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됐는가’일 것이다.

맨해튼 미드타운 서쪽의 철도 차량기지 일대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허드슨 야드'에는 영국의 유명한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의 작품 '베슬(Vessel)'이 설치돼 화제를 낳고 있다. ⓒ김지나
맨해튼 미드타운 서쪽 철도 차량기지 일대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허드슨 야드'에는 영국의 유명한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의 작품 '베슬(Vessel)'이 설치돼 화제를 낳고 있다. ⓒ김지나

뉴욕식물원이 보여주는 기다림의 미학

뉴욕 보태니컬 가든은 맨해튼에서는 조금 떨어진 브롱스 지역에 있다. 1896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식물원이다. 미래세대를 위해 희귀한 식물종을 보호하고 식물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만들어졌다. 식물원의 규모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커졌고 내용적으로도 풍부해져, 1967년에는 미국의 국립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가끔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의 온실과 서울식물원을 비교하며 규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물론 식물원이 도시의 어메니티(생활편의시설)가 될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130여년의 시간동안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뉴욕식물원의 역사와 자연을 보면서, 식물원의 근본적인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시간’에 대한 인내심이 우리에게 좀 더 필요함을 느꼈다.

그밖에도 뉴욕에는 서울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공간들이 많았다. 옛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조성된 9.11 메모리얼은 도시가 재난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맨해튼 미드타운 서쪽의 철도 차량기지 일대를 개발하는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에서는 도시 경험과 활성화에 기여하는 좋은 공공미술이란 무엇인지 엿볼 수 있었다.

뉴욕이란 설레는 이름만큼 그곳은 도시적으로, 정책적으로, 그리고 시민의식의 차원에서 배울 점이 많은 도시였다. 우리가 따라해야 할 것은 그 외형이 아니라 도시 환경에 대한 세심한 이해와 배려임을 깨닫고 온, 코로나 시대 이전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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