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속 한국] “불공정 구조를 뒤집어 한국 경제 새판 짜라”
  •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전 한국은행 금융안정분석국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05 14:00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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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
“직업 간 과도한 보상 격차·부동산 특혜 등 문제 산적”

한국 경제는 코로나19에도 성장과 수출 등이 양호한 편이다. 1인당 국민소득도 인구 5000만 명 이상 나라 중에서는 세계 7위로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 괜찮은 일자리 부족, 비싼 집값과 집세, 소상공인의 어려움, 경제 정의 실종 등의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와 좌절은 심해져 ‘탈조선’ ‘헬조선’을 넘어,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이생망’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일까? 최근 자주 회자되고 있는 원인을 살펴보자. 먼저 ‘신자유주의’다. 과도한 경쟁과 시장원리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다음은 ‘경제민주화’다. 재벌 개혁이 문제라는 말도 많이 있다. 셋째, 젊은이들의 눈높이가 높고 노력 부족이 원인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 개혁’, 즉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문제라는 사람도 꽤 있다.

이러한 진단은 문제의 한 부분 또는 외형적인 현상만을 주로 설명한다. 하나씩 간단히 짚어보자. 첫째, 경쟁과 시장원리는 소상공인과 같은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고, 오히려 관료·교수·전문직 등 기득권층은 경쟁이 부족하고 특권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둘째, 재벌은 개혁 대상이기는 하지만 많은 기득권층의 하나일 뿐이다. 셋째, 젊은이들의 높은 눈높이와 노력 부족은 어떤가. 경제가 성장하면서 생활 수준과 눈높이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젊은이들의 스펙은 과다할 정도로 충분하다. 넷째,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 여러 기득권층 중에서 혜택은 적고, 국민 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많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비싼 것은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찔끔 과세’와 낮은 보유세 등 부동산 투자에 대한 특혜가 가장 큰 원인이다. ⓒ연합뉴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비싼 것은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찔끔 과세’와 낮은 보유세 등 부동산 투자에 대한 특혜가 가장 큰 원인이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의 진짜 구조적 문제

그러면 한국 경제의 진짜 구조적 문제는 무엇일까? 하나는 직업 간 과도한 보상 격차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싼 집값과 집세 등 부동산 문제다. 이 두 가지가 괜찮은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 등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이다. 또한 사회의 공정성과 신뢰 구조를 훼손해 경제뿐 아니라 국민의 정직성에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한 나라의 공정성과 신뢰 구조가 약해지면 성장률도 떨어진다.

먼저 직업 간 과도한 보상 격차를 살펴보자. 한국에서 많이 버는 사람은 재벌과 기업 경영진, 임대사업자, 의사 등 전문직, 관료와 교수, 금융기관과 공기업 직원, 대기업 정규직 등이다. 젊은이들을 포함해 다수 국민이 갖고 싶어 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이들의 높은 소득 중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많지 않다. 대부분 불공정한 특혜에 기인한다. 

임대사업자는 세제상 특혜가 크다. 관료와 교수, 공기업 등은 정부가 직접 보수를 결정한다. 의사는 정원과 업무 영역을 정부가 보호해 줘 많은 보수를 받는다. 금융기관도 신규 설립 제한 등을 통해 수익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이들 직업의 소득은 우리보다 잘사는 미국·일본·독일 등의 동일 직업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반대로 한국에서 못 버는 사람들인 비정규직과 파견직, 중소기업 노동자, 소상공인 등은 보호막 없는 죽기 살기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들의 낮은 소득은 특혜를 받는 사람들이 국민 경제의 지급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과도한 보상 격차가 어떻게 괜찮은 일자리를 없애는지 짚어보자. 상위 10% 정도의 많이 버는 사람들이 나라 전체 소득의 50% 이상을 가져가면, 나머지 90%가 벌 수 있는 소득은 당연히 작아진다. 소상공인이나 젊은 취업준비생들이 열심히 해도 충분한 돈을 벌기 어렵고,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좋은 직업은 소득이 너무 높고, 나쁜 직업은 소득이 너무 낮아 좋은 직업에만 구직자가 몰린다. 이렇기 때문에 좋은 직업은 취업준비생이 넘치고, 나쁜 직업은 사람을 못 구해 외국인 노동자를 써야 하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비싼 집값, 집세 등 부동산 문제는 많은 사람이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문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한국의 비싼 부동산 가격은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찔끔 과세’와 낮은 보유세 등 부동산 투자에 대한 특혜가 가장 큰 원인이다. 한국 사람은 보유자산의 70~80%를 부동산으로 갖고 있다. 미국·일본의 30~40%에 비해 비중이 크게 높다. 이것은 특혜로 인해 부동산 투자가 다른 투자에 비해 수익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빚내서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이 부자가 됐고, 꾸준히 저축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 비싼 부동산 가격은 무주택자의 어려움뿐 아니라 경제 정의 실종, 경제구조와 자금 흐름 왜곡, 소비 위축과 기업 경쟁력 약화, 자영업자 수익 악화, 젊은이들의 결혼 불능과 출산율 저하 등으로 연결돼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또 양극화와 빈곤의 대물림, 세대와 계층 간 부당한 소득이전 등도 야기하고 있어 가히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정책과제를 알아보자. 정책과제는 당연히 직업 간 과도한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보상체계 개혁이고, 비싼 집값과 집세를 하향 안정시키는 부동산 개혁이다. 과도한 보상 격차, 부동산 특혜 이 두 가지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이자 적폐다. ‘불법과 갑질’만 적폐가 아니다. 합법적·제도적으로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것도 적폐다. 

 

제도적으로 과도한 이익 챙기는 것도 적폐

보상체계 개혁은 성공한 정치인, 고위 공직자, 교수와 의사 등 공공부문 종사자 중 보수가 과도하게 많은 사람들의 보수를 중산층 소득에 가깝게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공기업 임원 등의 보수를 절반 이하로 낮추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 의사 정원 확대, 교수의 엄격한 겸직 제한과 관료의 낙하산 금지, 공무원과 공기업의 직무급 도입, 소형 금융기관의 신설 허용과 척추치료사 등 한국에서 금지된 직업의 허용 등도 필요하다.  

부동산 개혁은 땜질 처방으로 누더기가 되고, 복잡하기만 한 정책의 판을 새롭게 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주택임대소득의 철저한 과세, 공시지가를 시가의 95% 수준으로 인상, 실효성이 낮은 종부세 폐지나 대폭 단순화, 고가 1주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부동산 소득이 50% 이상인 법인의 개인소득세율 적용 등 과제가 많다. 이와 함께 돈이 부동산보다는 생산적인 분야로 흐르게 하는 금융 개혁도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과제는 정치세력이 기득권화된 한국에서 추진하기 어렵지만 꼭 해야 한다. 이들 과제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거의 대부분 하고 있는 정책이다. 우리가 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둡고, 젊은이들의 분노와 좌절은 계속될 것이다. 정의로운 나라, 공정한 사회도 이들 정책과제의 추진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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