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힌’ 가습기 피해자 뒤로 ‘숨 죽인’ 가해자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0.11.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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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진행 중인 가습기 살균제 참사…피해 신청 6892명·사망 1566명
기업 조사 방해와 증거인멸 등으로 진상규명 난관…입법·제도개선 절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애끊는 호소. 10월30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신청자는 6892명으로 이 중 1566명이 목숨을 잃었다.   ⓒ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실 - 빼앗긴 숨' 온라인 전시관 제공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애끊는 호소. 10월30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신청자는 6892명으로 이 중 1566명이 목숨을 잃었다. ⓒ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실 - 빼앗긴 숨' 온라인 전시관 제공

1994년 전세계 최초로 한국 기업이 개발한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됐다. '안전하고, 인체 무해하며, 편리한' 광고 문구는 소비자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획기적인 가습기 살균제는 마트에서, 슈퍼에서 성황리에 팔려나갔다. 첫 출시 기업을 따라 생활용품 회사와 유통업체들은 앞다퉈 가습기 살균제품 판매에 뛰어들었다.

시장 규모는 날로 커졌다. 그러나 '검증'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화학 물질이 폐로 직접 흡입되는 과정에 대한 '유해성 검증', '흡입 실험'은 제품 출시 때까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기업이 가습기 살균제로 매출과 이익을 더해갈수록, 소비자들의 건강과 미래는 잿빛이 됐다.

가습기 살균제가 '죽음의 공기'를 퍼트려왔다는 점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기업도, 정부도 18년 동안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2006년부터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원인미상의 영유아 폐렴 발생이 보고됐지만, 이 비극의 서막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사이 가습기 살균제는 일상에 더 깊숙히 침투했다. 매년 수 십명의 영유아를 포함한 시민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간실성 폐렴 등을 앓다 목숨을 잃거나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질병을 떠안았다. 배 속의 태아를 연이어 떠나보낸 부모와 아이를 품고 있던 임신부가 급작스레 숨을 거두는 '죽음의 행렬'이 펼쳐지고서야 참사의 원인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시장에 나온 지 18년째인 2011년,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환자들에 대한 역학조사에 나서면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공론화됐다.

가습기 살균제가 순차적으로 판매 중단되며 시장 퇴출 수순을 밟는 동안 기업이 내놓은 것은 사과와 적극적인 피해 보상이 아니었다. 살균제에 노출된 시민들이 망가진 폐로 거친 숨을 내몰아쉬며 온 몸으로 피해를 호소할 때, 기업은 책임 공방에서 물러나기 위한 시간을 벌었다. 검증 없이 제품을 출시한 기업들은 저마다 '인과관계에 대한 정확한 검증' 잣대를 요구하며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020년,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해 기업과 책임자 처벌은 느리고 더뎠다. 피해자 보상과 지원도 갈 길이 멀다. 진정한 사과와 보상안을 내놓아야 할 기업은 '사찰'과 '동향 보고'로 또 한번 피해자들에게 상흔을 남겼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년 간의 활동시한 종료(12월10일)를 한 달여 앞두고 참사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김유정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국 조사1과장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특정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그 피해가 이어질 지 알 수 없는 참사"라며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에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입법과 제도개선에 정부 및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8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면담을 갖기 앞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만성 폐질환을 앓게 된 임성준 군의 모친으로부터 책 ‘가습기 살균제 리포트’를 건네받아 보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8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면담을 갖기 앞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만성 폐질환을 앓게 된 임성준 군의 모친으로부터 책 ‘가습기 살균제 리포트’를 건네받아 보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아래는 김 조사1과장과의 일문일답.

현재까지 파악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현황은 어떻게 되나.

"10월30일 기준 피해 신청자가 6892명이며, 이 중 사망자는 1566명이다. 특조위가 '가습기살균제 피해규모 정밀추산 연구 용역'을 통해 전국 표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 노출 인구는 627만 명, 건강 피해 경험자 67만 명, 사망자는 1만4000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기업과 관련 제품은 얼마나 되나.

"가습기 살균제 원료 공급과 제조·판매에 관련된 기업은 총 100여 곳이다. 해당 기업이 48종의 가습기 살균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했다. 1994년부터 2016년까지 판매된 가습기 살균 제품은 995만여 개에 달한다.

1994년 유공이 처음으로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했고, 이후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LG생활건강 119가습기세균제거 등이 출시됐다. SK케미칼은 주요 원료를 공급했고 옥시레킷벤키저(RB)와 애경산업, LG생활건강 등이 여러 하청업체를 거쳐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또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GS리테일 등이 자체 PB브랜드를 통해 제품을 팔았다."

 

해당 기업 중 사전 검증을 거친 곳이 없었나.

"첫 단추가 완전히 잘못 끼워졌다. 기업과 정부 모두에 책임이 있다. 유공은 안전성 검토없이 '가습기 메이트'를 출시하면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인체 무해’ 등 허위사실을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기업과 정부 모두에 책임이 있다. 기업은 정부 규제의 허점을 노렸고, 정부도 화학물질이나 제품 안전 관리 감독의무를 소홀히했다. 참사 발생 후 국회 국정조사, 검찰 수사, 특조위 조사 등이 진행되면서 기업들이 흡입독성 실험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지만, 스스로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피해지원에 나선 기업은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를 포함한 생활화학 제품이 이처럼 부실하게 만들어지는게 가능한가.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원료 물질은 산업용 살충제에 주로 쓰이는 CMIT/MIT나 수영장 또는 물탱크 청소에 사용되는 PHMG 등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서는 이미 1991년에 CMIT/MIT를 2등급 흡입독성 물질로 지정했다. 흡입시 인체에 유해하며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해외 연구 사례를 통한 규제가 버젓이 있었는데도 기업은 이 위물질에 대한 안전성 검사도 없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했다.

당시 한국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만든 기업 중 안전성 검토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곳은 전무했다고 본다. 정부의 화학물질 및 제품안전 관리가 부실했기에 기업 역시 안이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당시엔 제조회사가 안전성 자료 등을 제출해 유해성 심사를 신청할 의무도 없었다. 기업이 원료 흡입독성 실험을 제대로 했다면, 또 환경부가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과정을 용도에 따라 세분화 해 걸러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원료 검증을 놓쳤다고 하더라도 제조과정에서 이를 발견했거나 판매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호흡이 거칠어지고 이상반응을 겪었다는 소비자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 줬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할 일'을 한 기업이 없었다. 정부는 당시 법에 규정된 안전검사대상 공산품에 가습기 살균제를 빼놓아 사실상 사각지대에 방치했고, 아무런 검증없이 나온 제품에 KC인증 마크를 내주기도 했다."

 

첫 제품 이후 출시된 상품들도 안전 검증 없이 시장에 나왔나.

"그렇다. 유공은 출시 당시 가습기 살균제의 화학물질 흡입 위험성을 인지하고 1994년 서울대 교수 등에게 실험을 의뢰했지만, 이미 이 결과가 나오기 전 제품이 출시된 상태였다. 서울대 흡입독성실험은 1995년 7월 결과가 나왔는데 그 내용은 '안정성 확인을 위한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제품을 내놓은 기업들은 살균제 성분만 일부 바꿨을 뿐 물에 부어 흡입하는 동일한 사용방법을 유지했고, 결국 나머지 회사들도 안전에 대한 검증을 완벽하게 실행하지 않았다."

10월30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신청자는 6892명으로 이 중 156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은 가습기 살균제로 목숨을 잃은 어린이들이 생전에 쓰던 장난감과 인형 등 유품들 ⓒ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실 - 빼앗긴 숨' 온라인 전시관 제공
10월30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신청자는 6892명으로 이 중 156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은 가습기 살균제로 목숨을 잃은 어린이들이 생전에 쓰던 장난감과 인형 등 유품들 ⓒ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실 - 빼앗긴 숨' 온라인 전시관 제공

참사 원인이 드러난 이후에도 진상규명이 더디게 진행된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이나 정부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처음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부의 접근방식이 '사회적 참사'가 아닌 '기업과 소비자 간 발생한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 점도 진상규명 속도를 더디게 한 원인이 됐다. 참사 초기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가 소관부서를 어디로 해야 할 지 몰라 책임 떠넘기기를 할 때, 기업은 내부적으로 대응팀을 꾸려 증거를 인멸하고 은닉할 시간을 확보했다. 사건 자체가 많은 기업이 관련돼 있고 소관 정부 부처도 얽히고 설킨 점, 화학물질 흡입 위험성과 인체 유해성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점 등도 진상규명을 더욱 어렵게 했다고 본다. 이 때문에 피해규모에 대한 정확한 예측도 어려운 것이다."

 

참사와 관련한 기업 관계자 등의 처벌 현황과 수위는 어떻게 되나.

"2016년 검찰 수사를 통해 PHMG, PGH 성분 제품을 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와 세퓨 등 기업 관계자들이 형사 처벌을 받았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표시광고법위반 등 혐의가 적용됐고 대부분 징역 4~6년형을 선고 받았다. 신현우 전 옥시RB 대표는 1심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은 뒤 항소해 2심서 6년으로 감형 받고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존 리 전 옥시RB 대표는 검찰이 재판에 넘겼지만,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결국 무죄가 나왔다. 안전성 결함 관련하여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직 외국인 임원 등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CMIT/MIT 성분 제품 관련 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등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참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광범위한 증거 인멸과 조직적 대응으로 관련 자료가 사라진 곳이 많고, 진술 맞추기 등으로 기업은 법망을 피해왔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법인을 상대로 직접적인 제재가 내려진 사례는 없다. 법인이 받은 처분은 표시광고법 위반에 대해 내려진 1억5000만원 벌금이 전부다.

한국은 아직 기업 과실로 인명사고가 난 경우 해당 법인을 처벌하는 법이 없고, 직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 뒤 기업이나 관리자들은 '몰랐다. 보고받지 못했다'는 변명에 숨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이 참사와 관련해 처벌받은 공무원도 없다. 환경부 공무원이 애경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 조사 등에 대한 내부 정보를 누설해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긴 했지만, 직접적인 참사와의 연관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최근 검찰에 피해자 모임 사찰을 하다 적발된 기업 관계자들을 수사 의뢰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보나.

"검찰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기업은 여전히 피해자들을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대응'과 '사찰'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본다. 피해자 모임은 기업 관계자들이 게시글 등을 통해 단체의 대응 방향이나 향후 계획, 검찰 수사 상황 등을 파악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얼마나 힘겹게 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피해자를 위장해 그 곳에 있었다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기업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나 지시가 있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피해자들에 대한 제2·제3의 가해 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해 기업들이 낸 지원 기금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2017년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및 원료물질 사업자를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에 따라 각 사업자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분담금을 부과했다. 피해구제분담금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제35조(분담금의 산정 및 납부 등)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사용 비율 및 판매량 비율에 따라 산정됐다. 총 18개 기업에 1000억원, 원료물질 사업자인 SK케미칼·SK이노베이션에 250억원으로 총 1250억원이 부과됐다. 수 천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의 치료 비용을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와 호흡기 등의 직접적인 손상 외에도 이로 인해 생겨난 각종 병과 후유증, 일상이 무너지고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 등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금액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정상생활이 모두 무너져버린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해선 금전적 배상이 필요하지만, 기금과 정부 출연금을 활용한 지원 규모가 한정적이어서 치료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기업 자체적으로 안전성에 대한 검토 부서를 만들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기업별로 '안전' 관련 업무도 명확한 기준 하에서 관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학물질의 경우 가습기 참사처럼 노출되는 시간, 범위, 혼합량, 배율 등에 따라 피해가 천차만별로 나타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원료나 제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어떤 부작용 등이 나올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입법적인 보완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등이 도입돼야 한다. 법망을 탄탄히 갖춰둬야 안전 규정을 무시한 기업에 대한 처벌을 확실하게 할 수 있다. 또 이런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기업의 인식 개선과 대형 참사 예방효과를 함께 가져올 수 있다. 안전 관련 표시광고 부분도 '인체 무해' 등의 문구가 여전히 남용되고 있는데 더욱 엄격히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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