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경공단의 수상한 사업비 과다 지출 논란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3 17: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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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하게 고가 장비 매입 정황…업체 유착 의혹도

한국환경공단(공단)이 굴뚝원격감시체계 구축사업(굴뚝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가 장비를 도입해 막대한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공단과 특정 업체의 유착 의혹도 제기됐다. 문제는 이런 논란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앞서 전기차 공공급속충전기 인프라를 도입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민원이 제기된 바 있다. 이로 인한 업계의 불만은 상당하다. 공단이 특정 업체의 제품을 고집해 사실상 사업 참여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환경공단이 불필요한 고가 장비를 납품받아 막대한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사저널 박정훈
한국환경공단이 불필요한 고가 장비를 납품받아 막대한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사저널 박정훈

조달가 기준 4~5배 달하는 비용 지출

굴뚝사업은 환경오염물질 배출농도를 자동측정기로 상시 측정하고, 이를 공단 관제센터와 온라인으로 연결해 24시간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환경오염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취지로 시행됐다. 1990년대 산업단지 일대의 대기오염 악화로 국가 차원에서 울산·여천산업단지 지역주민 이주대책사업을 추진한 사태가 사업의 계기가 됐다.

당시 정부는 행정기관에서 기업체를 일일이 방문해 환경오염을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업체들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환경오염 방지시설을 비정상 가동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단은 상시 감시 시스템을 마련해 현재 전국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장의 굴뚝 2000여 개에 자동측정기기가 적용돼 있다.

문제가 제기된 건 굴뚝사업에 적용된 가상사설망(VPN)과 관련해서다. VPN은 굴뚝에서 측정한 대기오염물질 수치를 공단 관제센터로 송신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암호화하는 역할을 한다. VPN은 크게 하드웨어식(IPSec)과 소프트웨어식(SSL)으로 구분된다. 하드웨어식은 고가인 대신 장비 한 대당 많은 회선의 보안을 처리할 수 있다. 은행지점 등 많은 인원이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주로 사용된다. 반면 소프트웨어식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한 PC당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해야 한다. 근무자 수가 적거나, 이동이 잦은 업무에 적합하다.

현재 굴뚝사업 전체엔 특정 업체의 하드웨어식 VPN이 단독 도입돼 운영되고 있다. 감사실에 제출된 감사청구서에 따르면, 굴뚝사업에는 고가의 하드웨어식 VPN 장비가 불필요하다. 굴뚝사업이 처음 시행된 2007~08년 무렵에는 하드웨어식 VPN 장비 도입이 불가피했다. 당시 소프트웨어식 VPN 성능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 이후 소프트웨어식 VPN의 성능이 안정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VPN 제조업체 관계자는 “VPN 장비는 암호화와 복호화 외에 다른 기능이 존재하지 않아 현재 하드웨어식과 소프트웨어식의 기술적 우열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굴뚝사업에는 굴뚝 하나당 하나의 회선만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비싼 값을 치르고 하드웨어식 VPN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이에 소프트웨어식 VPN 장비 제조 및 공급업체들은 공단 측에 자사 제품을 납품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하드웨어식 VPN만을 고집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누수된 세금도 상당 규모로 추정된다. 조달청 나라장터종합쇼핑몰에 등록된 소프트웨어식 VPN의 보안소프트웨어 개당 조달가는 9만9000원이었다. 보안소프트웨어를 탑재할 모뎀이 10만~20만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프트웨어식 VPN을 납품할 경우 굴뚝 하나당 20만~30만원 정도 소요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굴뚝사업에 적용된 하드웨어식 VPN 장비의 조달가는 132만~154만원으로 소프트웨어식의 4배 이상에 달했다.

업계에 따르면 VPN 장비 교체는 통상 5년 주기로 이뤄진다. 이를 감안하면 사업 시작부터 지금까지 3번의 장비 변경이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하드웨어식 VPN 최저가인 132만원을 적용해 전국 2000여 개 굴뚝의 VPN을 세 차례 변경했다고 가정하면 총 79억2000만원의 예산을 집행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소프트웨어식 VPN의 대당 공급가를 30만원으로 가정하면 지금까지 61억2000만원의 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된 셈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보수적으로 계산했을 때의 얘기다. 굴뚝사업에 VPN을 공급한 업체는 기기 비용에 추가 마진과 유지·보수비용 등을 더해 최고 300만원까지 가격을 책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공단 관계자는 “하드웨어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사업의 성격과 데이터의 양, 기존장비의 호환성 및 유지보수를 포함한 전반적인 사항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실제 2020년 말 구축완료 예정인 대기배출시설 관리 관련 시스템의 경우 소프트웨어식 VPN을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인천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한국환경공단 ⓒ시사저널 임준선
인천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한국환경공단 ⓒ시사저널 임준선

불필요 제품 공급받아 수십억대 낭비 의혹

물론 굴뚝사업 담당자가 하드웨어식 VPN의 불필요성과 예산 과다 지출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공단에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는 입장이다. 한 VPN 제조업체 관계자는 “사업 담당자에게 비용 절감 효과 등을 제시하며 계속 납품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하고 특정 업체에 사업권을 밀어줬다”며 “공단이 계속해서 하드웨어식 VPN 장비를 고수할 경우 향후 불필요한 지출의 누적액은 더욱 불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공단이 하드웨어식 VPN 장비를 고집하는 배경과 특정 업체와의 유착을 연관 짓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 VPN 업체 관계자는 “현재 굴뚝사업에 VPN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와 공단의 유착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 때문에 대다수 업체는 그동안 사업에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입찰 공고를 보고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공단 굴뚝사업 담당자와 미팅을 했지만 ‘이미 다 짜인 판에 들어오려 하느냐’는 식의 핀잔만 들었다”고 밝혔다.

취재 과정에서 납품 비리가 의심되는 구체적인 증언도 확보했다. 보안장비 공급업체의 한 관계자는 “공단의 굴뚝사업 담당자가 VPN 장비를 납품할 수 있도록 해 줄 테니 자본금 5000만원짜리 보안망 유지·보수업체를 설립해 자신에게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며 “해당 법인을 통해 유지·보수업무를 도맡겠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무리한 요구라고 판단해 이를 거절하자 VPN 장비 공급권은 다른 업체로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이런 논란이 불거진 건 굴뚝사업에서만이 아니다. ‘전기자동차 공공급속충전기 제작·구매사업(전기차사업)’ 과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전기자동차 공공급속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는 이 사업에도 충전 비용 결제 정보 암호화를 위한 VPN이 설치·운영돼 왔다. 이 사업 역시 하드웨어식 VPN 도입으로 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됐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한국환경공단이 불필요한 고가 장비를 납품받아 막대한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사저널 박정훈

다른 사업에서도 같은 문제 제기

그러나 전기차사업은 지난해부터 소프트웨어식 VPN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상태다. 업계에서 국회를 통해 문제 제기가 이뤄진 결과다. 공단의 전기차사업 담당자가 특정 업체의 하드웨어식 VPN 장비만을 고집해 막대한 비용이 새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또 그 배경이 사업 담당자와 업체의 유착에 따른 결과임을 주장하며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문제의 직원은 굴뚝사업에서 하드웨어식 VPN을 고집했다는 인물과 동일인이었다. 해당 직원은 이런 문제 제기를 전후로 공단을 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듣기 위해 굴뚝사업과 전기차사업 VPN 장비 공급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해당 직원에게 계속 전화와 문자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공단 관계자는 “해당 직원은 2018년 3월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직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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