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리금융 회장은 왜 금감원 노조에 고발당했나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0 15: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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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20년간 입찰 절차 없이 금감원지점 차지
금감원 “특혜 준 것도 받은 것도 없다…계약관계일 뿐”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최근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으로부터 고발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발 사유는 건조물 침입죄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감원 본원 건물에 정해진 보안 절차 없이 무단으로 진입했다는 주장이다. 건조물 침입죄는 사람이 거주·관리하는 건물 등에 무단 침입한 경우 적용된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시사저널은 이런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를 금감원이 이 사건과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공식 자료와 금감원 취재 등을 통해 재구성했다. 

사연인즉 이렇다. 손 회장은 지난 1월30일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를 일으킨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를 우리은행이 불완전판매한 것과 관련해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 출석했다. 금감원은 DLF 불완전판매가 은행 경영진이 내부 통제를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라는 판단 아래 손 회장에 대해 문책 경고라는 징계를 내렸다. 손 회장은 이에 대한 소명을 위해 제재심에 출석했다. 이날이 DLF 관련 세 번째 제재심이었다.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생겼다. 금감원의 보안이 손 회장에게 뚫린 것이다. 손 회장이 제재심에 출석하는 과정에서 금감원의 공식 출입 절차를 따르지 않고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국가가 지정한 ‘국가중요시설’이자 ‘나’급 국가보안시설이다. 당연히 정해진 출입 절차가 있다. 외부인이 금감원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1층 주출입구에 위치한 안내데스크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친 후 방문자 출입증을 교부받아 방문하는 부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우리은행에 뚫린 금감원의 보안

그런데 손 회장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1층이 아닌 지하 1층을 통해 금감원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금감원 임원들만 이용하는 VIP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재심이 열린 11층으로 이동했다. 금감원의 보안 시스템이 무너진 순간이다. 이 일로 금감원의 방호대장은 주의 조치를 받았다. 

손 회장이 이런 꼼수를 부린 이유는 뭘까. 손 회장은 앞서 열린 1월16일 제재심에 출석할 때는 1층에서 정식 출입 절차를 밟고 심의가 열리는 11층 회의실로 이동했다. 금감원에 공식 출입 절차가 있고, 이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시사저널은 금감원이 국회에 제출한 당시 사건의 자체 감찰 결과를 입수했다. 손 회장과 우리은행 측은 당시 취재진과의 접촉을 피하고자 이런 무리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애초부터 금감원의 출입 절차를 우회하고 싶어 했다. 우리은행은 제재심이 열리기 전에 이미 금감원에 손 회장이 제재심 개최일에 지하 1층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허락을 요청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를 거부하고, 일반적인 절차를 따르도록 우리은행 측에 안내했다. 금감원이 분명하게 ‘No’를 외쳤음에도 손 회장은 이를 무시하고 지하 1층으로 금감원을 무단 출입하는 데 성공했다. 국가중요시설이자 ‘나’급 국가보안시설인 금감원의 보안을 무너뜨린 것이다.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을 보면 국가보안시설에 출입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그 기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손 회장에게는 금감원 출입이 자유자재로 가능했던 두 명의 내부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우리은행 검사부장과 우리은행 금감원지점장이다. 우리은행 금감원지점은 금감원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제재심이 열린 1월30일 우리은행 검사부장은 금감원 직원의 안내로 1층에서 출입비표 수령 등 출입 절차를 완료하고 손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은행 검사부장은 “손 회장이 도착할 무렵 금감원 1층 출입구에 기자들이 운집해 있자 회장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지하 1층으로 출입하기로 결정했다”고 금감원 감찰에서 밝혔다. 그리고 우리은행 금감원지점장에게 지하 1층으로의 출입을 지시했다. 

검사부장의 지시를 받은 지점장은 금감원 방호대장에게 손 회장이 지하 1층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를 요청했다. 금감원 방호대장은 이런 요청이 관련 부서와 협의된 것으로 ‘오판’하고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손 회장이 지하 1층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금감원의 자체 감찰 결과를 보면, 지점장은 제재심이 열리기 하루 전날 방호대장에게 손 회장이 지하 1층으로 출입해 제재심 회의실로 출석하기 위한 절차를 문의하면서 관련 부서와 협의된 것처럼 말한 바 있다. 

 

우리銀 “회장 안전 때문에 불가피하게 결정”

금감원은 이 일로 우리은행 검사부장과 지점장에 대해 금감원 출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금감원은 국회에 제출한 감찰 결과에서 “검사부장은 금감원의 출입 절차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금감원의 출입 관련 규정 및 절차를 위반해 손 회장의 무단 출입 사태를 실질적으로 주도했다”고 밝혔다. 지점장에 대해서는 “금감원 방호대장에게 손 회장의 지하 1층 출입 등이 금감원 관련 부서와 협의된 것처럼 언급하는 등 무단 출입 사태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적시했다. 이와 관련해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손 회장에게 어떤 조치를 취했다는 언급은 없다.

이에 대한 금감원과 우리은행 내부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두 곳의 직원들이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앱인 ‘블라인드’에 관련한 글을 올린 게 있다. 

금감원의 한 직원은 “우리 집이 털린 것 같아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사실관계를 확인해 관련 부서에서 적절히 조치해 달라”고 썼다. 다른 직원은 “국가중요시설 좋아하고 있네”라며 씁쓸한 글을 남겼다. 또 다른 직원은 “방호과 분들은 우리 금감원 직원도 신분증이 없으면 1층에서 출입증 받으라고 안내하고 게이트를 안 열어준다”며 이번 일이 이례적임을 짚었다. 우리은행 블라인드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는 터져 나왔다. 

이해충돌 논란 방치하고 있는 금감원

금감원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금감원 스스로 자초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바로 이해충돌 문제다.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사·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감독기관이고, 우리은행은 그 감독을 받는 피감기관이다. 둘 사이의 거리가 충분히 유지돼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금감원 지하 1층에 위치한 우리은행 금감원지점은 20년 넘게 단 한 번의 입찰공고 없이 계속 우리은행이 차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시금고 지정을 두고 공개적으로 입찰이 벌어지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금감원의 자산관리규정 제14조에 따르면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공개입찰이 원칙이다. 금감원 측은 금감원의 전신인 증권감독원 시절부터 계속 우리은행이 있었다는 입장이지만, 증권감독원은 말 그대로 증권시장의 관리·감독을 하던 기관이라 은행과는 이해충돌이 벌어지지 않는다. 

금감원과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손 회장의 금감원 무단침입 사건 이전부터 둘 사이가 너무 가깝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금감원의 내부 관계자는 “우리은행 금감원지점장을 금감원과 밀접한 업무를 담당했던 우리은행 검사부 출신이 연달아 맡는 등 내부에선 이미 불가근불가원 원칙이 깨졌다는 목소리가 컸다”며 “‘우리은행 지점이 대관(對官)의 전초기지가 됐다’는 지적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은행이 계속 금감원의 지점을 맡아야 할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우리은행 내부에서조차 이런 분위기는 감지된다. 이번 손 회장의 금감원 무단침입과 관련해 한 우리은행 직원은 블라인드에 “금감원 지하 우리은행 지점에서 열어준 것 아닌가요? 거기가 임원들의 대관업무 시 의전 담당이라고 들었는데, 이 시국에 조심하지”라고 썼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실제 우리은행 내부에는 우리은행 금감원지점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꼭 금감원 내 은행지점으로 우리은행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금감원은 일시적 여유자금을 정기예금 등으로 운용하는데, 금리 상위 기관 3곳에 3개월 만기로 분산 예치한다. 여기에는 우리은행 금감원지점을 포함해 여의도에 있는 시중은행 및 특수은행이 포함된다. 이 흐름을 보면 금감원은 과거 우리은행 지점을 많이 이용했지만, 2019년 이후 우리은행의 제시 금리가 낮아 정기예금 예치 비중을 축소했다. 2010년 725억원(비중 32%), 2011년 1724억원(37%), 2012년 2175억원(47%) 등으로 꾸준히 증가했지만 이후 계속 감소해 2018년 1830억원(32%), 2019년 564억원(11%), 2020년 9월 기준 307억원(11%)으로 줄어든 것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이번 손 회장의 무단침입 사건을 계기로 공개입찰과 같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 내부 관계자는 “이런 논란에 구태여 휩싸일 필요가 없다”며 “금감원과 이해충돌 문제가 없는 새마을금고나 신협을 활용하면 된다. 투명한 공개입찰을 통해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금감원은 우리은행 지점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도, 특혜를 준 일도 없다”면서 “감독자와 피감독자의 관계가 아닌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밝혔다. 공개입찰을 거쳐 새마을금고와 신협 등으로 교체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입찰을 거쳐 은행을 바꾸게 되면 우리뿐만 아니라 은행 측의 제반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또 은행과 새마을금고 등은 다루는 업무 영역의 차이가 있어 기관의 운영자금을 다 맡을 수 없는 등 애로사항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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