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전환 서두르는 세계, 한국은 여전히 걸음마 [최준영의 경제 바로 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6 11: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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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00 시대’엔 전력 100%를 재생 에너지로 충당해야 
K-탄소 중립 대책 시급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소니를 비롯해 세계적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일본 내각의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을 만나 재생 에너지 전력구매를 위한 제도적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애플을 비롯한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점차 납품업체들에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줄이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업체들은 이런 요구에 맞춰 재생 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려 하지만 비용이 많고 구입 자체도 쉽지 않은 만큼 현재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일본을 떠날 수도 있다고 정부에 경고했다. 

최근 일본의 스가 총리는 2050년까지 일본을 탄소 중립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약하는 등 재생 에너지 보급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체적 방안이 아직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선수를 친 셈이다. 일본의 재생 에너지 비중은 2018년 기준 17% 수준으로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24%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2050 탄소 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한 12월7일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2050 탄소 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한 12월7일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연합뉴스

탄소 중립으로 세계 경제 질서 급변

소니도 일본 이외의 해외 사업장 가운데 유럽에서는 100% 재생 에너지로 운영하고 있다. 중국 사업장과 미국 사업장도 각각 2021년, 2030년까지 100% 재생 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2040년까지 일본을 포함한 모든 사업장을 재생 에너지로 가동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 애플이 주요 제조 협력사들에게 2030년까지 100%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라고 요구해 당초 계획을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일본 기업만 안고 있진 않다. 최근 출시된 아이폰 12의 경우 한국에서 생산된 부품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즉 우리도 동일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애플 외에도 구글과 BMW 등 세계적 기업 269곳은 현재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 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Renewable Energy)을 선언한 상태다. BMW는 자사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삼성SDI에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애플도 소니 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참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2014년 뉴욕 기후주간에서 출발한 RE100 캠페인은 전 세계 전력소비의 40~50%를 차지하는 기업들이 재생 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을 15%까지 줄일 수 있다는 계산에 따라 시작됐다.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강화 추세와 맞물리며 많은 세계적 기업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구글과 애플 등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기업이 더욱 적극적이다. ICT 분야는 데이터센터 유지 등을 위해 대량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어 온실가스 증가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어 왔는데, 이런 사회적 비판을 불식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과 탄소 배출 저감은 확고한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점차 무역 및 통상 부문의 공식화된 규범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탄소 배출은 단순한 기업 활동의 결과물이 아닌 비용과 기업의 리스크로 간주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나 주요 투자자들 역시 기업 경쟁력을 평가할 때 재생 에너지 사용비율을 포함한 기후변화 대응 지표를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RE100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국제적 추세도 구체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최근 가입을 신청한 SK그룹의 8개사를 제외하고는 아직 RE100을 선언한 기업이 없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는 한국의 낮은 재생 에너지 비중이 꼽힌다. 

올해 8월 유럽계 에너지 분야 전문 컨설팅업체 ‘에너데이터(Enerdata)’에 따르면 한국의 재생 에너지 비중은 4.8%(40위)로 44개 조사 대상국 평균 26.6%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OECD 30개 국가 평균은 27.2%였다. 일본 10.6%, 중국 8.7%, 태국 4.5%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의 ‘2020년판 전력통계속보’를 통해 2019년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을 보면 석탄(40.4%), 원자력(25.9%), LNG(25.6%)에 이어 신재생 에너지는 6.5% 수준이다. 자료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지만 우리의 재생 에너지 비중이 매우 낮음은 분명하다. 

전력거래소가 발간한 ‘2019년도 발전설비현황’을 보면 발전설비 용량 기준으로는 신재생 에너지가 1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전력생산량은 설비 비중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산업부가 밝힌 바와 같이 원전 가동률은 85% 수준이지만 태양광은 15%대에 머무르고 있어 이런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기업들로서는 추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재생 에너지 활용을 늘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9월 그린뉴딜 정책간담회(재생에너지 정책협의회)를 개최해 2021년부터 기업의 RE100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녹색 프리미엄제, 인증서(REC) 구매, 제3자 전력거래계약(PPA) 등 5가지 수단을 시행하고, 이를 위한 법률 및 제도 정비를 올해 안에 마무리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어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독과점 전력시장 체계 개편해야

RE100으로 대표되는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전체 전력시장 및 가격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의 전력시장은 정부가 결정한 운영 방식을 따르면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식으로 재생 에너지 및 에너지 저장시설 확대를 도모해 왔다. 이 방식은 단기적으로 시설용량 확대를 가져오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존의 중앙집중적 발전 방식 및 송전망과 분산형의 재생 에너지를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체계와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전통적인 정부 주도 요금체계와 획일적 정책에 집착하고 있다. 

RE100은 단순히 기업들에게 더 많은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과제다. 발전, 송전 및 배전에 이르는 체계를 새롭게 정비하고, 독과점 구조에서 탈피해 다양한 참여자와 시도, 그리고 경쟁이 이루어지는 전력시장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제조업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전력을 공급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전력 산업의 변화를 통해 제조업과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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