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국토부'에 더 큰 혼돈 빠진 북항 재개발
  • 권대오 영남본부 기자 (sisa521@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0 12:00
  • 호수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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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숙박시설’ 규제한다면서 ‘호텔 전세’ 장려…정부 엇박자 정책에 지자체 울상

레지던스로 먼저 알려진 ‘생활숙박시설’. 이는 지난 1998년 외국인 장기 여행객을 위해 도입된 것으로 취사가 가능한 숙박시설이다. 일반적으로 호텔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내 취사나 세탁 등의 시설을 갖춰 아파트처럼 생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비(非)주거시설이기 때문에 아파트가 들어설 수 없는 해변가에도 건설이 가능하다. 생활숙박시설이 일반 아파트와 다른 독특한 입지와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급 주거지란 인식이 퍼지는 이유다. 

생활숙박시설은 전세·월세 계약이 가능하고, 전입신고도 문제없다. 한마디로 급변하는 주거 트렌드에 맞춰 아파트와 호텔·오피스텔의 장점만을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거주공간이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주택은 아니다. 당연히 국토부가 내놓은 각종 주택 규제 정책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주택 수에 산정되지도 않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주택 규제를 피해 가는 새로운 투자수단으로 생활숙박시설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다. 반면 이를 ‘편법 주거시설’이라며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 북항 재개발 D3 구역에 분양 예정인 롯데캐슬 드메르 조감도 ⓒ롯데건설제공
부산 북항 재개발 D3 구역에 분양 예정인 롯데캐슬 드메르 조감도 ⓒ롯데건설제공

빗발치는 생활숙박시설 규제 요구

부동산 정책의 혼란이 커지면서, 올 하반기 생활숙박시설에 대한 규제 요구가 빗발쳤다. 7월2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서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산 사하갑)은 “생활숙박시설이 아파트화된다. 친수공간을 결정적으로 훼손 또는 변질시킨 것은 항만공사의 분명한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생활숙박시설이 편법으로 주거시설로 활용되고 있다는 질타였다. 이에 대해 부산항만공사는 북항 재개발사업에서 생활숙박시설의 추가적인 건립은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기찬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매각되지 않은 부지에 대한 계획을 수정하고, 북항 재개발 2단계는 사전에 생활숙박시설이 들어올 수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10월23일 국회 국토교통위 국감에서 조응천 민주당 의원(경기 남양주갑)은 “해운대 LCT 레지던스 등 생활숙박시설이 사실상 주거시설과 투기의 대상으로 이용되고 있다”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대책을 물었다. 당시 김 장관은 “분양할 때 주택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불법 용도변경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 건축법과 분양법을 개정해 거주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 전입신고가 안 되면 될 것 같다”고 규제 대책을 밝혔다.

11월16일 부산시 행정사무감사에서 이산하 부산시의원은 “전입신고를 막으면 생활숙박시설이 주거용으로 사용되지 못한다”며 전입신고 규제를 요구했다. 부산시는 “(생활숙박시설) 전입신고는 숙박시설을 주택으로 무단 용도변경한 것으로 건축법 위반 단속 대상이다. 강제이행금이 부과된다”고 답변했다.

생활숙박시설에 대한 규제 요구가 거세지면서 부산항 북항 재개발 1단계 생활숙박시설도 논란이 됐다. 상업업무지구 D1·D2·D3 구역에 사실상 주거가 가능한 생활숙박시설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생활숙박시설로 이미 분양된 D1 구역 ‘협성 마리나 G7’은 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내년 4월경 입주 예정이다. D3 구역 ‘롯데건설 드메르 레지던스’도 분양을 앞두고 있고, D2 구역 ‘동원 더 게이트(The Gate)’ 역시 생활숙박시설이 계획돼 있다.

인근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주민들은 지난 4월23일 건축 허가가 난 D3 구역에 특급호텔을 기대했다. 하지만 뒤늦게 생활숙박시설로 허가가 난 사실을 접하면서 크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D1 구역은 200m, D2·D3 구역은 280m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곳이다. 롯데건설 드메르 레지던스는 조망권 논란을 고려해 처음 제안했던 72층 초고층 계획을 포기하고, 60층 규모로 높이를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주민 반발을 피해 가지 못했다. 최형욱 동구청장은 D3 구역 생활숙박시설 건축허가가 떨어지자마자 곧장 기자간담회를 열고 “건축허가는 부당하다”고 밝혔다. 5월25일 동구 주민들은 ‘북항막개발 반대 시민모임’을 결성한 후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부산시청 항의 집회도 열었다. 배인한·김성식·이상욱 동구의회 의원은 삭발 항의로 강한 반대의 뜻을 밝혔다.

주민 반발이 거세자 부산시는 동구청·시민단체·구의회·사업자 등이 참여하는 ‘북항 민원 해소 협의체’를 구성해 협의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협성 마리나 G7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산복도로 거주지의 조망을 가린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주민 반대와 레지던스 규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롯데건설 드메르 레지던스는 건축허가가 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분양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7월21일 김성식 부산시 동구의회 의장(왼쪽)과 이상욱 의원이 부산시청 앞에서 북항 막개발에 반대하는 의미로 삭발하고 있다. ⓒ부산동구청
7월21일 김성식 부산시 동구의회 의장(왼쪽)과 이상욱 의원이 부산시청 앞에서 북항 막개발에 반대하는 의미로 삭발하고 있다. ⓒ부산동구청

부산시 “우리는 법에 따라 허가 낸 것뿐” 억울

부산시는 동구청과 주민들의 반발에도 D3 구역 롯데건설 드메르 레지던스의 건축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법에 따른 허가인데도 비난이 쏟아지자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해당 구역 지구단위계획과 사업자 모집 공모 지침에 따라 생활숙박시설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부산시의 억울함은 시의회 답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7월13일 부산시의회 본회의에서 노기섭 시의원은 “부산시가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생활숙박시설을 규제할 기회를 놓쳤다”고 성토했다. 2013년 북항 재개발사업에 생활숙박시설이 도입됐지만, 그 이후인 2018년 D2·D3 구역 토지를 공모했기 때문에 부산시가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규제가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광회 부산시 도시균형재생국장은 “사업성이 없어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부산시는) 2012년 경실련·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와 도시계획건축 전문가들로 라운드테이블을 만들어 이를 결정·고시했다”고 답했다. 생활숙박시설이 주거 용도로 전용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관련 법에 따라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나왔다. 김민근 건축주택국장은 “해수부·부산항만공사가 생활숙박시설로 사업계획서를 받고 땅을 매각했는데, 건축 인·허가 과정에서 건축허가를 불허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도시계획, 즉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해수부와 부산항만공사는 적절하게 대응이 안 됐다. 부산시는 좀 억울하다”고 해명했다.

D3 구역 롯데건설 드메르 레지던스 관련 ‘민원 해소 협의체’도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는 허가를 취소하라”는 동구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시는 “임의적 허가 취소는 책임 소재 등 여러 문제점을 동반한다. 사업자와 동구 간 협의하에 대안을 마련하라”는 입장이다. 생활숙박시설 허가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부산항만공사도 “도시관리계획과 지구단위계획상 생활숙박시설은 당초부터 가능한 시설”이라고 밝혔다. 남기찬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국감 자리에서 “공모 신청한 업체 7곳 모두 생활숙박시설을 제안했고, 외부 전문가 평가로 업체를 선정했다”고 설명하면서 기존 입장을 뒷받침했다. 

롯데 드메르 측은 “더 이상 분양을 미루기 어렵다”고 했다. 민원 협의를 위해 분양을 미루고 있지만,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들 간 이해관계가 있어 분양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롯데 드메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연구원 등 제3의 연구기관에 의뢰해 구체적 방안이 결정되면 그것에 따른 사회적 기여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롯데 드메르는 “동구청이 필요하다고 하면 드메르 근린생활시설 일부를 무상으로 공공시설로 기부채납할 수 있고, 노후된 주민센터를 새로 짓는 등 기여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부산 북항 재개발 상업업무지구 모형도 ⓒ해양수산부 제공
부산 북항 재개발 상업업무지구 모형도 ⓒ해양수산부 제공

실효성 의문되는 생활숙박시설 규제

그런데 문제는 이렇듯 생활숙박시설에 대한 각종 규제 대책이 나오는 와중에, 오히려 생활숙박시설 등을 장려하는 듯한 정책과 계획도 국토부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수시로 달라지는 엇박자 정책으로 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11월19일 국토부는 관광호텔 등 숙박시설을 주택으로 개조해 전세난을 해결하겠다며 ‘호텔 전세’ 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김현미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호텔을 리모델링해 제공하는 것은 유럽이나 주거복지를 하는 나라에서 비주거용 건물을 리모델링해 1~2인 가구에 제공하고 남은 상업시설을 커뮤니티 시설로 개조해 임대하는 방식이다. 굉장히 호응도가 높은 사업”이라며 “호텔이 질 좋은 청년주택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국토부는 숙박시설이 주로 도심에 위치해 입지가 우수하고, 주거시설과 유사해 신속한 공급이 가능하다며 ‘호텔 전세’의 장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생활숙박시설 규제와 상반되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생활숙박시설은 호텔에 주방이 더해진 숙박시설로 구조 변경을 하지 않아도 주거가 가능하다. 반면 ‘호텔 전세’ 정책은 주방이 없는 호텔을 숙식이 가능하도록 구조를 변경한 후 공급하는 정책이다. 결과적으로 주방이 있는 생활숙박시설은 주거를 못 하게 규제하면서 주방이 없는 호텔은 주거하라고 장려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북항 재개발 1단계 생활숙박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그 와중에 북항 재개발 2단계 시행자로 나선 부산시는 초고층 건물과 주거시설을 대거 계획에 포함시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부산시는 D3 구역 생활숙박시설 부지와 인접한 부산진역 조차시설 부지에도 주상복합아파트를 배치하고, 자성대부두 일원은 초고층 상업시설·주상복합·주거시설을 집중 배치했다. 북항 재개발 1단계 계획에는 일부 구간인 복합도심지구만 주거시설이 허용됐다. 하지만 북항 재개발 2단계 계획에는 상당한 구역이 주거시설 내지 유사 주거시설로 계획됐다. 논란이 되고 있는 생활숙박시설도 ‘필수 도입 시설’로 계획된 것이다.

국토부 장관이 제시한 생활숙박시설 규제안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생활숙박시설은 주거가 아닌 숙박시설로 분양한다. 분양 단계부터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로 설계된다. 불법적으로 구조를 변경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주거가 가능하다. 실제 주거를 하더라도 명목상으로 장기 숙박의 개념으로 거주한다. 이 때문에 편법 주거를 하더라도 단속이 쉽지 않다. 조응천 의원조차 국토부에 다른 방안을 요구하며 “(단속은) 지자체가 한다. 단속하는 건 남이 사는 집 문을 따고 들어가야 된다.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다”고 지적할 정도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웠던 부산 북항 재개발지역은 지금 ‘혼돈’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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