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냐 보존이냐”…광주 신양파크호텔 개발 ‘도마’에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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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추억서린 명소, ‘신양캐슬 부활 vs 녹지 복원’ 갈림길
환경단체 “도시관리 기본원칙 어긋나…복원해야”
개발업체 “무등산 자락 환경 훼손은 최소화될 것”

‘개발이냐, 보전이냐’ 

광주 동구 법원 뒤편에서 지산유원지 방향으로 무등산 자락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대형 호텔이 보인다. 한때 광주 호텔의 대명사였던 신양파크호텔이다. 지난해 말 폐업한 이곳을 어떻게 사용할 지를 놓고 최근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역의 한 건설업체가 이 호텔을 허물고 이른바 ‘신양캐슬’이라고 불리는 고급빌라를 짓는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다. 하지만 지역 환경단체가 환경훼손과 연쇄 난개발의 빌미 제공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호화 공동주택 건립 여부는 미지수다. 광주 시민들의 추억이 서린 신양파크호텔이 ‘신양캐슬’로 부활할지, 아니면 녹지로 복원될지 지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립공원 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신양파크호텔 ⓒ시사저널
국립공원 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신양파크호텔 ⓒ시사저널

‘광주판 신양캐슬’ 추진하는 개발업체 

광주에 소재한 A업체는 신양파크호텔 부지 등 2만5000여㎡에 지하 3층·지상 4층 규모의 50평에서 60평대 연립주택 80세대 공동주택단지를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은밀히 진행되던 이 사업은 지난해 9월 개발업체가 동구청에 주택건설사업 승인신청을 내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재 해당 사업은 광주시로 넘어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받고 있다. 개발행위 심의신청을 받은 광주시 도시계획위원회는 4차례에 걸쳐 보완 요구를 한 상태다. 기존 호텔 법인 외 1개 업체는 제출한 사업계획이 서류보완 요구를 받자 규모를 일부 축소해 재신청했다.

변경안은 부지 면적을 약 3만㎡에서 2만5000㎡가량으로, 7개 동 96세대를 6개 동 80세대로 줄였다. 지하 3층과 지상 4층인 연립주택 층수는 원래 계획대로 유지했다.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동구가 건축심의, 관련 부서 협의를 거쳐 최종 사업승인 여부를 정한다. 신양파크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A사와 부동산 업계는 위치와 경관 등을 고려할 때 평당 2500만 원 수준의 분양가를 예상하고 있다. 

 

반대하는 환경단체 “난개발·녹지보존 둑 무너져”

하지만 환경운동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호텔을 계획할 당시에도 특혜논란이 있었다며 부지를 원래대로 복원하거나 공공 부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참여한 ‘무등산 신양캐슬 신축 반대 시민연대’는 10월 22일 광주 동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동주택 계획 부지의 복원을 촉구했다.

시민연대는 “국립공원인 무등산 자락의 자연녹지, 준보전산지에 공동주택단지가 들어선다면 도시관리 기본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발독재 시기에 만들어진 신양파크호텔이 더는 필요 없게 됐다면 무등산 입지에 맞게 복원해야 한다”며 “광주시와 동구청은 계획을 반려시키고 복원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환경단체는 이곳의 공동주택 건설로 녹지보전의 둑이 무너지면 인근 일대에서 걷잡을 수 없는 난개발행위가 벌어질 것을 우려한다.

시민연대는 “무등산의 주택단지 개발은 신양캐슬 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며 “지산유원지에 주택단지를 만드는 계획이 광주시에 제출됐고 인근에 또 다른 주택단지 사업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있어 연쇄 개발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등산보호협의회 관계자도 “신양파크호텔은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 시민의 뜻과 무관하게 세워졌다”며 “무등산 중턱을 헐어 호텔을 지은 자체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단체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공동주택을 건설하는 것은 명분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일대는 전남도(광주시와 분리 전)가 1976년 민간자본을 유치해 지산유원지를 건설해 1980년대까지 지역민을 위한 대표적 관광레저공간으로서 기능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유원지 기능을 상실하고 유원지개발 일환으로 지어졌던 호텔도 경영이 악화돼 주인이 몇 차례 바뀌었다. 2000년대 초반 유원지 용도지역이 자연녹지로 일부 변경되기도 했다. 유원지가 제대로 운영될 때에는 그나마 공공성을 띠었지만 이제는 역할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A업체 측은 “새로 건축되는 건물이 현재 호텔 부지와 주차장 등 이미 개발된 부분을 활용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등산 환경 훼손은 최소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현재 계획대로 건축이 진행된다면 산지가 새롭게 훼손되는 부분은 호텔입구 쪽 500평 정도에 불과하다”며 “해당 땅에 심어진 소나무들도 다른 장소로 옮겨 심어 자연 훼손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논쟁 2라운드 “공유화 하자” vs “팔 생각 있다” 

이처럼 환경단체의 반대 속에 최근 변화된 기류가 감지돼 신양파크호텔 개발 논란이 2라운드에 접어든 분위기다. 무등산보호단체가 이 부지를 사들여 공유화하는 논의를 해보자고 나섰고, 개발 추진 업체도 광주시가 사겠다면 팔겠다고 전향적인 의사를 밝히면서다.  

무등산보호단체는 17일 광주시의회 정책토론회에서 광주시와 동구청이 연립주택 건축을 허가할지 말지 정확한 입장을 정하고, 이를 사들여 공유화하는 방안도 공개적으로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재창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대표는 “공유화로 갈 수가 있다고 하면,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보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동의는 시민에 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형국 신양파크호텔 개발업체 이사는 “행정 지연으로 인해 손해가 크다”며 “불법이 없으면 연립주택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김 이사는 “개발 사업은 계속 추진하겠지만 광주시가 사들일 의사가 있다면 팔 의향이 있다”면서 “광주시가 이걸 매수할 의향이 있다면 저희가 오늘이라도 당장 사업을 포기하고 사업계획 취하 신청을 내겠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이상배 광주시 도시재생국장은 “신양파크호텔 부지 공유화는 한정된 예산과 시민 합의 등의 문제로 자체적으로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신양파크호텔 건너편에 들어선 고급빌라촌 ⓒ시사저널 정성환
신양파크호텔 건너편에 들어선 고급빌라촌 ⓒ시사저널 정성환

신양파크호텔은 어떤 곳?

무등산 장원봉 인근에서 1981년 문을 연 3성급 신양파크호텔은 무등산 일대가 훤히 보이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지역 대표 고급호텔로서 명성을 떨쳤다. 이 호텔은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로 객실(87개) 외 중국식당, 휘트니스클럽, 이발소, 연회장 등 부대시설을 갖췄다. 2000년대 초반까지 무등산 자락의 입지적 여건으로 ‘숲속의 호텔’로 불리면서 지역민과 관광객들이 애용했다. 특히 굵직한 정치·경제·스포츠·문화 행사가 열렸고, 유명정치인들의 강연 장소와 유력 인사들의 사교, 결혼식 장소로 활용됐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원년(1982년)과 거의 때를 같이해 문을 연 신양파크호텔은 기아타이거즈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주요 행사장과 프로야구 원정팀 숙소로 쓰여 프로 야구 팬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한때 호텔 내 빠칭코(일본 도박 게임의 하나)와 룸살롱, 나이트클럽 등이 성업하면서 '신양 OB파'라는 조직폭력배가 결성될 정도로 광주의 대표적인 유흥지로도 손꼽혔다. 

2000년 초반, 전남도청이 이전하는 등 구도심이 점차 활기를 잃어가고 상무지구에 4성급 호텔과 유흥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신양파크호텔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때 광주를 대표하는 호텔이었지만 시설 노후와 영업 부진 등으로 영욕을 뒤로 한 채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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