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윤석열] 文이 만든 ‘尹 효과’, 文을 덮치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8 08: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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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선정 2020 올해의 인물’ 윤석열 검찰총장
정은경 청장 제치고, 최초 2년 연속 선정

김대중 정부 때 KBS 사장을 역임한 박권상(1929~2014) 전 시사저널 주필은 1989년 10월 시사저널을 창간하면서 미국의 ‘타임’과 ‘뉴스위크’ 등 서구 선진 매체를 롤모델로 정했다. 창간과 함께 이들의 제작 시스템을 동시에 들여온 그가 10월29일자 첫 커버스토리로 미국 《유에스뉴스》의 ‘Who Runs America?’의 한국 버전인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를 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송년호를 통해 미국 ‘타임’의 간판 기획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을 한국에 처음 선보였다.

1927년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를 뽑으면서 시작된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 선정 과정은 무척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인류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 이만 뽑는 것은 아니다. 1938년엔 독일 나치스를 이끈 독재자 히틀러가 뽑히기도 했다. 소련의 독재자로 악명이 높았던 스탈린도 1939년, 1942년 두 차례나 올해의 인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서 한 사람이 해를 거듭해 뽑힌 일은 거의 없다. 전 세계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하는 선정이기에 그럴 수 있겠지만, 특정 인물에 편중된다는 비판을 차단하기 위함이 더 크다. 93년에 이르는 올해의 인물 선정 역사에서 연이어 뽑힌 사례는 1971년과 1972년(헨리 키신저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공동 수상)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유일하다.

ⓒ시자저널 임준선

文 정부와 운명공동체인 尹, 왜 갈라섰나

시사저널이 선정한 2020년 ‘올해의 인물’ 주인공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1989년 창간 이후 특정인이 2년 연속 뽑힌 것은 이번 윤 총장 사례가 처음이다. 지난 2년간 윤 총장이 우리 사회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것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최우선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말이다.

검찰 수장인 검찰총장에 선임될 때만 해도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와 운명공동체처럼 보였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최선두에서 지휘한 이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할 때만 해도 지금의 여권은 윤 총장을 향해 각종 찬사를 늘어놓았다. 문재인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적폐 청산을 위해선 거대한 ‘칼춤 판’이 필요했는데, 그 주인공으로 윤 총장만 한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다.

2019년 6월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하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할 때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비롯해 여권 인사들이 윤 총장에게 21대 총선 출마를 권유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총장님”이라며 연신 호감을 표시하던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 이러한 여권의 전반적인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

역대 올해의 인물 조사에서 검찰 출신 인사가 뽑힌 것은 1999년 최병모 옷로비 특검팀과 2003년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검사장), 지난해 윤 총장 이렇게 세 번이다. 한시적 성격인 최병모 특검팀을 예외로 치면, 순수 검사는 안 검사장과 윤 총장 단 두 명뿐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권력형 비리에 과감하게 칼날을 들이댔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중수부장에 임명된 안 검사장은 2003년 헌정 사상 처음 ‘여야 불법 대선자금’이라는 뇌관을 예리하고 정밀하게 수사해 ‘국민검사’ 반열에 올랐다. 안 검사장 이후 국민검사 호칭을 이어받은 이가 바로 윤 총장이다.

지난해 윤 총장이 시사저널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데는 성역까지 깨부순 국민검사의 이미지가 밑거름이 됐다. 친문(親文)이 민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명이자 화려한 언변과 스펙으로 무장한 서울대 교수 출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까지 칼날을 들이대는 것에 대중은 열광했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엔 커다란 흠집을 냈지만 검찰과 윤 총장의 주가는 크게 높여줬다. 윤 총장이 자연스럽게 권력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그를 누구보다 믿었기에 여권이 받은 충격은 더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권 인사의 말이다.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를 놓고 상부와 갈등을 겪는 와중에 국회에 나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고 말할 때 그가 ‘골수 검찰 제일주의자’라는 걸 간파했어야 했다. 검찰 개혁이라는 대세에 따르겠다는 말만 믿고 그에게 칼자루를 쥐여준 게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패착이다. ‘정권은 우리가 만든다’는 잘못된 인식은 윤석열 검찰 때도 여실히 보여줬다.”

여러 이야기를 종합하면 ‘윤석열 검찰’에 대한 여권 일각의 우려는 수차례 청와대에 전달됐다. 2018년 사법농단 수사 때 검찰 조사를 받았던 판사들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끈 수사팀이 피의사실 공표와 압수수색·출국금지·소환조사를 남발한다고 호소했다. 이인영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6월19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전반적으로 윤 후보자의 강직함을 강조하면서도 “경우에 따라 윤 후보자가 가진 칼날은 양면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2월22일 대검찰청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2월17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윤 총장 고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시자저널 박정훈·연합뉴스
12월22일 대검찰청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2월17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윤 총장 고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시자저널 박정훈·연합뉴스

“‘싸가지 없는 정치’ 계속돼 우리 사회 큰 위기”

지난해 윤석열 검찰에게 호되게 공격을 받은 여권은 절치부심 끝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라는 반격 카드를 내놓았다. 추 장관은 전임 조국 장관과는 살아온 인생역정이 다른 인물이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이 이를 말해 준다. 여권은 정치인 출신 장관을 기용해 윤 총장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어댔다. 총장과 상의한 후 결정하던 오랜 관행을 깨고 법이 정한 원칙대로 인사를 내 검찰 내 ‘윤석열 라인’을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그 신호탄이었다.

그럴수록 검찰은 윤 총장을 중심으로 더 뭉쳤다. 2018년 울산시장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을 수사한 것이나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건을 권력형 비리인 게이트로 보고 수사 범위를 넓힌 것에서 이러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감사원이 고발한 월성원전 비리 의혹에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로 수십 년간 쥐고 있던 기소독점권, 영장청구권을 빼앗길 처지에 놓이자 검찰은 권력을 상대로 진검승부에 돌입한 모습이다.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 자는 2020년 한 해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숙제를 남겼다.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윤 총장과 여권의 충돌은 진보-보수라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갈등을 다시 끄집어냈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앞장설 때 윤 총장과 검찰을 향해 비난을 퍼부어대던 보수진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영 일색이다.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다. 적폐 청산의 일등공신이라며 치켜세우던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윤비어천가’를 부르던 여권 관계자들은 이제 윤 총장을 가리켜 ‘배은망덕한 배신자’라는 말을 서슴없이 입에 올린다. 광화문 일대를 뒤덮었던 촛불은 이제 서초동 대검 청사 주변에 몰려들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민주주의와 절차를 중시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법률에 의한 지배를 놓고 갈등하는 것 자체가 우리 민주주의 및 사회가 성숙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햇수로 2년째 진행 중인 ‘윤석열 정국’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 자신이 피해자며 상대방이 가해자라는 논리를 펴기 때문이다. 2019년 조국 사태가 ‘시즌1’이었다면 추 장관이 가세한 2020년은 ‘시즌2’다. 추-윤 사태는 친문과 반문 양측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결과를 안겼다. 본격적인 대선전이 열리기까지 1년 이상 남았지만 양측은 차기 권력을 쥐기 위한 주도권 싸움에 들어갔다. 그 ‘갈라치기’의 시작을 연 이가 바로 윤 총장이다.

지난해가 공정과 불공정의 싸움이었다면 올해는 살아 있는 권력과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극적 효과는 더 크다. 이는 우리 국민이 윤 총장과 검찰의 행보를 더욱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학자는 지금의 윤석열 효과는 문재인 정부가 권위주의적으로 흘렀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비판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12월24일 출간된 신간 《싸가지 없는 정치》에서 “여당 집권 이후 ‘싸가지 없는 정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선정했나] 최종 과정에서 정은경 청장과 치열한 경합

시사저널이 매년 12월 마지막 주 발간하는 송년호에서 발표하는 ‘올해의 인물’은 세 번의 과정을 통해 선정된다. 우선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이 올 한 해 동안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사물·사건 포함)을 추천한다. 기자들의 추천을 통해 거론된 인물들을 후보로 해서 2차 선정 작업에 들어간다. 2차 조사는 시사저널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투표 방식으로 진행됐다. 1, 2차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최종 3차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2020년 ‘올해의 인물’ 선정 작업에서 최대 이슈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갈등구도였다. 코로나19 방역을 상징하는 인물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윤석열 총장이 최종 후보에 올라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경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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