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리더’ 등극과 동시에 시험대에 선 최태원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1 14:00
  • 호수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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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SWOT’ 기법으로 분석
SK 실적 호조 업고 광폭 행보
돌발 행동·가족 문제 등 리스크도 산적

“국가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월1일 서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추대된 뒤 밝힌 소감이다. 서울상의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는 관례에 따라 최 회장은 오는 3월24일 한국 경제계 리더 격인 상의 회장으로 등극할 예정이다. 최 회장의 어젠다는 행복 추구, 사회적 가치 창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쟁력 강화 등 기업 경영 방식에서 더 나아가 나라 전체를 아우르게 됐다. 이 같은 광폭 행보가 가능해진 배경과 짚어봐야 할 지점을 ‘SWOT’ 기법으로 분석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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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연합뉴스

▶강점(Strength) 

최태원 회장의 강점은 단연 SK가 보여주고 있는 성과다. 대한상의는 최 회장을 차기 수장으로 추대하는 데 ‘경영 업적 및 글로벌 역량’ ‘ESG 경쟁력’ ‘한국 경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 등이 고려됐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경영 업적이 나머지를 견인한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대표 박주근)가 국내 64개 대기업집단의 지난해 9월 기준 공정자산과 인수·합병 및 계열분리 등을 감안해 올해 자산 변화를 예상한 결과, SK는 1년 새 자산 규모가 6조5110억원 늘어난 232조370억원으로 재계 3위를 유지할 전망이다. 2위 현대자동차그룹보다 11조6500억원 적고, 4위 LG그룹보다 94조840억원 많다. 

하지만 SK의 지난 10년간 자산 성장률은 10대 그룹 중 가장 높다. 영업이익률도 최고 수준이다. SK가 2012년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를 인수한 영향이 컸다. 당시 최 회장은 그룹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이닉스 인수를 감행했다. 그리고 신약(SK바이오팜), 백신(SK바이오사이언스) 사업에도 계속 힘을 기울였다. 이 결정들에 힘입어 1998년 최 회장 취임 당시 재계 5위였던 SK는 이제 2위를 넘보게 됐다. 

선봉에 선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5조126억원으로 전년보다 84.3% 급증했다. 성과에 연륜이 더해지면서 최 회장은 자연스레 4대 그룹(삼성전자·현대차·SK·LG) 총수 중 리더로 부상했다. 실제로 4대 그룹 총수들은 최 회장의 주도 아래 사석에서 종종 만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차기 회장으로 낙점된 최 회장에 대해 “처음으로 4대 그룹의 총수가 상의 회장을 맡는 만큼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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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Weakness) 

최태원 회장의 빠른 판단과 앞뒤 재지 않는 행동은 결과적으로 SK 경영에 도움을 줬지만, 종종 잡음을 내기도 했다. 

SK가 1월26일 SK 와이번스를 신세계그룹에 넘기기로 한 직후 세간의 시선은 두 그룹 총수에게 쏠렸다. 프로야구단 인수의 숙원을 이룬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기대감이 쏟아진 반면, 최 회장에게는 서운함이 표출됐다. 재정난에 시달리긴커녕 모기업이 호황을 누리는데도 갑작스레 프로야구단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SK 와이번스 선수단과 프런트, 한국야구위원회(KBO) 등은 물론 그룹 경영 실무진조차 배제된 채 이뤄진 ‘빅딜’이었다.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최 회장뿐일 거란 업계 추측에 대해 SK 측은 총수 차원의 결정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SK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구단주는 엄연히 (최 회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며 “물론 그룹 수장인 최 회장이 해당 사안에 대해 최종적으로 ‘노(No)’를 했으면 안 됐겠지만, 사전에 매각을 주도하고 정 부회장과 논의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SK 와이번스 구단주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이번 매각 때 전혀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그는 최 회장의 사촌동생이며 SK 창업자 고(故) 최종건 회장의 3남이다. 조용한 성격에 사촌형이자 그룹 총수인 최 회장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초 SK 와이번스 구단주를 맡았을 때도 최 부회장은 “최태원 회장님께서 야구단을 맡아 달라고 하셨다”고 언급했다. 사실상 야구단을 비롯한 그룹 경영 전반이 최 회장 손에 달려 있음을 방증한다. 

논란은 최 회장의 전광석화 같은 결단 뒤에 이렇다 할 설명이 이어지지 않으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사회적 가치와 ESG 경영에 매진한다는 기조에 따른 것’이라는 내용도 그룹 내외부에서 추측성으로 나돌며 아예 공식 입장처럼 굳어졌다. 이에 ‘SK가 운영하는 여타 프로스포츠단은 그룹 기조에 반하는데 억지로 운영한다는 건가’라는 의문이 터져 나오자 SK 관계자는 “ESG 등 그룹 경영 상황과 야구단 매각은 상관없다”고 수습했다. 

그룹 전체가 구단 매각 문제로 시끌시끌한 와중에 최 회장은 “SK하이닉스로부터 받은 지난해 연봉을 모두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2월1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6 준공식에서 경영진 차원의 논의 없이 돌연 이같이 발표했다. SK하이닉스 측은 부랴부랴 최 회장이 반납하는 연봉(30억원가량)을 어떻게 사용할지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졸지에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등 임원들도 최 회장의 깜짝 발표에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붕 뜬 그룹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최 회장은 목소리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에 가입해 팔로워를 늘리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클럽하우스에 최 회장을 초대한 이는 바로 동거인 김희영 T&C재단 이사장이다. 앞서 최 회장이 2015년 12월말 세계일보에 직접 A4 3장 분량의 편지를 보내 김 이사장과의 교제와 둘 사이 혼외자식 존재 사실을 고백했던 사건도 그룹에 파장을 몰고 온 바 있다.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 회장은 재계에서 의리와 남성미로 대표되며 숱한 이슈를 만들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감성적이고 소탈한 행보를 보이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반씩 섞어놓은 듯한 인물”이라며 “다만 사회적 통념, 기업의 정상적인 의사 결정 구조와 지나치게 괴리되는 행보는 이른바 ‘오너 리스크’, 즉 경영 불확실성 확대 이슈로 부각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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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Opportunity) 

오너 리스크에 관한 일각의 우려가 더 확대되지 않는 이유는 역시 밝은 사업 전망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올해 SK하이닉스의 연간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난 11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업 호조 속 인텔 낸드사업 부문 인수 작업을 진행하고, M16 신규 팹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등 미래 성장 기반도 착착 구축해 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유럽 신규 공장(제3공장) 투자를 위해 헝가리 자회사에 약 1조2674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신설될 공장은 미래 수요에 대비한 선투자로, SK이노베이션이 기존에 가동하고 있거나 건설 중인 글로벌 생산기지 중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이번 헝가리 3공장까지 포함하면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은 전 세계에 모두 6개가 된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고는 550GWh로, 매출액으로 환산하면 70조원 이상 수준이라고 SK이노베이션은 밝혔다. 

아울러 신약을 개발하는 SK바이오팜, 백신을 개발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는 글로벌 바이오 헬스케어 시장과 금융투자업계 모두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SK는 해외투자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 SK가 운영하는 해외투자 전문인력만 100여 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환 GB투자자문 대표는 “예전부터 한국 기업들이 가장 소극적이고 취약한 분야가 인수·합병(M&A)인데, SK는 남다른 행보를 보여왔다”면서 “(다른 재벌그룹들처럼) 막연하게 현금만 쌓아두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외에 눈을 돌려 미래 먹거리를 발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어 “저평가돼 오던 SK의 노력은 코로나19 이후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 시대가 도래하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며 “지분 투자한 해외 기술기업들이 상장하거나 상장을 계획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SK의 보유 지분 가치가 부각되고, SK라는 그룹 전체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시각도 굉장히 우호적으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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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삿돈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2월17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위협(Threat)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격언은 우리네 삶은 물론 기업 경영에도 통용된다. 당장 SK이노베이션은 2월10일(현지시간)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 미국에서 진행된 소송에서 LG에너지솔루션에 완패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양사 간 합의를 앞두고 자연스레 최태원 회장의 위기 돌파 능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 회장으로선 SK 총수와 재계 리더(상의 회장)란 두 가지 중책을 차질 없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가족 문제도 최태원 회장은 물론 SK 전체에 부담이다. 고 최종건 회장 차남이자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2월17일 횡령과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되면서 SK는 사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상의 회장 취임을 앞두고 해당 이슈가 부각되는 데 대해 극도로 민감해하는 분위기다. 

최 회장과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61)의 이혼 소송도 SK 경영과 분리할 수 없다. 서울가정법원은 2월2일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 소송의 심문기일을 열었다. 최 회장은 2015년 김희영 이사장과의 교재와 혼외자식의 존재를 인정하고 성격 차이를 이유로 노 관장과 이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양측은 조정에 실패했고, 재판으로 이어졌다.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며 맞소송(반소)을 내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중 42.29%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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