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외국인’ 탈세 수법 들여다보니…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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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영주권·시민권으로 세금 회피”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이 24일 세종시 국세청 청사에서 '반사회적 역외탈세' 세무조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이 24일 세종시 국세청 청사에서 '반사회적 역외탈세' 세무조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 영주권자인 A씨는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자녀에게 부동산을 증여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물려줄 해외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 현지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이후 법인 지분을 자녀에게 넘겨줬다. 시민권자인 A씨 자녀들은 해당 국가에 증여세를 신고했지만, 해당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녀 상속 공제 혜택 덕분에 세금을 회피했다. 

하지만 국세청의 세풍은 피하지 못했다. A씨 자녀들이 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은 국내에 실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 자녀들은 유학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국에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소득세법상 외국인·이중국적자라고 하더라도 1년 중 절반인 183일 이상 국내에 체류하거나,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생활한 내용이 확인되면 거주자로 본다. 거주자로 분류하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도 국내법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 A씨의 자녀들은 10억원대의 증여세를 납부해야만 했다.

국세청이 사실상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외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로 납세 의무를 저버린 ‘검은머리 외국인’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들은 세금은 회피하면서 각종 복지혜택을 누린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오는 외국 국적자들이 늘어났다. 여기에 편승한 검은머리 외국인을 겨냥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착수한 것이다. 세무조사는 이중국적자 14명을 포함해 총 54명의 역외탈세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들이 세금을 회피한 방식은 가지각색이었다.

국세청은 A씨처럼 한국에 거주하면서 각종 복지혜택을 받으면서 이중국적 행세를 해 납세 의무를 피한 사례도 다수 적발했다. 외국인 비거주자로 분류되면 국내 소득세를 내지 않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체류 일수를 조작하는 등으로 거주자가 아닌 척 위장해 납세 의무를 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B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가족과 국내에 거주하며 의료혜택을 누렸지만 이중국적자라는 이유로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가 보유한 부동산은 약 100억원 대로 부동산 회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 회사 형태를 바꾼 사례도 있었다. 

‘신분세탁’을 해 세금을 탈루한 이들도 있다. 한국인이지만 국내에서 생활하지 않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내국인이지만 비거주자로 인정받으면 해외소득에 대해선 국내 세법 적용을 받지 않는 점을 노렸다. 실제 200억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임대업을 하는 C씨는 가족과 함께 국내에서 거주하지만, 외국 출입이 많음을 이유로 비거주자로 위장했다. 이 과정에서 국외소득 신고를 누락해 국세청 세무조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법인을 이용해 해외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도 다수 적발됐다.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D씨는 해외 조세회피처에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만들었다. 그 다음 국내 법인의 핵심 무형 자산을 자회사로 빼돌렸다. 국내 법인은 이 무형자산을 사용한 대가로 자회사에 거액의 사용료를 냈다. D씨는 이 자회사를 이용해 유학 중인 자녀에게 급여를 지급했다. 아예 지분도 이전해 경영권 승계까지 추진했다. 국세청은 D씨의 탈세 혐의를 확인한 뒤 수백억원 대의 법인세를 추징하고,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했다.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번 조사는 국가 위기를 개인적 축재에 이용하고 우월한 경제적 지위와 전문지식을 탈세에 사용한 반사회적 역외탈세 혐의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탈세 혐의를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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