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는 지금] “어머니, 저의 죽음을 자랑해 주세요. 국민주권 위한 것이니…”
  • 조용경 여행작가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2 14: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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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미얀마 외과의사, 페북에 유서 등 남겨
“도덕 상실한 시대엔 중립 주장이 가장 사악해”
중국과 통하는 가스관 폭파 계획 세운 흔적도

“어머니! 만약 제가 죽든, 무슨 일이 생기든 어머니는 저를 자랑해 주세요. 저의 죽음이 국가의 주권, 국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죽은 것이니….”

‘피의 토요일’이 돼 버린 지난 3월27일, 미얀마 전역에서 반쿠데타 시위가 재연되었다.

3월30일 미얀마 양곤에서 군인들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총을 든 채 시민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AP 연합
(왼쪽)티하 띤 툰은 3월27일 군부의 무차별 총격으로 114명의 시민이 희생될 때 사망자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신은 진압군에 의해 탈취되었는데 그 자리에 시위 참가 동료들이 빨간 벽돌을 두르고 티하 띤 툰이 신었던 샌들, 꽃들을 놓아 임시 추모소를 만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한 동료가 필자 조용경 작가에게 SNS로 사진을 보내주었다. (오른쪽)2017년 8월30일 만달레이 의과대학 졸업식 사진. 좌우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티하 띤 툰 페이스북

티하 띤 툰, 만달레이 의대 졸업한 청년 의사

‘미얀마 국군의 날’로 중국, 러시아 등 8개국의 외교사절까지 초청해 성대한 퍼레이드를 벌인 이날, 군부는 마치 축포를 터뜨리듯 시위 군중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이날 하루 사망자만 114명에 이르렀다.

이날의 사망자 가운데는 종합병원 외과의사로 근무하는 27세의 ‘티하 띤 툰(Thiha Tin Tun)’도 포함되어 있었다.

‘티하 띤 툰’ 의사는 2017년 8월30일 만달레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19년 3월부터 핀우린종합병원의 외과의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 그는 평소 꼼꼼하고, 활달했으며, 특히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이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2월1일 직후부터 쿠데타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현해 왔다.

(왼쪽)티하 띤 툰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있는 본인 프로필 사진. 동료와 수술하는 장면 앞에 아웅산 수치 여사의 사진과 어록이 있다. “유일한 진짜 감옥은 두려움이다. 그리고 유일한 진짜 자유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이다.” (오른쪽)2월9일 총탄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한 한 청년의 두개골 엑스레이 사진 30여 장을 올려 군부의 잔혹성을 규탄했다. ⓒ티하 띤 툰 페이스북

청년 두개골 정밀검증 사진 올려 군부 잔혹성 폭로

특히 2월9일, 만달레이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청년의 두개골 사진을 정밀검증하면서 군부 세력의 잔혹성에 대한 증오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민 아웅 흘라잉 개XX에게 죽음을!’이라는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은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군 최고사령관 이름이다.

2월10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공개 서한을 게재하고, “군부 쿠데타 세력의 악행을 멈출 즉각적인 행동을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때부터 그는 진료가 없을 때 수시로 만달레이 시내로 나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이한 것은 미얀마의 서부 해안 유전에서 중국 쿤밍까지 가는 두 갈래의 파이프라인에 대한 상세 지도와 군데군데 있는 저유소, 혹은 승압장 위치를 사진과 함께 10여 차례 반복적으로 올렸다는 점이다.

미얀마 반군부 시위대 사이에서 이대로 중국의 배후 지원이 계속되면 중국으로 가는 파이프라인을 폭파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혹시 ‘티하 띤 툰’은 그런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운동가들의 중심적 위치에 있던 인물은 아니었을까….

(왼쪽)티하 띤 툰이 배낭을 메고 머리에 헬멧과 고글을 올린 채 반군부 시위에 나선 모습 (오른쪽)하늘에서 바라본 중국 국경에서 멀지 않은 미얀마 띠버강 위에 건설된 파이프라인 철교 ⓒ티하 띤 툰 페이스북

배낭에 헬멧 쓰고 모래참호 작업하다 군부 총격에 머리 관통상 

사망하던 3월27일에도 그는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헬멧을 쓰고 만달레이 중심가로 나갔고, 모래주머니를 쌓는 작업을 지휘하던 도중 오전 10시쯤 머리와 팔에 두 발의 총탄을 맞았다.

그가 쓰러지자 군인들이 대거 몰려와 시신을 탈취해 끌고 갔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가 이날 시위에 나가기 전, 장문의 유서를 남겼다는 점이다.

이 유서의 내용이 워낙 장렬하고, 또 감동적이어서 이 유서를 본 미얀마의 많은 국민이 함께 울었다고 한다.

“외과용 칼을 잡았던 손으로 한 놈이든 두 놈이든 데리고 갈 것”

“제일 좋은 일을 바라고 있던 상황에서, 가장 나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나라가 쿠데타를 당했습니다.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날들은 이제 끝났습니다.

끝나면 안 되는 것들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싸워서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크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또 그대로 다시 싸울 수밖에 없네요.

저놈들을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외과용 칼을 잡았던 이 손에는 이미 피를 묻힌 적도 있으니까요.

우선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만약 제가 죽든, 무슨 일이 생기든 어머니는 저를 자랑해 주세요.

마음고생 너무 많이 하지 마시고요.

저의 죽음이 국가의 주권, 국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죽은 것이니

제가 죽어도 너무 오래 슬퍼하지는 마세요.

할머니께도 말씀드립니다. 할머니가 사랑하는 이 손자의 용기(피)는 아주 붉습니다.

만약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이 손자를 다시 돌보아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아버지와의 사이에 있었던

부자간의 정을 기억하고 가겠습니다. 인연이 더 있으면 다시 만나겠지요.

누나와 매형은 아이를 하나 가지세요. 힘내세요.

그리고 삼촌 가족도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모네 가족은 딱 두 분이지만 화목하고 서로 싸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 빠욱(U Pouk) 아저씨와 지(Gyi) 아주머니께도 제 안부를 전달해 주세요.

건강하시고,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고 잘 사시라고요.

내 친구들! 친구들을 위해 할 얘기는 많지는 않네.

우리가 삶에서 같이했던 추억들을 친구들이 기억해 주겠지.

잊어버려도 상관은 없지만…

그리고 내 사랑하는 당신!

이번 생에서 그대와 만난 것이 내 삶의 최고의 일 중 하나였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과 함께한 모든 순간을 마음에 품고 갈 거요.

이렇게 떠나게 되는 것을 이해해주고, 자랑스러워 해줄 거라고 믿어요.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은 아주 적었고, 인연이 닿는다면 결혼할 수도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같이 싸웠던 친구들아!

그대들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싸우기 바란다.

국민의 주권을 되돌려 찾는 그때 이 싸움을 멈추라고 말하겠다.

먼저 떠나게 되어서 미안하다.

군사독재는 패망할 것이다! 국민의 주권이여! 영원하라!”

이 유서를 읽으면서 얼마 전 다녀온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살펴본 윤봉길 의사를 떠올렸다.

그는 외과의사로서 병원에 실려오는 부상자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직업적 의무를 다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군부의 패륜적 행위를 직접 규탄하는 길에 나섰다가 희생당하고 말았다.

(왼쪽)티하 띤 툰이 ‘대한민국’이라고 한글로 디자인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앉아 있다. (오른쪽)‘민 아웅 흘라잉은 개xx’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민 아웅 흘라잉은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군 최고사령관이다. ⓒ티하 띤 툰 페이스북

“미얀마 민주화 역사 속에 찬란한 별로 남으리”

뭔가는 모르지만, 거사 계획을 실행에 옮겨보지 못하고 흉탄에 쓰러져버린 27세의 청년의사 ‘티하 띤 툰’은 미얀마 민주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윤봉길 의사처럼 찬란한 별이 되어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최근 ‘티하 띤 툰’이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남긴 글을 전재하며 그의 명복을 빈다.

“Dark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maintain their neutrality in times of moral crisis(도덕성을 상실한 시대에 자신은 중립이라고 내세우는 자들에게는 지옥에서도 가장 캄캄한 자리가 예비되어 있다).” 

조용경은 누구

야생화 사진가이자 여행작가.  2013년 미얀마를 처음 방문한 이후 19차례에 걸쳐 14개 주를 돌아다녔다. 그때 취재를 바탕으로 《뜻밖에 미얀마》를 썼다. 1951년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청년 시절 포항제철에 입사해 포스코엔지니어링 대표이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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