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는 금융재무의 살아 있는 교과서, 《손정의 투자 대전략》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4 11: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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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천재’ 분석한 《손정의 투자 대전략》

1981년 3월,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를 졸업한 한 젊은이가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의 작은 빌딩 사무실 한 칸을 빌려, 유니슨 월드라는 기획사를 세웠다. 그리고 이곳에서 귤 상자 위에 올라가 아르바이트생 2명을 앞에 두고 연설했다. 그 유명한 ‘매출을 두부 한 모, 두 모 세듯이, 1조, 2조 세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일본어에선 두부 세는 단위 ‘모’와 돈 세는 단위 ‘조’가 모두 ‘초’로 발음이 같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나름의 재치 있는 비유)’는 큰 허풍을 날리면서 말이다. PC용 패키지 소프트웨어 유통사업을 하기 위해 소프트뱅크의 전신인 일본 소프트뱅크를 도쿄 고지마치에 설립한 것은 같은 해 9월이었다.

최근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되면서 화제가 된 인물의 창업 초기에 있었던 이야기다. 그는 ‘투자의 천재’로 불리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손 회장은 쿠팡의 나스닥 상장으로 10배 넘는 투자 수익률을 기록해 재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손 회장은 미래가 불확실해 보이는 적자 기업에 무려 3조원을 투자했는데, 나스닥 상장이 성공을 거두면서 35조원의 평가차익을 냈다.

이렇게 세계가 주목하는 경영자이자 투자자가 된 손 회장을 분석한 책이 최근 출간돼 눈길을 끈다. 릿쿄대학교 경영대학원 비즈니스 디자인 연구과 교수이자 주식회사 머징 포인트(Merging Point)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다나카 미치아키가 펴낸 《손정의 투자 대전략》이다. 이 책은 ‘100조원 펀드’ ‘야후-라인 경영 통합’ 등 세간의 주목을 끄는 대승부를 이어가는 손정의와 소프트뱅크그룹의 전략을 상세히 분석한 책이다.

다나카 미치아키 지음 / 서울문화사 펴냄 / 320쪽 / 1만5800원
다나카 미치아키 지음 / 서울문화사 펴냄 / 320쪽 / 1만5800원

300년 성장 목표로 한 소프트뱅크그룹의 청사진

손정의의 지휘 아래, 소프트뱅크는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정보 혁명의 트렌드를 읽어왔다. 다나카 교수는 소프트뱅크가 소프트웨어 유통 혁명, 인터넷 혁명, 브로드밴드 및 통신사업을 통한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중심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무슨 근거로 어떤 회사에 투자를 결정하는지에 대한 투자전략과 비전을 상세히 소개하고, 소프트뱅크그룹이 그리는 300년 성장 기업의 청사진을 면밀히 보여준다.

“새로운 30년 비전은 이념, 비전, 전략이라는 3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이념은 ‘무엇을 위해 사업을 하는가’다. 소프트뱅크그룹의 이념은,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이다. 이것은 창업 후 30년 동안에도, 또 그 후 30년 동안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두 번째, 비전은 ‘30년 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떻게 되는가’와 ‘30년 후 사회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은 어떤 사업을 벌이고 싶은가’를 그려보는 것이다. 30년 후의 세계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은 무언가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것도 아니요, 특정한 하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요, 단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만을 가진 회사도 아니게 될 것이다. 대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과 가장 뛰어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동지가 되어 사업을 펼치고 싶다’는 것이 손정의의 바람이다. 세 번째, 전략이란 ‘소프트뱅크그룹이 어떻게 비전을 실현해 가는가’다. 이 부분과 관련해 앞으로 30년 후인 2040년에는 소프트뱅크그룹의 시가총액이 200조 엔 규모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다나카 교수는 ‘손정의는 무엇을 발명했는가’라는 질문에 ‘300년 동안 계속 성장할지도 모르는 조직구조를 만들었다. 그런 구조를 발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전략적 시너지 그룹’이라는 구상이 그것인데, 피라미드 구조에 중앙집권적이었던 20세기형 기업 조직과는 달리, 웹(WEB) 형으로 집권과 분권이 균형을 이룬 기업 조직을 말한다. 다시 말해 소프트뱅크그룹은 각 조직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분산형 구조 안에서 서로 협력하며 자기 진화와 자기 증식을 거듭하는 기업이자, 조직이자, 그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꿈꾸는 다음 패러다임 시프트는 산업 전체의 재편성으로, ‘교통×통신×에너지’라는 유기적으로 결합된 산업 플랫폼을 구현하기 위해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 암, 차량공유업체인 우버, 디디추싱, 그랩, 에너지 기업인 블룸에너지 등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 왔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위와 같이 미래 지향적인 전략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금융투자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어 질적 도약이 생기는 기술적 특이점을 가리키는 ‘싱귤래리티’의 속도를 가속화시키기 위해 ‘100조원짜리 펀드’를 조성한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거액 투자, 거액 매수 가능하게 한 금융재무전략 분석

PC용 소프트웨어 유통업으로 시작한 소프트뱅크그룹은 미국 야후에 투자해 야후재팬을 설립하면서 인터넷 기업이 되었다. 그 후 야후-BB를 설립해 브로드밴드 사업에 참가하면서, 니혼텔레콤, 보더폰 일본법인을 매수했다. 그리고 이로써 고정전화와 모바일 양방향 통신사업자가 되었다. 이후 스프린트를 매수해 미국 통신사업에도 참가했고, 2016년 9월에는 약 3조3000억 엔에 암을 매수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소프트뱅크그룹은 요소요소마다 거액을 투자해 신규 사업에 진입하거나 기업을 매수했다. 다나카 교수는 이런 거액 투자, 거액 매수를 가능하게 한 데는 소프트뱅크그룹의 금융재무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소프트뱅크의 핵심 무기인 금융재무전략이란 비전, 미션, 기업가치 향상, 전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손정의와 소프트뱅크가 이루고 싶은 비전에 큰 자금을 조달해야 할 때마다 사용되어왔다. 대전환기에도 반드시 이런 금융재무전략이 소프트뱅크그룹과 함께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테크놀로지 금융재무’ 기업으로, 금융재무전략 자체가 상당히 독특하다. 그중 특별히 살펴보아야 할 전략은 우선 2001년 야후-BB로 브로드밴드 사업에 진입할 때 모뎀을 무료로 배포할 수 있게 만들어준 ‘증권화’다. 그리고 작은 것이 큰 것을 집어삼켰다는 평가를 받는 2004년의 니혼텔레콤, 2006년의 보더폰 일본법인의 매수 때 이용된 ‘레버리지드 바이아웃(LBO·Leveraged Buyout)’이다.

어쨌든 이런 금융거래를 하는 곳은 당시 일본에선 소프트뱅크그룹 외에는 거의 없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금융재무를 무기로 싸운 일본 최초의 기업이다. 단순한 파이낸스 수법을 넘어선 재무전략을 무기로 삼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일본의 금융 역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안건을 몇 개나 만들어왔다는 의미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은 금융재무의 살아 있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보통 기업에서 그대로 활용할 만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발상이나 사고방식만큼은 다른 기업들이 눈여겨보고 배울 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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