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드라마는 외면 당한다…《조선구마사》가 남긴 과제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3 12: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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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의 날카로운 검증이 방송가에 날린 경고
역사관 제대로 정립되지 않거나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은 무너져
논란에 대한 제작사 피드백도 중요

판타지와 사극을 버무린 형식은 《킹덤》과 같았으나, 결과는 크게 달랐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을 뛰어넘을 장르물이라 자부했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얘기다. 허술한 설정과 필요 이상의 잔혹을 논하기도 전에, 드라마는 시작부터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수천 건의 민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됐고, 드라마 방영 중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연이어 올라왔다. 기업들은 광고 철회에 나섰다. 결국 방송 2회 만에 드라마가 폐지되면서, 《조선구마사》는 ‘불명예 드라마’로 한국 드라마사에 기록됐다.

이제 역사를 마주하는 대중의 자세가 변했다.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콘텐츠에 대해 시청자들은 날카로운 지적을 던지고, 창작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노력, 포용이 가능한 범위의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시청률만으로 대중의 반응을 알아보던 시대는 지났다. 시청자들은 왜 적극적으로 움직였는가. 엄청난 매몰비용을 지불하고 막을 내린 《조선구마사》 사태는 방송가에 어떤 경고를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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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조선구마사》에 등장하는 중국 음식들ⓒSBS 《조선구마사》 캡쳐

《킹덤》과 《조선구마사》는 무엇이 달랐나

최근 콘텐츠 업계에서 뜨거운 장르는 퓨전 사극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좀비를 등장시킨 《킹덤》을 필두로 사극에 코미디를 접목한 tvN의 《철인왕후》,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이야기에 역사적 상상력을 더한 KBS 《달이 뜨는 강》 등 퓨전 사극 작품들이 이어지는 추세다.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기에, 모든 사극은 역사에 없는 내용을 더하거나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기에 대중이 어느 정도까지 창작자의 상상력을 포용할 수 있을지는 중요한 지점이다. 대다수의 퓨전 사극이 ‘본 드라마의 인물과 사건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방송 머리에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구가 허용되는 범위가 무제한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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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로 표현한 tvN 《철인왕후》의 한 장면ⓒtvN 《철인왕후》 캡쳐

선을 넘는 역사 왜곡에 대중은 분노한다. 《철인왕후》가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로 표현하고, 실존 인물을 저속하게 묘사해 논란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해당 드라마는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지한 상태다. 특히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킨 드라마에서 인물에 대한 서사는 중요하다. 시청자는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대를 보고 읽는다. 인물에 대한 서사와 스토리를 작품으로 기억한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콘텐츠에 고증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논란이 됐던 《조선구마사》의 장면을 보자. 태종을 양민들을 학살하는 ‘폭군’으로 표현했다. 훗날 역사상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이 되는 충녕대군을, 자신의 선조를 ‘기생 때문에 삼척으로 도망친 사람’이라 폄훼하는 패륜적인 인물로 그려냈다. 충녕대군이 의주에 있는 ‘중국식’ 기생집에서 외국인 신부를 접대하는 장면에서 등장한 중국식 만두, 월병, 피단과 같은 중국 음식들은 시청자의 분노를 가중시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은 조선의 궁궐, 서민들의 삶, 지역적 배경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역사적 고증이 충실했다는 평을 받는다.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은 조선의 궁궐, 서민들의 삶, 지역적 배경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역사적 고증이 충실했다는 평을 받는다. ⓒ 넷플릭스

여기서 재조명되는 작품은 《킹덤》이다. 시기적으로는 임진왜란 직후의 상황이지만,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인물과 완전한 가상 인물들을 더해 새로운 스토리를 그려냈다. 《킹덤》은 조선의 아름다운 궁궐을 표현하면서, 서민들의 궁핍한 삶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등 “역사적 고증이 충실했다”는 평을 받는다. 황현필 한국사 강사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킹덤》은 세계인이 이 드라마를 볼 걸 예상이라도 하듯 고증을 완벽하게 해냈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평했다. 문경새재 등 지역에 대한 고증도 완벽했으며, 조총에 불 심지가 타들어가는 장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착호군’의 존재까지 세심하게 고증함으로써 작품의 가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조선 건국 과정을 다뤘던 SBS 《육룡이 나르샤》는 이성계와 정도전의 캐릭터를 사서에 기록된 그대로 가져갔고, 건국 과정이나 각종 권력기구의 역할에 대한 고증을 꼼꼼하게 거쳤다는 평을 받았다. MBC 《해를 품은 달》은 조선시대 가상의 왕과 무녀의 사랑을 다룬 허구의 이야기였지만 당시의 복식과 예법을 잘 드러낸 드라마로 평가된다. 반면 역사를 비튼 작품들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승려 신미가 한글 창제에 크게 기여했다는 가설을 내세웠다가 자비 없는 평점 테러를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영화 《덕혜옹주》는 개봉 이후 “덕혜옹주의 삶을 항일로 포장한 것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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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농악무를 ‘중국 조선족 농악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SBS 《조선구마사》 캡쳐

논란에 불을 붙인 중국의 ‘문화 공정’

일련의 사태에 또 다른 도화선이 된 것은 중국의 ‘문화 공정’이다. 중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거나, 거대한 중국 자본시장의 힘이 뒷받침된 드라마에 등장하는 중국 색깔에 시청자들이 분노한 것은, 최근 한국의 문화를 중국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문화 공정’에 대한 경계와도 맞물렸다. 중국은 비빔밥, 삼계탕, 한복 등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류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시점에, 드라마 콘텐츠에 등장하는 중국 색채가 중국의 문화 공정에 힘을 싣는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조선구마사》의 일부 장면도 중국의 ‘문화 공정’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것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한국 무녀가 입은 중국 의상, 중국풍으로 장식해 놓은 궁궐의 모습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 간 경계를 흐렸고, 중국 전통 현악기인 고쟁, 고금으로 연주한 OST는 드라마의 정체성을 논하게 했다. 특히 연변 말투를 쓰는 놀이패가 등장하는 장면은 큰 논란이 됐다. 2009년 중국은 농악무를 ‘중국 조선족 농악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킨 바 있다. 농악이 자국 문화라는 주장을 중국이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었다는 것이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중국의 네티즌들은 웨이보를 통해 ‘당시 한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드라마 장면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신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며 “제작진 역시 입장문에서 ‘예민한 시기’라고 언급했듯이, 이러한 시기에는 더 조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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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여신강림》에 등장하는 중국 기업 광고ⓒtvN 《여신강림》 캡쳐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여신강림》은 과도한 중국 기업 PPL로 비판을 받았다. 최근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는 중국 회사의 레토르트 비빔밥 간접 광고가 삽입돼 논란이 됐다. 넷플릭스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서비스되는 드라마니만큼 외국인들이 비빔밥이 중국 음식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청자들의 지적에 《빈센조》 측은 문제가 된 장면을 삭제 및 재편집해 VOD에 반영했다. 아울러 이 브랜드의 PPL 잔여분에 대해 취소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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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빈센조》에 삽입돼 논란이 된 중국 회사의 레토르트 비빔밥 PPLⓒtvN 《빈센조》 캡쳐

MZ세대 중심으로 보이콧 파급력 강해져

과거를 생각해 보자. 드라마 내용에 불만이 있는 시청자가 방송사 게시판에 글을 올려 불만을 제기하던 것이 전부였다. 이제는 다르다. 촬영 중단을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오고, 방심위에 민원이 빗발친다. 한 사람이 SNS에 공유한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된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드라마의 광고와 협찬에 참여하는 경우 역사 왜곡 논란에 동조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광고를 한 기업과 조력한 지방자치단체 목록을 리스트로 정리해 비판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여론 악화 등을 이유로 작품이 조기에 종영된 것은 과거 드라마 시장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이번 《조선구마사》 사태는 대중의 행동력이 여느 때보다 빠르고, 파급력이 여느 때보다 강하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여기에는 온라인이라는 빠른 매개체가 있었고, 변화된 시청자들이 있었다. 수많은 콘텐츠를 접한 시청자들이 콘텐츠 제작의 필수 조건과 역사적 맥락에 대해 고려하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일상에서 자신의 신념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여론의 흐름을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미 반일 감정을 ‘노 재팬 운동’ 등으로 승화하는 등 바로잡아야 할 대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진 MZ세대가 주축이 돼 행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제 ‘보이콧’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비도덕성이 드러난 출연자를 시청자들이 거부하는 것도 그 예다. SNS 등 논의의 장이 확대되면서 연예인의 비도덕적 행위는 쉽게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출연자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해당 출연자의 ‘하차’를 결정한다. 드라마 하차를 요구하는 시청자 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비도덕적 행위를 한 연예인이 등장하는 콘텐츠는 소비하지 않겠다는 보이콧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고구려를 배경으로 평강 공주와 온달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KBS 《달이 뜨는 강》은 학교폭력 논란이 일었던 배우 지수의 하차를 결정하고 해당 출연자의 출연분을 모두 재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역사적 고증에 대한 감시 계속돼

《조선구마사》 사태는 역사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거나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은 무너진다는 선례를 남겼다. 역사 왜곡과 PPL의 당위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각본 단계와 제작 과정에서도 고려할 요소가 많다는 일침을 방송가에 놓았고, 논란에 대한 피드백이 중요하다는 교훈도 남겼다. 《조선구마사》는 중국색 논란에 대해 “의주가 중국과의 국경지대였기 때문에 명나라 풍습이 남아 있다”는 변명을 내놓았는데, 이마저도 역사적 오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은 더 악화됐다. 시청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쌍방 소통’을 위한 제작사의 반응도 중요하다. 적절한 피드백과 대응은 부정적이었던 여론을 긍정적으로 돌아서게도 한다. 출연자 논란으로 《달이 뜨는 강》의 재촬영을 결정한 KBS에 응원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대중문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민감해졌다. 역사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면 시청자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지점이 어디까지인지, 시청자들이 작가의 상상력을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을지를 고려해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역사에 픽션을 가미해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은 더 이상 대중이 제기하는 논란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조선구마사》 사태는 보여준다. 지나치게 꼼꼼한 잣대가 창작력과 확장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유사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기획부터 연출 단계까지 철저한 역사 고증이 필요한 환경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4월2일 기준 JTBC 드라마 《설강화》 촬영 중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16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 청와대 국민 청원 캡쳐
4월2일 기준 JTBC 드라마 《설강화》 촬영 중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16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 청와대 국민 청원 캡쳐

역사적 고증에 대한 시청자들의 감시는 아직 방영을 시작하지 않은 콘텐츠에도 적용된다. JTBC 드라마 《설강화》는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해당 드라마의 내용이 민주주의를 폄훼하고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JTBC 측은 “극 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1987년 대선 정국”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반발은 여전하다. 1987년 5월을 배경으로 하면서 민주화운동을 다루지 않는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며, 1987년 대선 자체가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이니만큼 민주화운동을 엮지 않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설강화》의 촬영 중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16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이 외에도 중국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tvN의 《잠중록》과 JTBC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중국 대표 OTT 아이치이가 제작에 참여한 tvN 《간 떨어지는 동거》에 대한 시청자의 검증도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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