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외쳤던 文대통령의 약속, ‘집값’에 흔들리고 ‘LH’에 치명타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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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패 안긴 부동산 민심, 내년 대선도 경고등
문재인 대통령이 3월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월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빙 승부는 없었다. '미니 대선'으로 불린 4·7 보궐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정권 안정에 힘을 실어달라는 여당의 호소는 '부동산 민심'을 결국 넘어서지 못했다. 레임덕 갈림길에 섰던 문재인 정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로 악화된 여론을 되돌리는 데 실패했다. '공정'을 외쳤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도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와 이로 인한 집값 급등, LH 사태가 드러낸 부조리한 민낯에 미완의 공약으로 남을 위기에 처했다. 

서울·부산시장을 모두 압도적 표 차이로 넘겨주게 된 여당과 임기 막바지 치명상을 입게 된 청와대는 야당의 십자포화 속에 상당기간 선거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불리했던 구도, LH 사태가 기름 끼얹어 

이번 보궐선거는 출발부터 여당에 불리한 구도였다. 정권 말기, 여당 소속 서울·부산 시장의 성추문으로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악전고투가 예상됐다. 하지만 연초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국민 신뢰와 백신 기대감이 커지면서 정부·여당 지지율이 안정세를 보였고, 야당이 지지부진한 단일화 흐름을 만들어내면서 여당의 승리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LH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지난 2월 말까지 40%대를 웃돌던 문 대통령 지지율은 3월 첫째 주 보궐선거를 불과 한달 앞두고 불거진 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으로 30%대로 밀렸다. 부정평가는 60%를 넘었다. 민주당 역시 국민의힘에 지지율 역전을 당하는 등 곳곳에서 선거 참패 경고등이 켜졌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등 야권 후보에 밀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도 바로 이 때다.  

여론이 가장 예민하게 움직이는 '부동산' 정책이 집값 안정이 아닌 가격 폭등을 불러온 데다 '내집 마련'이 비현실적 꿈이 돼버렸다는 점에서 세대를 불문한 좌절과 배신감이 교차하던 찰나에 터진 대형 악재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이 4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심은 즉각 요동쳤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부동산 투기 세력 발본색원을 천명하고 급기야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여당도 이번 LH 사태는 이번 정권이 아닌 전임 정부에서부터 이어져 온 "뿌리깊은 병폐"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분노의 민심은 보궐선거 직전까지도 '정권 심판'을 내세운 야당에 힘을 실어줬다. 

LH 사태가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기대한 국민적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돼 버린 셈이다.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은 선거 막판 지지층 결집과 중도·무당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읍소 전략을 펼쳤다. 

그러나 수습은 커녕 막판까지 부동산 악재는 계속됐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임대차 3법'을 주도했던 박주민 민주당 의원의 전·월세 계약 관련 논란이 부각되면서다. 두 사람 모두 정부·여당이 추진한 부동산 정책과 입법에 상징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타격은 더 컸다. 서울·부산시장에 출마한 야당 후보를 둘러싼 여러 의혹도 LH 사태로 촉발된 분노 앞에 힘을 받지 못했다. 

벼랑 끝에 선 민주당은 "집값 폭등과 부동산 불패신화 앞에 무기력했다. 청년세대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며 뒤늦은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이 역시 약효는 없었다. 

4월7일 오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국회에서 투표독려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7일 오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국회에서 투표독려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공정 못 지킨 '배신감'에 민심 움직였다  

야당은 LH 사태가 벌려놓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부터 문 정권에 치명적인 약점이 됐던 '공정' 이슈를 타격하며 '국민을 배신한 정부' 프레임을 각인했다. 여기에 유력 대선주자 후보로 부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가세하면서 '정권 심판'의 장은 더 커졌다. 

취업난과 집값 불안정의 직격탄을 맞은 2030 유권자가 '공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청년들의 정부 불신이 깊어지면서 야당은 이례적으로 젊은층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펼쳤다. 정통 보수층과 정부에 실망을 느낀 중도층, 여기에 2030 세대까지 더해지면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선거 당일인 7일에도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공정의 가치를 망가뜨린 현 정권을 비토하며 '분노의 표심'을 자극했다. 오 후보는 이날 "선거 과정을 통해 청년들의 분노와 국민이 원하는 희망을 봤다"며 "공정과 정의를 다시 세우고, 상생의 서울,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나라,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표심을 흔들었다. 

향후 정국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던 보궐선거는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10년 간 정치권으로 돌아오지 못하던 오 후보는 서울시장으로, 가족과 재산 관련 갖은 의혹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한 박형준 후보는 부산시장으로 입성한다. 여당이 받아든 참담한 성적표는 내년 3월 대선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여당은 대선 출발점에서부터 야당에 밀리게 되면서 출구전략과 민심 수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방송3사(KBS,MBC,SBS) 공동 출구 조사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가 모두 참패한 것으로 예측된 4월7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에 당직자들이 대부분 떠나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
방송3사(KBS,MBC,SBS) 공동 출구 조사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가 모두 참패한 것으로 예측된 4월7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에 당직자들이 대부분 떠나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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