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부진에 슬픈 손흥민, 인종차별에 울었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7 11:0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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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성적 떨어지면서 재계약 소식도 쏙 들어가

손흥민의 기세는 거침이 없다. 지난 시즌부터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의 단일 시즌 리그 최다골 동률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다.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의 부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상대팀 팬과 감독의 인종차별 발언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그를 둘러싼 인종차별 논란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손흥민은 한국 시간으로 4월12일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의 경기에서 전반 40분 선제골을 넣었다. 역습 상황에서 루카스 모우라의 땅볼 크로스를 침착하게 왼발로 방향만 바꿔 골망을 갈랐다. 2개월여 만의 골이었다. 올 시즌 득점 페이스가 가파르던 손흥민은 리그 14호골로 득점 4위에 올랐다. 시즌 통틀어 19호골이었다. 

지난 2016~17 시즌에 손흥민은 리그에서만 14골을 기록했다. 프리미어리그 입성 후 단일 시즌에 기록한 리그 최다골이다. 남은 7경기에서 타이 기록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맨유 킬러의 이미지도 공고히 했다. 올 시즌 손흥민은 맨유를 상대로만 3골을 넣었다. 2014~15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수 세르히오 아구에로 이후 맨유를 상대로 한 단일 시즌 최다 득점자가 됐다. 양발 사용이 능한 손흥민은 왼발과 오른발로 각각 5골 이상을 기록 중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런 모습은 흔치 않다. 손흥민은 벌써 네 시즌이나 양발로 각각 5골을 넣은 선수로 이 부문 최다 기록을 세웠다. 

3월11일(현지시간) 유로파리그 16강 토트넘 대 디나모 자그레브 경기에 출전해 경기 중인 손흥민ⓒAP연합
3월11일(현지시간) 유로파리그 16강 토트넘 대 디나모 자그레브 경기에 출전해 경기 중인 손흥민ⓒAP연합

각종 기록 제조에도 울상인 이유

다양한 기록에도 손흥민은 웃지 못했다. 팀 안팎 상황이 최악이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맨유 경기에서 손흥민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후반에만 3골을 내리 허용하며 역전패했다. 승점 49점의 토트넘은 1위 맨시티에 25점, 2위 맨유에는 14점이나 뒤진 7위가 됐다. 4위 웨스트햄과도 6점 차이다. 2시즌 연속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출전 좌절 위기다. 무리뉴 감독 취임 1년 차였던 지난 시즌 가까스로 챔피언스리그보다 레벨이 낮은 유로파리그로 향했던 토트넘은 그나마 16강에서 탈락했다. 

챔피언스리그는 유로파리그보다 상금과 배당금 규모가 3배나 많다. 구단 자금 운영 차원에서 반드시 출전해야 하는 대회다. 2019년 1조5000억원을 들여 새로 지은 경기장으로 상업성 개선을 기대했지만,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가 지속된 탓에 수입이 급격히 줄어든 토트넘으로선 클럽대항전 출전이 간절하다. 문제는 토트넘이 현재 유로파리그 진출조차 불투명한 상태라는 것이다. 6위 내에 들어야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획득하는데 최근 리그 4경기에서 1승 1무 2패를 기록, 첼시 및 리버풀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무리뉴 감독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시즌 초반 선두권을 형성했던 무리뉴 감독은 연말부터 부진에 빠진 뒤 해결책을 내지 못했다. 선수들과의 불화설도 새어 나왔다. 그 사이 순위는 점점 추락했다.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은 A급 선수 확보를 위해 달성해야 하는 중요 성과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최고의 무대에 나설 수 없어 실망한 에이스들이 이적을 감행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토트넘은 해리 케인과 손흥민 두 선수의 이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만 해도 토트넘과의 재계약이 확실시되던 손흥민은 최근 6개월 사이 계약 얘기가 쏙 들어갔다. 이탈리아 유벤투스, 독일 바이에른 뮌헨, 프랑스 파리생제르맹 이적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손흥민과 함께 토트넘 공격의 양대 축인 케인도 이적설이 쏟아지는 중이다. 

맨유전에선 손흥민을 둘러싼 인종차별 논란까지 터졌다. 손흥민은 0대0 상황이던 전반 33분 맨유의 미드필더 스콧 맥토미니와 경합 중 상대가 휘두른 손에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손흥민이 넘어진 사이 맥토미니가 연결한 공은 포그바를 거쳐 카바니에게 이어져 득점이 됐다. 심판은 VAR(비디오 어시스턴트 레프리) 판독을 거쳐 골이 터지는 연결 과정에 있던 맥토미니의 반칙을 인정, 득점을 취소했다. 정당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경기 후 맨유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은 손흥민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판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만일 내 아들(손흥민의 영문 이름이 Son인 것을 이용해 비꼰 것)이 3분 동안이나 바닥에 누워 있고, 나머지 10명이 그가 일어나도록 도와줘야 했다면 아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격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무리뉴 감독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솔샤르 감독이 손흥민에 대해 한 말을 기자들이 언급하지 않는 게 매우 실망스럽다. 손흥민은 행운아다. 그의 아버지는 솔샤르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다. 아버지란 자식에게 뭔가를 훔쳐서라도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받아쳤다. 

 

전쟁터가 된 손흥민의 SNS

맨유 팬들이 손흥민 SNS에 몰려가 퍼부은 엄청난 인종차별 발언은 새 불씨가 됐다. 경기 후 손흥민 SNS엔 “오스카상을 받을 연기력”이란 조롱을 시작으로 “돌아가서 고양이, 박쥐, 개나 먹어라” “DVD(중국인들이 유럽에서 불법 복제한 DVD를 판매하는 것을 겨냥)나 팔아” “작은 눈의 다이빙이나 하는 사기꾼”과 같이 아시아계를 노리는 인종차별 표현이 적나라하게 쏟아졌다. 토트넘 팬들이 “나치 같은 맨유 팬들” “당장 인종차별을 멈춰라”라고 대응하며 손흥민 SNS는 전쟁터가 됐다. 

토트넘 구단도 즉각 공식 입장을 밝혔다. “우리 팀 선수가 온라인에서 혐오스러운 말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는 손흥민과 함께할 것”이라며 SNS 보이콧에 돌입할 수 있다는 선언까지 했다. 유럽 축구는 이미 인종차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페인에선 발렌시아의 무크타르 디아카비가 상대팀 카디즈 선수로부터 “빌어먹을 검둥이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고, 발렌시아 선수들이 30분간 경기를 중단하는 일이 발생했다. 디아카비는 아프리카 기니계지만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선수임에도 피부색만으로 차별을 당한 것이다. 발렌시아 역시 구단 성명서를  통해 유감을 표시하며 프리메라리가 사무국에 조사를 촉구했다. 

‘스카이스포츠’는 4월12일 축구 스타들에 대한 온라인상 인종차별 언어폭력이 큰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위터를 비롯한 SNS 운영 기업들은 이용자들의 인종차별 표현을 조기에 삭제할 것이라고 했지만 원천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풋볼 런던은 “늘 쾌활했던 손흥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팀의 부진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인종차별이라는 경기 외적인 직격탄을 맞은 데 대한 묘사였다. 손흥민은 맨유전 이후 SNS에 어떤 게시물도 업데이트하지 않고 침묵 중이다. 최근 티에리 앙리를 비롯해 많은 선수가 SNS 공간에서의 인종차별을 반대하며 자신의 계정을 삭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손흥민 역시 SNS 보이콧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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