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가상화폐 ‘폭탄’ 또 안게 된 與…대응도 ‘백 투 2018’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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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눈치 보느라 대응책은 ‘오락가락’

정부여당이 가상화폐 투기 열풍에 섣불리 발을 담갔다 2030 유권자로부터 역풍을 맞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거래소 폐쇄’ 발언을 계기로 가상화폐 주 투자자인 청년층의 분노가 분출하면서다. 당황한 여당은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가상화폐 규제를 둘러싼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엇박자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금융당국은 규제를 외치고, 정치권은 민심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2018년 가상화폐 투기 열풍에 칼을 빼들었지만 싸늘한 민심에 직면하고 사실상 ‘방치’로 입장을 틀었던 정치권이 화근을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암호화폐 가격이 일제히 폭락한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에서 직원이 암호화폐 시세를 살피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암호화폐 가격이 일제히 폭락한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에서 직원이 암호화폐 시세를 살피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3년 전에도 ‘갈팡질팡’…대책 엇박자가 가상화폐 거품 키웠다

정치 한 복판에 가상화폐 문제가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계추를 3년 전으로 돌려도 가상화폐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가상화폐의 위상은 지금보다 더 바닥이었다. 시장에는 투기 광풍이 부는데, 정부 관료는 가상화폐를 대놓고 ‘사기’나 ‘도박’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거래소 폐지 카드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 때였다. 2018년 1월11일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를 토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힌 순간이다. 이후 가상화폐 시세는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이 이 날을 ‘박상기의 난’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문제는 정부가 강경 대응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규제의 칼을 빼려던 찰나 지지율 폭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자, 꼬리를 내렸다는 의미다. 집권 초반 70% 선을 달리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가상화폐 논란 이후 60%대 초반으로 떨어진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당장에라도 강경한 대책을 쏟아낼 것 같던 정부여당은 “거래소 폐지는 확정 사안이 아니다”(2018년 1월11일 윤영찬 국민소통수석)라고 발을 빼고, “범정부 차원에서 협의를 거쳐 결정하겠다”(2018년 1월15일 정기준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며 신중한 태도로 돌아섰다.

규제의 동력을 잃은 정부여당은 지난 3년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까지 만들었지만, 지난 3년 동안 특금법(특정금융정보법) 제정과 가상화폐 거래 이익에 소득세를 물리는 소득세법 개정 이외의 결실은 거두지 못했다. 특금법마저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지침에 따라 암호화폐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지운 수준이라, 맹탕 규제라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에 대한 입장조차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일단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투기 열풍에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동시에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법상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이는 곧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정식 인정하겠다는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인식이 국내외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이 같은 신호를 보낼 수는 없다는 게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이미지 ⓒ연합뉴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이미지 ⓒ연합뉴스

2030 표심 잃을까…與의 노골적 ‘눈치 보기’

그사이 가상화폐 투기 광풍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 정치권은 보다 노골적으로 민심 눈치 보기를 이어가려는 태세다. 4‧7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청년층 표심 회복이 절실해진 여권이 가상화폐 주 투자층인 2030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여권 일각에선 가상화폐 열풍이 대선 국면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부동산 이슈로 이미 2030이 등을 돌린 상태”라며 “가상화폐 문제에서도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청년층의 이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다보니 가상화폐 정책을 둘러싼 여권의 혼선도 계속되고 있다. 당장 가상화폐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정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진화했다. 당 차원 가상화폐 전담 기구를 설치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도 쏟아져 나왔지만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가상자산 대응 기구 발족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지하면서 혼선을 빚었다.

다만 2018년 당시보다 가상화폐의 가치를 인정하고 시스템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급속하게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인 이광재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은 지난 23일 페이스북에서 “암호화폐 시장이 위험하니 막겠다는 접근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 데 이어 26일 CBS라디오에 출연해서는 “위험은 줄이고 미래는 열어야 한다. 민관과 과학자들이 함께 모여 이제는 시스템을 짤 때”라고 강조했다.

가상화폐 대응 전담기구를 만드는 등 제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26일 열린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오영환 의원은 “민주당은 왜 2030 청년들을 포함해 많은 국민들이 가상자산에 투자하게 됐는지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것”이라며 “경고성 메시지를 통해 투자자들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보다 불법 행위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정책마련에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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