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아카데미 수상으로 위상 강화된 K콘텐츠
  • 하재근 문화 평론가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1 11:0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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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대중음악 모두 ‘핫’ 트렌드…K스토리·K푸드로 영향력 확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한국영화 또는 한국 영화인의 위상이 더욱 강화됐다. 《미나리》는 미국 영화지만, 어쨌든 한국어가 사용된 한국계 이야기이고 윤여정 등 일부 출연자가 한국인이기까지 하기 때문에 한국영화 이미지와 연결된다. 그런 영화가 아카데미 주요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반복적으로 소개됐으며 주연인 스티븐 연은 시상자로 나서기도 했다. 또 봉준호 감독이 무려 한국어로 감독상 후보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이다. 백인 위주 시상으로 악명 높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사상 두 번째 아시아계 여우조연상이다. 일본 배경의 미국 영화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가 1958년 첫 번째 아시아계 여우조연상의 주인공이었다. 이 배역은 헐리우드 스타의 상대역이었고 영어도 많이 썼다. 윤여정은 한국인의 이야기를 하는 역할로 한국어를 써서 수상했다는 점이 다르다. 모국어를 활용한 연기로는 아시아계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이다. 

이런 시상식 결과를 통해 한국영화를 ‘핫’하다고 느끼는 인식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미 《기생충》 때부터 있었던 흐름이 단절되지 않고 강화되는 것이다. 《기생충》 수상 당시 아카데미상 측은 작품성을 인정하면서도 배우들에겐 후보 한 자리도 내주지 않았다. 이번에 연기상을 수상하면서 유리천장을 한 겹 더 깼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영화 위상 강화뿐만 아니라 K콘텐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EPA연합·뉴시스·A.M.P.A.S제공
ⓒEPA연합·뉴시스·A.M.P.A.S제공

한류 해외 진출 시작은 1960년 

1960년대 김시스터즈 미국 진출, 1980년대 김연자·계은숙 일본 진출을 통해 초보적 단계의 해외 진출이 이뤄졌다. 80년대엔 강수연 등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지만 아직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수준까진 아니었다. 이때까지는 한국 문화가 해외에서 각광받는 건 상상조차 못했고, 할리우드 문화와 일본 문화의 공습을 걱정하기만 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인기를 끄는가 하면, 김완선·클론 등이 대만에서 흥행했다.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한 사건들이었는데, 급기야 H.O.T가 중국에서 대형 콘서트까지 열게 됐다. 중국 현지에서도 놀라서 이때 ‘한류’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후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인기를 이어가던 한류가 2002년 일본에서 터졌다. 《겨울연가》 욘사마의 등장이다. 일본에서 사회현상 수준의 신드롬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때의 일본 한류는 트렌드를 주도하지 못했고 중장년층의 향수에 기댔다는 한계가 있었다. 뒤이어 《대장금》 《주몽》 등의 작품이 아시아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한류 스타군단이 등장했다. 

2008년 즈음 나타난 걸그룹 한류(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때부터 우리 가수들도 본격적인 국제 스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각국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고, 우리 가수들의 안무를 외국인이 따라 하는 모습에 우리가 충격을 받았다. 동방신기와 빅뱅이 일본에서 거대한 규모의 투어를 개최했다. 

하지만 미국에는 진출하지 못했는데, 2012년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터졌다. 유튜브가 일조했다. 자본 투입 없이도 콘텐츠만 잘 만들면 유튜브를 통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시대가 됐는데, 그 유튜브를 통한 한류 세계화의 첫걸음이 《강남스타일》이었다.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의 발달은 2014년 중국에서 《별에서 온 그대》 열풍을 만들었다. 당시 김수현이 중국 예능 프로그램 1회 출연료로 5억원 이상을 받기도 했다. 원래도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이때부터 위상은 더욱 강화됐다. 

2010년대 말 미국에서 더 충격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방탄소년단이다. 유튜브를 통해 거대 팬덤이 만들어졌는데, 놀랍게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이 그 중심이었다. 이때 비로소 서구 문화에 대해 오랫동안 우리가 가졌던 콤플렉스가 조금이나마 해소되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가 국제적 수준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갔다. 방탄소년단은 2020년 마침내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라, 김시스터즈 미국 진출 이래의 숙원을 60여 년 만에 풀었다. 뒤이어 블랙핑크가 세계 최고 걸그룹 반열에 올랐다. 이런 뮤지션들의 활약으로 한국이 문화적으로 핫한 곳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영상계에선 넷플릭스가 나타났다. 2017년 뉴욕타임스가 《비밀의 숲》을 그해의 10대 국제 드라마로 꼽아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우리 드라마 시청층이 세계로 확장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2019년엔 아예 넷플릭스용으로 제작된 《킹덤》이 공개돼 서구권에 한국형 좀비 신드롬, 갓 신드롬을 일으켰다. 방탄소년단·블랙핑크 등 뮤지션과 《킹덤》 등 드라마가 쌍끌이로 국제 흥행을 이어가면서 한국이 ‘핫’한 콘텐츠가 나오는 곳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넷플릭스로 일본에서 또 다른 한류 열풍이 나타났다. 2020년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의 인기다. 혐한 작가 햐쿠타 나오키는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넷플릭스 일본 드라마 2020년 톱10 중 한국 드라마가 5편이었다. 한편 음악 쪽에선 트와이스가 일본 여고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더니, 박진영이 만든 니쥬가 신드롬을 일으켰다. 

과거 일본 한류와 현재가 다른 점은 연령대다. 《겨울연가》 당시의 중장년층 중심에서 카라, 소녀시대 때 10~20대가 가세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젊은 세대가 주도한다. 과거 향수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최신 트렌드 첨단 문화로 받아들여진다. 특정 한류팬만의 문화가 아니라 보편적 트렌드가 됐다. 

한국 콘텐츠가 핫하다는 인식에 결정타가 된 사건이 2020년 벌어졌다. 《기생충》이 칸영화제와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것이다. 한국어 영화가 아카데미 최정점에 올랐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상은 로컬영화제다” “자막을 봐라” 등 미국을 도발하며 위풍당당하게 아카데미에 입성했다. 이 순간 K콘텐츠는 변화된 시대에 새롭게 대두하는 핫 트렌드의 상징이 됐다. 이제 명색이 문화인이라면 한국 문화를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이 한국인의 한국어 연기에 돌아간 것이다. 

드라마와 가요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한류가 그 폭을 점점 넓히며 요즘엔 K콘텐츠라고도 불린다. 새롭게 대두되는 K콘텐츠 부문은 웹툰이다. 인터넷 도입으로 대여점, 대본소 시장이 붕괴하면서 한때 만화산업도 존망의 기로에 내몰렸었다. 하지만 그 인터넷에서 활로를 찾은 것이 웹툰이다. 웹툰 플랫폼이 유튜브 같은 역할을 하며 창작자를 발굴하고 판로를 개척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웹툰 거래액은 2019년 1조원가량에서 2023년 3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만화 시장이 슈퍼히어로 장르 위주이기 때문에 로맨스물, 학원물 등 다양한 장르가 갖춰진 한국 웹툰의 국제적 성장 가능성이 크다. 

요즘에는 웹툰이 한국 드라마, 영화의 젖줄 역할도 한다. 《킹덤》 《인간수업》 《이태원 클라쓰》 《경이로운 소문》 《스위트홈》 《승리호》 등이 웹툰 원작으로 주목받았다. 웹툰 자체로도 시장을 넓혀 나가면서 드라마, 영화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웹소설도 뜨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을 합쳐 K스토리라고도 하는데, 이 한국의 이야기가 다양한 콘텐츠의 원천 지식재산이 되고 있다. 

K콘텐츠가 인기를 끌자 무한경쟁에 돌입한 OTT 업계가 한국 콘텐츠 잡기에 나섰다. 대표적 OTT 업체인 넷플릭스는 서구권에서 성장이 정체기에 도달했기 때문에 아시아권에서 가입자를 늘리려 한다. 그런데 K콘텐츠가 아시아권에서 절대적 인기다. 2020년 넷플릭스 드라마 대만 톱10 중 9개, 말레이시아에선 8개, 베트남에선 7개가 한국 드라마다. 이러니 아시아권 마케팅을 위해 한국 콘텐츠를 잡으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2021년 5500억원을 K콘텐츠에 쏟아붓는 등 2023년까지 2조원가량을 투자할 계획이다. 후발주자인 디즈니플러스는 그 이상을 K콘텐츠 확보에 투입할 것이라고 업계에선 예측한다. 이런 OTT 각축전 속에서 한국 영상물의 제작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K콘텐츠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K콘텐츠의 주 소비자는 2억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난해 파악한 세계 한류 온라인 동호회 회원만 1억478만 명에 달한다. 2015년 3560만 명에서 5년 만에 3배가 됐다. 2013~19년에 세계 음반 시장이 연평균 5.7%씩 감소하는 가운데, K팝 음반 판매량은 연평균 28%씩 성장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K팝이) 비서구권 음악을 바라보는 서구 팬들의 시선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영국 월간지 모노클(Monocle)은 “한국 음악과 영화, 드라마가 한국의 강력한 소프트파워가 됐다”고 했다. 이제 K콘텐츠의 인기는 음식, 생활문화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라면, 만두 등의 해외 판매량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도 한류가 음식, 화장품, 패션 등으로 확대됐다. 바야흐로 사상 최대의 K콘텐츠 전성기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건 아니다. 여전히 이민자와 소외된 청소년의 문화로 폄하되기도 한다. 한때 전성기를 누린 일본·홍콩 문화의 인기가 사라진 것처럼 몰락하지 않으려면 현재에 안주해선 안 된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를 정복했다는 식의 ‘국뽕’에 도취하는 걸 경계할 일이다. 소비층이 국제화하면서 각 문화권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반발이 터질 수 있기에 이 부분도 세심히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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