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자referral가 美 회사 취업의 성패 좌우한다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3 11:0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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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넓은 사람이 소득도 높아…창업·투자 유치 때도 역량 이상의 능력 발휘

매주 목요일 저녁에 미국의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엔지니어 몇 명이 오디오 기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클럽하우스’에서 그들의 취업 경험을 나눈다. 주제는 매번 다르지만 주로 이들 기업에 취업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오디언스(audience)로 참여한다. 그래서인지 취업 조건과 방법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

모더레이터(Moderater)들의 답변을 종합해 보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리퍼럴(referral) 다음이 레퍼런스(reference)다.’ 즉,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려면 자신의 고도화된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건 맞지만, 그보다도 누구에게 추천을 받았느냐가 취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수시모집이어서 기업에 수많은 이력서가 접수된다. 이 때문에 추천자(referral)가 없으면 리크루터(recruiter)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9년 9월30일 부산시청 로비에서 열린 2019 부산 청년 아세안 해외취업박람회에서 청년들이 줄을 서 참가신청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019년 9월30일 부산시청 로비에서 열린 2019 부산 청년 아세안 해외취업박람회에서 청년들이 줄을 서 참가신청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무시할 수 없는 인적 네트워크의 힘

그래서 회자되는 말이 있다. ‘리퍼럴을 받지 않고 글로벌 기업에 취업할 확률은 쌍둥이를 낳을 확률보다 낮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학연이나 지연 같은 말은 없지만 보이지 않게 인맥(Network)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언젠가 대기업의 인사담당자가 내게 “지방대 출신을 뽑지 않는 이유는 실력이 안 돼서라기보다 인적 네트워크가 약해서”라고 말한 점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스타트업은 ‘그들만의 리그’로 불린다. 인맥이 없는 사람은 유망한 비즈니스 모델로 투자를 받으려 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액셀러레이터나 VC들이 온라인으로 제안서를 받고 있지만 접수량이 많다는 이유로 검토도 잘 안 할 뿐 아니라 자사의 투자종목이 아니면 단칼에 거부한다.

하지만 지인의 추천을 받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제안서 검토를 심도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다소 부족하더라도 액셀러레이터를 통해 피봇(pivot)해 투자기회를 갖게 한다. 자사의 관심 분야가 아니더라도 해당되는 VC들에게 전달(transfer)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미국에서 인맥은 취업뿐 아니라 창업을 넘어 대부분의 경제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자산이다.

시카고대학 비즈니스스쿨 로럴드 버트의 연구에 따르면 내부 인맥보다 외부 인맥을 다양하게 가진 사람이 정보 수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부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내부 기여도가 높고, 필요에 따라 그룹 간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제조업자가 동업종 기업인을 만나면 친목모임 수준에 그치지만 RPA 전문가를 만나면 사무능률 향상을, 플랫폼 사업자를 만나면 유통채널 확대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약간 비틀어서 기업과 국가 간 공동연구를 들여다보자. 일본 도쿄 상공회의소 데이터뱅크에서는 매년 100만여 개 기업의 신용조사를 할 때, 대상 기업의 거래처도 함께 조사한다. 이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다. 대상 기업 중 지역시장을 중심으로 유통하는 기업보다 전국 단위로 거래하는 기업의 1인당 매출액이 훨씬 높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면 더욱더 높아진다는 점을 밝혀냈다. 넓은 시장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기업은 외부 네트워크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혁신적 사례도 많이 들을 수 있어서다.

특허 출원에서도 이러한 규칙은 증명된다. 일본 니가타대학 이노 다카시 교수 외 4인이 공동 연구해 2020년 1월 ‘Springer Link’에 발표한 논문 ‘글로벌 네트워크의 연구협력이 혁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르면 독자출원보다 공동출원(共願)을 많이 하는 기업일수록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공동출원 비율은 1991년 약 15%였던 것이 2010년에는 34%까지 높아졌다. 특히 미국, 독일, 중국 등은 더욱 높아 50%를 넘고 있다.

IP 전문기업 윕스(WIPS)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동출원 비율은 2020년 현재 전체 출원 건수의 10%에 머물고 있다. 그만큼 해외에서의 지식 유입이 충분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른바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는 뜻이다. 기업별 공동출원 비율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공동연구는 코로나19 백신 확보 측면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양자 간 연구를 강화해 전 세계 논문의 4.9% 이상을 발표했다. 그 뒤를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잇고 있다. 이로 인해 글로벌 네트워크의 중심에 섰을 뿐 아니라 백신 확보에서도 한발 앞서가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가 넓은 사람은 돈도 많이 번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 통화량을 분석한 결과 수입이 적은 사람은 통화 방위각이 좁았지만 소득이 높은 사람은 다각형 통화량을 보였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소득이 낮은 사람일수록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소득이 높은 사람은 이동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제3의 약한 연결’이 소득 좌우       

그렇다면 인적 네트워크는 어느 지점에서 소득을 가져다주는가.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석좌교수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논문 ‘약한 유대관계의 강점(The Strength of Weak Ties)’(1983)에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가족이나 친구를 내부결속자본(Bonding)이라 하고, 직장 동료나 업계 종사자 등과 같은 인맥을 외부연결자본(Bridging)이라 한다.

하지만 언급한 두 가지 연결고리보다 제3의 약한 연결(weak tie), 즉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에서 소득과 연결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구조적 공백은 다른 말로 링킹(Linking)이다. 잘 모르는 사람의 추천에 의해 연결된 사람으로부터 소득이 더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제 결론이다. 취업, 창업 등 경제활동에서 인적 네트워크는 역량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특히 소득으로 연결되는 인맥은 링킹 관계에서 주로 발생한다. 따라서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평판 관리가 대단히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나의 평판을 듣고 필요한 곳에 나를 추천해 줄 수 있게 한다면 당신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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