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법인세 인상 글로벌 릴레이 시작되나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0 12: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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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재무부, 법인세 21%에서 28%로 인상 예고…지구촌 동시 증세로 이어질지 주목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2조2500억 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 계획과 1조8000억 달러 규모의 교육과 복지 확대를 위한 인적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올 초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편성했던 긴급 예산이 1조9000억 달러였다. 지출 계획을 모두 합치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10배가 넘는다. 돈을 쓰려면 어떻게 돈을 조달할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 바이든은 막대한 재원을 법인세 인상과 부자 증세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재무부는 인프라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 계획으로 일단 법인세 단일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재무부가 제시한 목표는 향후 15년간 세금 2조5000억 달러를 더 걷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아이젠하워 행정동에서 2조2500억 달러(약 2500조원) 규모 초대형 인프라 투자 입법 및 법인세율 인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EPA 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아이젠하워 행정동에서 2조2500억 달러(약 2500조원) 규모 초대형 인프라 투자 입법 및 법인세율 인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EPA 연합

향후 15년간 2조5000억 달러 세금 확보

그동안 미국은 재정 지출의 상당 부분을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방법으로 채워왔다. 그 결과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28조 달러로 늘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은 107%에 달한다. 전 세계 국가부채의 31%가 미국의 몫이다. 아무리 기축통화국이라고 해도 이런 방식의 재원 충당은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달러화의 위상을 실추시킨다. 증세는 이런 추세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확실한 재원 조달 수단이다.

문제는 있다. 미국 혼자 법인세를 올리면 자본의 해외 유출이 불가피하다. 미국 정부는 이런 결과를 막기 위해 국가별 조세 인하 경쟁을 제한하기 위한 21%의 글로벌 최저법인세율(global minimum tax rate)을 제안했다. 미국만 법인세를 올리면 주요 기업들이 다른 나라로 이탈하니 국제적인 법인세 최저세율을 정해 세율 인하 경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자는 얘기다.

제안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EU)에서는 이미 디지털세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2000년대 들어 구글, 페이스북 등 국경을 넘나드는 사업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디지털 기업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돈을 벌면서도 본사가 있는 미국에만 세금을 내거나, 아니면 아예 세금이 거의 없는 버뮤다 같은 곳에 별도 법인을 두는 방식으로 조세를 피해 왔다. 다국적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사업장 등 ‘물리적 실체’가 있는 국가가 과세권을 가진다는 기존의 국제 조세 원칙을 무너뜨렸다. ‘구글세’라고도 불리는 디지털세의 골자는 IT 기업이 사업을 벌인 해당 국가는 무조건 매출의 일정 비율을 과세하자는 것이다. OECD에서 논의 중인 글로벌 최저법인세율은 12.5%다. 미국을 중심으로 생각하자면 글로벌 IT 기업들에 대한 과세권을 다른 나라에 조금 양보하면서 대신 법인세 인하 경쟁은 하지 말자는 뜻으로 봐도 되겠다.

미국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법인세의 글로벌 동조화 전략은 산업 기반이 비교적 튼튼하지만, 재정 지출이 많아 높은 세율과 많은 조세 수입이 필요한 나라들에는 괜찮은 제안이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나라도 많다. 낮은 세율은 국가가 자본 유치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를 합의한 세율로 고정하자는 말은 기업을 유치하는 데 특별히 다른 장점이 없는 나라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저법인세율로 피해가 예상되는 나라들은 아일랜드, 뉴질랜드, 헝가리처럼 영토와 인구가 적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다.

글로벌 최저법인세율로 인한 조세 부담 증가는 이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대다수 나라에서 세법상 내국 법인은 무제한 납세의무자로 국내외에서 발생한 모든 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내야 한다. 비록 이미 다른 나라에서 세금을 냈다고 해도 다시 본국에서 추가로 내야 할 세금을 계산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아일랜드의 법인세는 현재 12.5%다. 낮은 세율로 아일랜드는 애플을 비롯한 다국적기업을 유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최저법인세율이 21%라면 기업들은 설사 아일랜드가 최저법인세율을 따르지 않더라도 아일랜드에 세금을 내고 추가로 본국에 8.5%의 법인세를 더 내야 한다. 조세 친화적인 지역으로 기업들이 옮기는 데 따른 실익이 없어지는 것이다. 현재 OECD 37개 회원국 중에서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21% 이하로 유지하는 국가는 11개국이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시절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25%로 환원했다. OECD 회원국 평균 법인세율 23.9%보다 약간 높다.

 

법인세 인상은 피할 수 없는 현실

법인세율 논의에 정답은 없다. 사실 법인세를 낮추는 것은 대체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경제적 성과를 거둔 이유의 하나로 감세 정책을 제외하기는 어렵다. 트럼프는 2017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36%에서 21%로 파격 인하했고, 이는 기업 실적 개선과 주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반면 법인세 인상은 보통 경제적 성장에 반한다고 얘기된다. 국가 경제는 결국 민간의 기업 경쟁력에 영향을 받는다.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장 세수 확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도 경제 상황에 자신이 없었다면 추진이 어려웠을 것이다.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어서 형평성 개선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법인세는 교과서에서 조세의 원칙으로 제시하는 투명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탁월하다. 개인에게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은 큰 장점이기도 하다.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에게 직접 과세하는 게 아니어서 비교적 조세저항을 줄여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쉬운 측면이 있다. 조세 인하 경쟁이 없다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줄어든다.

앞으로의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법인세에 대한 글로벌 환경 변화는 현실이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를 대규모 재정 지출을 통해 극복해 왔다. 그러나 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금 조달이 필요하고 방법은 채권을 발행하거나 세금을 올리는 것 말고는 없다. 재원이 필요하다면 정상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 늘어난 재정 지출을 충당하는 방안으로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은 고소득 개인과 법인에 대한 누진세 강화를, 세계은행은 증세를, 유럽연합은 플랫폼 기업 세율 인상을 권고했다.

다른 나라의 세율을 두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미국과는 처지가 다르지만, 기왕에 세금을 올려야 한다면 올리고 당연히 그에 따른 부작용과 정치적 부담은 감수하는 것이 원칙에 맞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과 영국, 일본, 독일 등은 법인세율을 10%포인트 이상 혹은 10%포인트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인하해 왔다. 미국의 옐런 재무장관은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경쟁을 이제 멈춰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법인세를 정말 올리기 시작하면 추세는 달라질 수 있다. 글로벌 동시 증세가 시작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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