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공소장 공개와 언론 자유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4 07:3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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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국민 알 권리 침해했다”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다. 종교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 명확히 규정한 이 조항은 미국을 넘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1971년, 미국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최고 기밀로 분류된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미국 연방대법원은 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보도 과정을 다룬 영화 《더 포스트》에는 미국 연방대법관의 판결 내용이 담겨 있다.

“건국의 이념에 따르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수정헌법 1조에 보장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헌법 정신’ 정반대 행보 보이는 법무부

이 같은 미국의 ‘언론 자유’에 대한 신념은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이와 같은 ‘언론 자유’의 정신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는 언론 자유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모든 국민의 언론·출판의 자유 및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공소장이 외부에 공개된 것에 대해 ‘유출자 색출’이란 카드를 빼들었다. 박 장관의 이 같은 행보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한 헌법 정신의 침해는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거스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장관은 5월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단순 평면 비교, 끼워 맞추기식 비교는 사안을 왜곡한다”며 “우리는 공존의 이름으로 마지막 선을 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무부는 5월20일 “공소장 유출이 징계 사안에 해당하는 행위라는 데 이견이 없다”며 박 장관의 입장을 거들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근거 규정으로 국가공무원법상 비밀엄수 의무, 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대검으로부터 진상조사 결과를 통보받는 대로 유출자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할 전망이다.

이 같은 조치는 공소장을 공개하도록 한 노무현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비공개 대상 정보의 요건을 엄격하게 강화하는 정보공개법 개정이 이뤄졌다. 국민의 알 권리 신장과 투명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다. 이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국회를 통한 공소장 공개 관행이 자리 잡아왔다. 이 같은 배경에서 국정농단 사건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등의 공소장도 국회를 통해 공개돼 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비리와 감찰 무마 사건까지 국회에 공소장이 제출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소장 비공개 흐름이 생긴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시절이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와중에 만들어진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 17조4항이 있는데, ‘공소장은 법령에 의해 허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열람하게 하거나 사본을 교부하는 등으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법무부 장관이 내부 사무 처리를 위해 임의로 만든 ‘훈령’이며 따로 처벌 규정은 없다.

이 규정이 처음으로 적용됐던 것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 규정을 근거로 국회에 공소장 제출을 거부했다. 청와대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이었지만 1심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야 공소사실이 확인됐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연루된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본부장의 공소장도 공개가 거부됐다.

 

“정권 입장에서 불편하다는 뜻인가”

이 지검장에 대한 공소장도 같은 이유로 국회에 제출되지 않았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철저하게 정권 인사가 개입된 권력형 비리에 대한 공소장 공개는 제한하고, 일반인에 대한 공소장은 공개해 왔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실제로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의 경우 다음 달 1일 첫 재판이 이뤄지는데도 법무부는 공소장을 제공했다.

박 장관이 야당 의원 시절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박 장관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당시 특검법에 ‘대국민 보고 조항’을 넣는 데 관여했다. 박 장관은 또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절대 권력과 절대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며 “이 지검장 사건은 공익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정부는 공개하고 싶은 것만 공개하겠다고 나선다”고 비판했다.

판사 출신인 김태규 변호사는 “법무부가 공소장 공개를 두고 대단한 내부 기밀을 유출한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겁을 주려는 것”이라며 “공소장 내용이 정권 입장에서 불편하고 내용이 공개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공소장이 만들어진 이후에 공개되는 것을 두고 법으로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공소장 공개 금지 훈령을 만든 저의도 의심스럽고, 판사 출신인 박 장관이 저렇게 나서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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