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내사종결, 다른 이유 있었나…더 커지는 ‘봐주기 의혹’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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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이 차관 신상 파악하고 ‘단순 폭행’으로 무마한 정황
앞뒤 안 맞는 경찰 해명에 ‘수사 외압’ 의혹 더 커져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5월26일 오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5월26일 오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새 국면을 맞았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뒤 내사 종결했던 서울 서초경찰서가 이 차관이 당시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유력 인사'임을 인지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사건 곳곳에 경찰의 석연치 않은 처리 정황이 확인되면서 수사 외압 또는 봐주기 의혹은 한층 더 짙어졌다.

 

경찰, 사건 초기 이 차관이 누군지 알았다

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부실수사 의혹을 조사 중인 서울경찰청 청문·수사 합동 진상조사단(진상조사단)은 지난해 11월 당시 서초서 간부 등 관계자들이 이 차관이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사실을 인지하고 해당 정보를 내부 공유한 정황을 확인했다.

이 차관은 지난해 11월6일 밤 서울 서초구 아파트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려던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았다. 사흘 뒤 피해 택시기사 조사가 있던 11월9일, 당시 서초경찰서장이던 A 총경은 '이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언급되는 인물'이라는 내부 보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형사과장인 B 경정 등도 이 차관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등 구체적인 신상을 파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상조사단은 당시 수사지휘 라인에 있던 경찰 등 42명을 조사하고, 이들의 휴대전화와 PC, 경찰 내부망 자료 등을 포렌식 해 이같은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경찰은 이 차관 취임 후 해당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서초서 수사 관계자들이 이 차관을 평범한 변호사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 차관이 법무부 고위직을 지냈다거나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인사인지 몰랐고, 내사 종결 과정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택시기사 폭행 사건 이후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했기 때문에 고위직 봐주기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경찰 해명과 다른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났고, 이번 진상조사단 조사에서 새로운 의혹이 추가되면서 해명은 궁색해졌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부실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서초경찰서 ⓒ 연합뉴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부실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서초경찰서 ⓒ 연합뉴스

휴대폰 교체하거나 통화·문자 내역 삭제

당시 서초서 간부들은 '안티 포렌식 앱' 등을 활용해 통화기록이나 문자메시지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차관이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는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못 본걸로 하겠다"고 은폐한 C 경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차관 사건의 담당 수사관이었던 C 경사는 해당 사건이 알려지고 논란이 커진 지난해 12월 말 급작스레 휴대폰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당초 사건 관련 핵심 증거인 블랙박스 영상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28일 이 차관의 범행을 입증할 택시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한달여 전인 같은해 11월11일 경찰이 이 차관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고, 이를 묵살한 뒤 사건을 내사 종결해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곳곳에서 확인된 경찰의 이상한 사건 처리에 '수사 외압' 의혹은 한층 더 커졌다. 과연 경찰이 외압 없이 자체 판단으로 이 차관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겠느냐는 것이다.

경찰은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과 지휘라인에 있던 인물 4명을 입건하고, 통화내역 7000여 건을 분석하는 등 진상조사 막바지에 돌입했다. A 총경과 B 경정에 대한 조사도 마무리한 후 외압 또는 고의적인 봐주기가 있었는지를 규명할 방침이다. 

또 이 차관이 사고 다음날 택시기사에게 블랙박스 영상 삭제를 제안한 것과 관련한 증거인멸 교사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이용구 법무부 차관(왼쪽) 2월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박범계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이용구 법무부 차관(왼쪽) 2월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검찰, 이 차관 기소 여부·처벌수위 조만간 결론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부실수사 의혹이 마무리되면, 경찰 수사 신뢰도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67년 만에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조직 전체가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어서 여론의 시선은 더 따가울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 차관을 기소한다면 초기 수사에 실패한 경찰 책임론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동언)는 지난 22일 이 차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사건 발생 6개월 만에 첫 소환조사다. 

검찰은 경찰이 운행 중인 운전자 폭행을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을 적용하지 않은 경위와 이 차관이 이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수사를 할 수 있다.

사건 당시 택시는 주차가 아닌 정차 중이었기 때문에, 이 차관에 단순 폭행이 아닌 특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택시기사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사건 당시 변속기가 D인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차관을 소환조사 한 뒤 진술 분석을 마무리 한 검찰은 조만간 이 차관에 대한 기소 여부와 처벌 수위를 결론낼 방침이다.

만일 이 차관 기소가 확정되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법무부 2인자인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되면 야당을 비롯한 자진 사퇴 압박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이 차관은 "사건 관련 외압이나 수사 무마 청탁은 없었다"며 경찰 수사 개입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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