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공간에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성공한 부산 F1963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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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부지·문화예술·트렌디한 상업 공간
강점 두루 갖춘 재생공간의 성공사례
지난 4월 F1963에 새로 개관한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과 '금난새뮤직센터(GMC)' 입구 ⓒ김지나
지난 4월 F1963에 새로 개관한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과 '금난새뮤직센터(GMC)' 입구 ⓒ김지나

지난 2016년,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이 생겼다. 지금은 상당히 유명해진 F1963이다. 고려제강의 와이어로프 생산공장으로 세워진 이곳은 2008년 공장으로서 운명을 다하고,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사용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금은 전시장·공연장·레스토랑·카페·도서관·서점 등이 들어와 있어 제법 다채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가 콤플렉스로 자리 잡았다.

젊은 세대의 취향들로 채워진 적당히 상업적인 공간이라 생각했던 처음의 인상은, 개관 후 만 5년을 채워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많이 달라졌다. 2019년에는 예술전문도서관인 F1963도서관이 들어섰고, 최근에는 현대모터스튜디오가 오픈하면서 또 한 번 이슈가 됐다. 부산 출신의 지휘자 금난새의 이름을 딴 클래식 음악공간 ‘금난새 뮤직센터’가 함께 개관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부산에서 단일공간으로 이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없어 보였다.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 내부 전시장 전경. 포니 전기차 콘셉트카가 전시되어 있다. ⓒ김지나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 내부 전시장 전경. 포니 전기차 콘셉트카가 전시되어 있다. ⓒ김지나

세월감에 모던이 더해진 재생공간 F1963

F1963처럼 산업 인프라였다가 문화공간으로 바뀐 사례가 많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부터 ‘산업단지・폐산업시설 등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기회를 갖게 된 덕분이다. 지금까지 이 사업의 지원을 받아 다시 태어난 공간들이 22곳에 달하지만, 흥행 면에서는 F1963이 단연 돋보인다.

기본적으로 재생공간들은 매력적이다. 오래된 건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세월감이 편안한 정서를 일으키면서도, 모던한 건축자재들로 장식되며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한때 산업용으로 쓰였던 장소가 문화예술로 채워진다는 스토리는 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꾸준히 방문객을 불러모으고 주변 도시공간을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공간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F1963이 여타 재생공간에 비해 특별히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넓은 부지면적, 수준 높은 문화예술 경험, 그리고 트렌디한 상업 공간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재생공간은 트렌디하긴 했지만 양적인 파워가 부족했다. 어떤 곳은 더할 나위 없이 넓은 공간을 가졌으나 지루했다. 예술적 감흥은 만족스러워도 소비의 니즈가 채워지지 않으면 재미가 없었으며, 그 반대는 공허함이 남았다.

F1963에서 보이는 고려제강 본사건물(KISWIRE CENTER). F1963과는 브릿지로 연결되어 있다. ⓒ김지나
F1963에서 보이는 고려제강 본사건물(KISWIRE CENTER). F1963과는 브릿지로 연결되어 있다. ⓒ김지나

자율적 시도로 잡은 세 마리 토끼

F1963이 이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업이 주도하는 민관 협력관계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부산비엔날레 이후 F1963은 부산시와 협약을 맺으며 공간 재생의 기반을 다졌고, 기업의 의지와 재원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콘텐츠를 채워 나갔다. 약 6만 제곱미터의 공간을 가진 덕분에, 그리고 공공부문에서는 좀처럼 발휘하기 어려운 자율성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도도 가능했다.

현대자동차는 고려제강의 새로운 기업 파트너가 돼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고려제강의 홍영철 회장과 금난새 지휘자의 특별한 인연으로 ‘클래식 교육’이란 또 하나의 레이어가 F1963에 더해졌다. 도시 규모에 비해 이렇다 할 넓은 녹지가 부족한 부산에서 F1963은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정원의 역할까지도 하고 있다.

도시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앞으로 폐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전환하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고, 도시재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끝나지 않는 미션이다. 하지만 공공이 완고함을 조금 버리고 민간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F1963과 같은 성공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재생공간의 숫자적인 성과나 역사 스토리에만 집착하지 않는 진짜 ‘문화재생’ 사업을 F1963 이외에서도 또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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