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대주주는 왜 사이프러스 ‘황금 여권’ 찾아 떠났나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7 07:30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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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정훈 전 의장의 사이프러스 시민권 신청 서류 입수
투자 사기 사건은 검찰 송치

소문만 무성하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의 대주주 이정훈 전 빗썸코리아·빗썸홀딩스 이사회 의장의 해외 국적 취득 시도 정황이 확인됐다. 시사저널은 이 전 의장이 유럽연합(EU)에 속한 지중해 국가 사이프러스(키프로스)에 시민권(국적)을 신청하려 제출한 서류를 단독 입수했다. 이 전 의장은 영어명 ‘애덤 리(Adam Lee)’로 2018년 시민권을 신청했다. 서류에는 이 전 의장이 시민권을 신청했으며(Applied for Cypriot Citizenship in 2018), 시민권 취득 후 나오는 여권은 ‘발급받지 못했다(No Cypriot Passport)’고 나와 있다. 서류에 있는 인물의 생년월일은 1976년 7월15일로 이 전 의장의 것과 같다.

이 외에도 2018년 11월28일 발행된 현지 언론 알리시아 뉴스(Alithia news)에는 ‘이정훈씨가 사이프러스 내무부 장관에게 M-127(귀화)을 신청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이 신문은 사이프러스 시민권을 취득하는 이들과 관련한 뉴스를 정기적으로 싣는 매체다. 사이프러스는 터키와 그리스 중간에 있는 지중해의 섬나라로 우리처럼 남과 북이 갈라진 분단국가다. 남부 키프로스공화국의 경우 2004년 5월1일 유럽연합에 정식 가입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박정훈

사이프러스, 세금 적고 이민 쉬워 세계 부호 ‘러시’

이 전 의장은 왜 사이프러스 시민권을 취득하려고 한 것일까. 그러기 위해선 사이프러스의 독특한 이민 제도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8월 카타르 도하에 본사를 둔 통신사 알자지라는 탐사보도 ‘사이프러스 페이퍼스(Cyprus Papers)’를 통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전 세계 70개국 2500명이 사이프러스 시민권을 땄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이프러스 시민권은 ‘황금 여권(Golden Passport)’이라고 불렸다. 왜 그럴까.

사이프러스 시민권은 세계 부호들 사이에 탈세 수단으로 활용됐다. 사이프러스는 법인세가 12.5%로 EU 내 최저 수준이며 상속세·증여세·부동산세와 관련한 세금이 없다.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하는 데 별도의 언어 시험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EU 회원국이기에 시민권을 따면 다른 유럽연합 내 거주 및 취업이 가능하다. 때문에 사이프러스 시민권은 우리나라에선 자녀 유학 목적으로 많이 쓰인다. 더군다나 사이프러스는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에릭슈미트 전 구글 회장 등이 현재 이 시민권을 취득했다.

사이프러스 시민권이 러시아·중국 부호들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하면서 시민권 취득 절차는 지난해 10월부터 잠정 중단됐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국적 취득자 2500여 명 중 러시아 국적자가 922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 국적자가 482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이민업체들도 사이프러스 시민권을 적극 홍보한다. 국내 업체들이 사이프러스 이민을 홍보하면서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이러한 세제 혜택과 EU 회원국이라는 점이다. 한 대형 이민업체 관계자는 “시민권·영주권이 나오는 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데 사이프러스 정부가 요구하는 기준만 충족되면 (시민권·영주권을 받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이프러스 현지 파트너사에 따르면, 현재 중단된 시민권 프로그램이 곧 다시 열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사이프러스 이민은 크게 영주권과 시민권으로 나뉜다. 영주권은 별도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다. 말 그대로 영구적인 거주가 가능하다. 국내 이민업체에 따르면 사이프러스 영주권을 얻기 위해선 30만 유로(약 4억1330만원) 이상을 사이프러스 내에 투자해야 한다. 이때 투자 방식으로는 현지 기업 주식·펀드 등 다양한 방법이 가능한데 국내 수요자들의 경우 대체로 현지 부동산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물론 우리나라 과세 당국에 사전신고를 해야 하지만, 사이프러스 영주권을 취득하면 현지로 돈을 보내는 게 한결 수월해진다.

시민권 취득에는 200만 유로(약 27억5500만원)가 필요하다. 연간 3만 유로(4133만원)의 정기적인 소득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증빙해야 한다. 유럽연합 내 거주 및 취업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시민권이 있어야 한다. 영주권으론 불가능하다.

ⓒ사이프러스 내무부
ⓒ사이프러스 내무부

빗썸 “대주주 개인 문제며, 회사 경영 참여 안 해”

다시 이 전 의장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왜 사이프러스 시민권을 취득하려 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선 현재로서 정확한 입장을 확인하기 어렵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시민권 신청 시점이다. 이 전 의장은 현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관련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가상자산 ‘BXA’를 판매한 뒤 약속대로 이를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하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BXA 코인에 투자한 이들은 이 전 의장과 함께 자신들에게 이 상품을 판매한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병건 회장이 인수가 3억5000만 달러에 빗썸 지주사인 빗썸홀딩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하면서 BXA 토큰을 ‘거래소 코인’으로 상장시킨다고 밝힌 시점은 2018년 10월 무렵이다. 결과적으로 상장은 무산됐고, 투자금은 현재 반환되지 않고 있다.

이러자 이후 이 전 의장과 김 회장 간 소송이 불거졌다. 김 회장은 이 전 의장이 BXA 20%를 자신에게 무상 배정하고 이를 빗썸거래소에 상장시켜 기축통화로 사용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해 7월 시사저널 기사([단독] 이면계약서에 담긴 ‘빗썸 인수 사기’ 사건의 진실)를 통해 보도됐다.

이러한 절차를 밟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사이프러스 시민권 취득을 준비했다는 점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전 의장과 김 회장을 중간에서 소개시켜준 이는 현재 빗썸홀딩스에 근무 중인 최고경영진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점은 대략 2018년 5월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 뒤인 8월경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참고로 BXA 사건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김 회장 역시 국적이 싱가포르다.

이 밖에도 이 전 의장은 조인트벤처 형태로 설립한 빗썸 태국법인의 관계자로부터도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 태국법인 측 관계자는 "빗썸이 일방적으로 사업 중단을 통보했다"며 "BXA를 발행해 자금을 모집하면서 해외 거래소를 만든다 속였다"고 주장했다.

사이프러스 이민 당국이 확인한 이정훈 전 의장 서류ⓒ사이프러스 내무부
사이프러스 이민 당국이 확인한 이정훈 전 의장 서류ⓒ사이프러스 내무부

현재 이 전 의장의 시민권 취득 절차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사이프러스 수사 당국 리포트에도 ‘절차가 진행 중(Application is still in process)’이라고 돼 있다. 사이프러스 시민권 취득과 관련해 시사저널은 이 전 의장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 사건과 관련해 이 전 의장은 앞서 여러 언론을 통해 “BXA 발행과 판매에 관여하지 않았고, 상장 약속도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개정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은행들은 앞으로 거래소 실사 과정에서 해당 거래소 임직원 등 회사 관계자의 사기·횡령 이력 등까지 꼼꼼히 들여다볼 방침이어서 이 전 의장과 관련한 의혹을 검찰이 어떻게 볼지도 관심거리다. 빗썸홀딩스 관계자는 “개정된 특금법은 시행일(2021년 3월25일) 이후부터 발생한 회사관계자의 범죄 행위에 처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전 의장 의혹이 회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빗썸을 운영하는 빗썸홀딩스 2020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비덴트가 34.33% 지분, 디에이에이(DAA)가 29.98%, BTHMB홀딩스가 10.70%를 갖고 있다. 이 전 의장은 DAA, BTHMB홀딩스의 대주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실질적으로 빗썸홀딩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람이 이 전 의장이라는 게 가상자산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빗썸홀딩스 관계자는 “지난해 4월부터 하반기까지 잠시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회사 경영에 참여한 적이 없어, 뭐라 답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 송치와 관련해서는 “대주주 개인의 문제일 뿐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빗썸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인 권오훈 차앤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빗썸 매각 후 매각자금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지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이정훈 전 의장의 사이프러스 시민권 취득은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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