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인 지정에 울고 웃는 재계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2 10:00
  • 호수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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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효성그룹 총수 바뀌며 세대교체 가속화…정몽진 KCC 회장 차명 회사 드러나 검찰 고발되기도

재계의 세대교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동일인은 단순히 그룹 회장에 취임한 것과 다르다.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 자리를 공정위가 공식 인정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일인에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의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회사도 계열사로 편입된다. 공정위가 5월1일 주요 대기업 집단 총수(동일인)를 발표하기 전부터 삼표그룹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표그룹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인 회사다. 정도원 회장이 지주회사인 (주)삼표를 통해 삼표시멘트(시멘트), 삼표산업(레미콘), 삼표기초소재(골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주)삼표의 자산은 2조5573억원, 매출액은 1조4453억원을 기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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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인 발표 전부터 삼표가 주목받은 이유

삼표그룹의 성장 이면에는 정의선 회장의 역할도 일부 있었다. 현대제철은 과거 삼표기초소재에 철광석 정제 부산물인 슬래그를 독점 공급하다 업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 회사가 일부만 자체 소화하고 나머지는 마진을 붙여 다른 시멘트 업체에 팔았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석회석 납품 과정에서 삼표 계열사인 네비엔 등을 끼워넣어 시민단체로부터 ‘통행세’ 비판을 받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두 회사는 삼표그룹의 2세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표그룹의 경우 정도원 회장이 지주회사 지분 81.9%를 보유하고 있다. 2세인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에게 지분을 증여하는 방법으로는 승계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삼표는 미니 지주회사인 에스피네이처를 설립했고, 2017년과 2019년 삼표기초소재와 네비엔을 각각 합병했다. 에스피네이처의 자산은 현재 1조원에 육박한다. 삼표그룹이 현대차 계열에 포함될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도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삼표그룹은 현대차 계열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그동안 삼표그룹이 현대차그룹과 별도로 독립 경영을 해온 점을 공정위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동일인 지정을 앞두고 삼표 측에서 계열사 편입 제외 신청을 했고, 공정위가 이 소명을 받아들이면서 계열에서 제외된 것으로 안다”고 짧게 답했다.

실제로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2018년 부친인 구본무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2019년에는 공정위로부터 동일인으로 지정되면서 사돈 회사인 보락그룹이 LG 계열에 편입됐다. 구 회장은 2009년 10월 정기련 보락 회장의 맏딸 효정씨와 결혼했다. 이후 LG생활건강이 보락의 주요 매출처에 이름을 올렸고, 보락의 규모 역시 그에 비래해 커지면서 일감 몰아주기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논란이 일자 보락은 2013년 사업보고서에서 돌연 매출처와 매출액 비중을 뺐다가 최근 다시 공개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보락의 매출은 383억원이다. 이 중 LG생활건강이 39억7000만원(10.36%)으로 매출 1위를 기록 중이다. 과거에 비해 비중이 많이 빠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의존도 1위다. 하지만 보락그룹 역시 공정위에서 독립 경영이 인정되면서 LG 계열사에서 제외된 전례가 있다.

지난 5월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동일인이 바뀐 효성그룹은 그 반대였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처가 회사는 이희상 전 회장이 이끌던 동아원그룹이다. 한때 제분업계 점유율 3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잘나가던 회사였다. 하지만 동아원그룹은 2015년 유동성 악화로 그룹이 해체됐다. 당시 조 회장은 동아원 계열사로 포르쉐와 마세라티 등을 판매하는 FMK를 인수한 뒤 처남인 이건훈씨에게 대표이사를 맡겼다. 회사 경영난으로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만큼 조 회장이 처가를 측면 지원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최근 조 회장으로 동일인이 바뀌자 장인 회사들이 대거 효성 계열사에 포함됐다. 부동산 임대업체인 대산앤컴퍼니와 반려동물 용품 및 사료 판매업체인 퍼플네스트, 경영 컨설팅 업체인 로터스원 등이다. 이 중 로터스원은 더클래스효성과 더프리미엄효성이 각각 6.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거래 관계는 전혀 없다는 것이 효성 측 설명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새로 계열사가 된 회사들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효성 계열사의 지분이 일부 있지만 이해관계는 전혀 없는 작은 회사다”면서 “공정위에 계열 분리 신청을 하면 언제든 쪼개질 수 있는 회사여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현대해상·KCC家 사돈 기업 밀어주기 논란 여전

올해 공정위는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새롭게 대기업 집단에 포함시켰다. 그동안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을 둘러싼 사돈 회사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적지 않았다. 정 회장은 1982년 고(故)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차녀 혜영씨와 결혼했다. 건축자재 판매로 시작해 건설업까지 진출했을 정도로 잘나가던 회사였다. 하지만 부국물산은 IMF 외환위기 이후 계열사들이 줄줄이 폐업했고, 2007년 그룹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김 전 회장의 둘째 아들이자 정 회장의 처남인 김관영 제이엘투자운용 대표와 아내 홍성진 솔로몬테크노서플라이 대표가 따로 기업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이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해상 헬프데스크 운영과 서버시스템 운영을 현재 솔로몬테크노서플라이가 대행해 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이 회사는 그동안 빠르게 사세를 키워왔다. 특히 솔로몬테크노서플라이의 주요 사업장 역시 범(凡)현대가 기업의 사옥에 자리 잡으면서 뒷말이 여전한 상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해상은 그동안 대기업 집단에 포함되지 않아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해 왔지만 올해부터 상황이 다르다. 부의 편법 증식이나 대물림에 대해 최근 공격적으로 대응해 온 공정위나 국세청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몽진 KCC 회장의 경우 올해 1월 차명 회사가 뒤늦게 드러나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정 회장은 2000년 KCC의 전신인 금강고려화학 회장에 올랐고, 2013년 KCC의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문제는 처가 회사인 동주와 동주상사 등이 2018년 뒤늦게 계열사에 편입됐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올해 초 개인 소유의 차명 회사와 친족 회사 9곳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정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KCC 측은 “자료 누락은 단순 실수로 검찰에서 충분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KCC 측의 소명이 일부 받아들여지면서 검찰은 지난 3월 정 회장을 벌금 1억원에 약식 기소했다. 약식 기소는 비교적 혐의가 가벼울 때 검찰이 벌금형 등 약식명령을 법원에 청구하는 절차다. 하지만 법원이 약식 기소된 정 회장을 정식 재판에 넘기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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