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왜 정용진에게 열광할까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6.30 07:3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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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회장, SNS와 유튜브 통해 거침없는 행보
SSG 랜더스 인수 후 ‘구단주 마케터’로 변신

지금까지 이런 재벌은 없었다.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경쟁사 오너를 저격하는 거친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보고 대중들은 열광한다. “재벌 후계자 같지 않다”거나 “옆집 아저씨 같다”고.

현재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60만 명을 돌파했다. 간혹 정 부회장의 SNS에 컴플레인성 댓글도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여기는 민원을 올리는 곳이 아니다’면서 대신 대응해 줄 정도로 팔로워들의 충성도도 높다. 이렇게 형성된 팬덤은 그룹 이미지 개선과 함께 계열사 제품 판매로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용진이형’ 리더십이다.

왜 그럴까. 정 부회장은 우선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은둔의 경영’을 표방하는 여느 재벌 총수나 후계자들과 비교되는 첫 번째 차별점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공식 유튜브 이마트 라이브를 통해 두 개의 영상을 공개했다. 정 부회장이 이마트와 거래하는 해남 땅끝마을을 방문해 배추를 수확하고 요리하는 모습과 비하인드 영상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4월4일 롯데 자이언츠 대 SSG 랜더스 경기에서정용진 부회장을 닮아 화제가 된 캐릭터 ‘제이릴라’가 정 부회장 옆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뉴시스
4월4일 롯데 자이언츠 대 SSG 랜더스 경기에서정용진 부회장을 닮아 화제가 된 캐릭터 ‘제이릴라’가 정 부회장 옆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뉴시스

B급 정서 활용해 소비자들 ‘무장해제’

배추를 수확하며 “어우 그놈 실하다”고 말하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배고파, 추워”라고 2행시를 짓는 소탈한 모습은 MZ세대의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두 영상은 한 달여 만에 100만 건 안팎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정 부회장은 재래시장에서 장도 직접 봤다. 시장 상인이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묻자 “저요? 장사해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정 부회장의 외유는 프로야구단인 SSG 랜더스 인수 이후 가속화되고 있다. SSG 랜더스 야구단의 홈 유니폼을 위아래로 갖춰 입고 인증샷을 남기는 것은 기본이다. 개막전에서 SSG 랜더스가 창단 이후 첫 승리를 하자 자신의 이름을 딴 ‘용진이형 상’을 게시했다. 

경쟁사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을 겨냥해서는 “동빈이형은 야구와 본업을 연결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게임에서는 우리가 질 수 있겠지만, 마케팅에서만큼은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인 신동빈 회장이 지난 4월27일 잠실 LG-롯데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내가 도발하니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평소에도 SNS에 적극적이었던 그가 SSG 랜더스 인수 후 화력을 더해 가는 모습이다.

SNS에서 사용되는 B급 정서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정 부회장은 6월10일 “지난 주말은 ‘현판’(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배카점데이(백화점 데이)”라는 글과 함께 두 장의 사진을 올렸다. 경쟁사를 방문해 자신의 SNS에 올린 것도 이례적이지만, ‘백화점데이’를 ‘배카점데이’라 적은 글이 눈에 띤다. 심지어 신세계푸드의 캐릭터인 제이릴라에게는 “너무 짜증나는 고릴라 xx”라고 하고, 경쟁 구단인 키움 히어로즈를 겨냥해서는 “키움을 발라버리고 싶다”고 적기도 했다.

이 소탈한 모습에 MZ세대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정 부회장이 SNS에 공유한 제품은 연일 품절 대란을 일으키면서 ‘완판남’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정 부회장 자체가 그룹 홍보와 마케팅의 조력자 역할을 넘어 마케터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 부회장이 지난해 7월 상품 출시에 맞춰 SNS에 올렸던 ‘이마트 피코크 잭슨피자 시카고 페퍼로니’의 경우 누적 판매량 10만 개를 돌파한 상태다. 지난해 SSG닷컴이 선보인 ‘조선호텔 삼선짬뽕’ 역시 입고와 동시에 주문이 마감되는 완판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정 부회장이 이 제품을 조리한 사진을 SNS에 올린 직후였다. 

이른바 ‘정용진 버거’로 알려진 신세계푸드 ‘노브랜드 버거’는 한 연구소의 호감도 조사에서 맥도널드와 롯데리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빅데이터연구소가 최근 국내 햄버거 브랜드 6곳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노브랜드 버거의 순호감도가 39.1%였다”면서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정용진 부회장의 영향력이 호감도 상승에 기여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최근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베이코리아의 지난해 거래액은 20조원이다. 네이버(거래액 27조원), 쿠팡(거래액 22조원)에 이은 3위다. 그동안 정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음에도 SSG닷컴의 거래액은 3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베이코리아 인수로 신세계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계한 유통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아울러 정 부회장이 공을 들이는 MZ세대와의 접점 또한 늘릴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기업경영트랙 교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들은 소탈하고 유연하다.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처럼 직원들과 축구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인식된다”면서 “총수들의 소탈하고 유연한 모습에 친숙해진 젊은층이 그 기업 제품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 이베이코리아 역시 신세계그룹 인수 후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게시 글로 설화 겪기도 

물론 정 부회장의 파격 행보가 모두가 호평을 받은 것은 아니다. 총수 개인이 지나치게 부각되다 보니 적지 않은 설화(舌禍)에 시달렸다. 정 부회장은 최근 신세계 계열 조선팰리스의 중식당 ‘더 그레이트 홍연’을 소개하면서 샥스핀 사진을 올려 비판을 받았다. 잔인한 어획 방식으로 인해 퇴출 추세인 샥스핀을 홍보했다는 이유였다.

정 부회장이 최근 SNS에 올린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표현도 구설에 올랐다. 5월28일 닭새우 사진과 함께 올린 게시글에서 “너희들의 희생이 우리 모두를 즐겁게 했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이 글은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현장을 찾아 방명록에 쓴 글과 겹치면서 뒷말이 나왔다. 맘카페 등에서는 최근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제작한 뮤지컬 《박정희》를 정 부회장이 관람한 것과 겹치며 ‘일베 논란’도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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