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도 ‘30대 리더’ 시대 도래했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3 10:00
  • 호수 16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셀트리온·BGF그룹·경동제약 등 오너家 80년대생 속속 그룹 최일선으로

최근 헌정 사상 첫 30대 당수의 등장으로 사회 전반에 ‘세대교체’ 바람이 부는 모습이다. 재계도 예외가 아니다. 오너 3~4세 체제로의 전환은 이미 막을 올린 지 꽤 됐지만, 올해 들어 그 속도가 더욱 빠르다. 경영 전면에 나서는 나이 역시 기존 40대 이상에서 30대로 확 앞당겨지는 추세다. 

중견 제약사인 경동제약은 6월30일 창업주인 류덕희 회장(83)의 퇴임 사실을 알렸다. 동시에 류 회장의 아들인 류기성 부회장이 회사를 단독으로 경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류 부회장은 1982년생으로 39세다. 24세였던 2006년 경동제약에 입사해 개발, 마케팅, 수출입 등의 업무를 두루 맡았다. 이어 2011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일선에 나섰다.  

창업자인 류 회장은 1975년 9월 경동제약의 전신인 유일상사를 설립한 뒤 이듬해 경동제약으로 사명을 바꿔 46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 중소기업 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한국제약협회 이사장 등 업계 대표자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류 회장의 존재감이 워낙 컸던 터라 경영 승계가 좀 더 천천히 이뤄질 거란 예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류 회장은 용퇴를 택했다. 이런 결단의 배경엔 제약업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젊은 리더십 바람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영균 광운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점점 커지고 해외에선 20~30대 벤처기업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며 “한 치 앞을 모르는 변화무쌍한 경영 환경을 헤쳐나가는 데 젊은 리더십이 더욱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렌드에 뒤처져 손쓸 수 없거나 병들어 어쩔 수 없이 경영권을 승계하기보단 일단 물러나서 자녀의 경영활동에 조력하려는 선대 경영자가 늘어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경동제약 측은 류 회장이 향후 명예회장으로서 회사 경영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필요에 따라 자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셀트리온·BGF그룹·한화그룹·뉴스뱅크이미지 ·우먼센스·경동제약 제공

“바뀐 상황에 맞는 젊은 리더십 절실” 

같은 제약·바이오 기업인 셀트리온그룹에서도 세대교체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조사 결과 자산총액 기준 순위가 지난해 45위에서 올해 24위로 수직 상승한 셀트리온은 지난 3월 서정진 명예회장(64)의 퇴진과 함께 장·차남을 중심으로 하는 경영체제를 공고히 했다. 이른바 ‘셀트리온 3형제’로 불리는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은 3월26일 일제히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오너 2세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서 명예회장의 장남인 서진석 셀트리온 수석부사장(37)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의 등기임원으로, 차남인 서준석 셀트리온 이사(34)는 셀트리온헬스케어 등기임원으로 각각 선임됐다. 서 명예회장이 이사회에서 물러나는 대신 그간 미등기임원이었던 서 명예회장의 장·차남이 사내이사 자격으로 이사회에 정식 합류하게 된 것이다. 

오너 2세가 3개 회사의 이사회에 합류하면서 합병 절차에도 탄력이 붙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9월 3개사 합병을 위해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지주회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홀딩스를 설립했다. 서 명예회장은 전화 연결로 주총에 참여해 “서 부사장이 이사회에 합류해 의장을 맡게 된다. 올해 3개사 합병 등 과제들을 정리할 테니 믿고 격려해 달라”며 큰아들의 리더십에 힘을 보탰다.  

유통기업인 BGF그룹의 홍석조 회장(68)은 2019년 30대 연년생 장·차남을 경영 최전선에 배치했다. 그해 10월31일 장남 홍정국 부사장(39)을 대표이사로 선임했고, 하루 뒤 차남 홍정혁 상무(38)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홍 대표는 지난해 11월27일 사장으로 다시 승진했다. BGF 측은 ‘책임 경영 강화’와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 등의 표현을 통해 형제 관련 인사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룹 입성이나 승진은 형인 홍 사장이 훨씬 빠르지만(2013년 입사, 홍 전무는 2018년 입사), 동생 홍 전무 역시 나이나 경력 면에서 밀리지 않는 만큼 BGF가 형제 경영 체제로 가고 있다고 재계는 해석한다.  

한화, 임원 연령대도 덩달아 젊어져 

호반건설, 한화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에서도 리더십이 30대 후계자에게 상당 부분 옮겨간 것으로 평가된다. 호반건설 김상열 회장(60)의 장남 김대헌 사장(33)은 회사 지분 54.7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2013년 호반에 입사해 2018년 부사장,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한화 김승연 회장(69)은 1981년 한국화약그룹(한화 전신) 설립자인 아버지 김종희 회장이 타계하자 29세의 나이로 총수가 된 바 있다. 모두 30대인 김 회장의 세 아들도 일찍부터 총수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는 중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 9월 장남 김동관씨(38)를 한화솔루션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한화는 김 회장이 최대주주로 22.7%의 지분을 보유했고, 장남인 김 사장이 3.8%,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36)와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32)가 각각 1.7%씩 확보하고 있다. 재계에선 향후 그룹 핵심 계열사인 태양광·화학·방산·우주사업은 장남이, 금융 계열사는 차남이, 레저·설비·건설사업은 삼남이 각각 맡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화는 3형제로의 승계 과정에서 일반 임원들 연령대까지 낮춰가고 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한화 외에도) 국내 주요 그룹이 오너 일가뿐 아니라 일반 임원 인사에서도 젊은 임원들을 전진 배치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70)의 장남 정기선 부사장(39)은 대형 인수·합병(M&A)을 잇따라 성사시키고 신규 사업 방향성을 설정하는 한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와의 협력도 진두지휘하는 등 존재감을 부쩍 키워가고 있다. 전문경영인(CEO) 체제를 유지해온 현대중공업그룹이 조만간 정 부사장의 오너 경영체제로 전환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더해진다. 

재계 3위 SK그룹에선 총수 일가의 30대 자매가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최태원 회장(61)의 장녀 윤정씨(32)는 SK바이오팜 책임매니저로 일하다 2019년 휴직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바이오인포매틱스 석사 과정을 밟고 있고, 차녀 민정씨(30)도 SK하이닉스에서 M&A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엔 최 회장의 아들 인근씨(26)도 SK E&S 전략기획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3남매가 현재 몸담은 계열사에서 실무를 익혀 앞으로 해당 사업 전반을 주도할 것으로 내다본다.  

 

일반 사원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도 

서경배 회장(58) 뒤를 이어 아모레퍼시픽그룹을 이끌 후계자로는 장녀 서민정 과장(30)이 꼽힌다. 앞서 서 과장은 2017년 1월 아모레퍼시픽 뷰티사업장 생산관리직 사원으로 입사했다가 6개월 만에 사직했다. 퇴사 후 중국 장강상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치고 2019년 10월 아모레퍼시픽 뷰티 영업전략팀 과장으로 복귀했다. 차녀 서호정씨(26)는 아직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서 과장은 지난해 10월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의 장남 홍정환씨(36)와 결혼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후계구도와 미래를 좌우할 정도의 혼사로 화제를 모았으나, 올해 5월 이혼으로 마무리됐다. 이와 관련해 아모레퍼시픽은 서 회장이 홍씨에게 증여한 이 회사 보통주 10만 주를 전량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20~30대에 일찍 경영 수업에 뛰어들어 회사생활을 경험하는 후계자가 부쩍 늘어나면서 일반 사원들과의 접점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최윤정 전 SK바이오팜 책임매니저는 재직 기간 구내식당을 즐겨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를 직접 운전하고 사내 회식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SK 관계자들은 전했다. 

홍정국 BGF 사장은 사내에서 평사원들과 이른바 ‘번개’ 점심식사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대리급 직원은 “사장님이 직원 몇 명을 모아 지난주에 멕시코 요리 전문점에서 점심을 쐈다”며 “‘양이 좀 부족하다’고 말했더니, 추가로 주문해 주더라”고 말했다. 

 

■ 43개 그룹 오너 가족, 입사 이후 평균 5년 만에 임원…사장 승진까지는 14년 
최연소 임원은 27세인 김민성 호반건설 상무 

국내 5대 경제단체 중 하나인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5월 제31대 회장단 첫 회의를 열고, 신규 회장단 15명을 포함해 총 36명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회장단 면면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1970년대생의 등장이었다. 강호찬 넥센타이어 부회장과 이동섭 일진그룹 사장은 1971년생이며,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은 1973년생이다. 국내외 경제·기업 환경 변화에 발맞춰 ‘젊은 피’를 수혈해야 한다는 구자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무협 측은 전했다. 

한국CXO연구소가 국내 200대 그룹을 대상으로 총수 일가의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4월 기준 1970년 이후 출생한 임원은 총 150명에 달했다. 이 중 벌써 그룹 1인자로 등극한 오너가 출신도 있다. 30대 그룹 중에서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51)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49),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46), 구광모 LG그룹 회장(43)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지선 회장은 35세였던 2007년부터 현재까지 13년째 회장직을 수행해왔다. 

30대 그룹 외에는 이인옥 조선내화 회장(50)이 43세였던 2013년부터 회장 직함을 유지 중이다. 윤호중 hy 회장(50)은 지난해 처음 회장이 됐다. 차기 회장 후보인 부회장급은 조성환 조아제약 부회장(51), 강호찬 넥센타이어 부회장(50), 현지호 화승그룹 부회장(50),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부회장(47), 허승범 삼일제약 부회장(40) 등이다. 오너가 중 최연소 임원은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의 차남인 김민성 상무(27)다. 

한편 CEO스코어가 올해 1월 64개 대기업집단 중 오너 일가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43개 그룹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오너 일가가 입사 후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평균 4.8년 걸렸다. 오너 일가의 입사 나이는 평균 29세이며, 임원 승진 나이는 33.8세로 집계됐다. 이들이 사장단에 입성한 나이는 평균 42.7세로 입사부터 사장단 승진까지 소요된 기간은 평균 14.1년이었다. 일반 직장의 상무(이사 포함)급 임원 나이가 평균 52세, 사장단이 평균 58.8세인 것과 비교해 오너 일가는 임원 승진의 경우 18.2년, 사장단 승진은 16.1년 빨랐다. 

같은 오너 일가라도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빨리 임원이 됐다. 재벌 1·2세에 해당하는 부모 세대는 평균 29.5세에 입사해 34.6세에 임원 자리에 올라 5.1년 걸렸다. 3·4세로 분류되는 자녀 세대는 28.6세에 입사해 4.5년 만인 33.1세에 임원을 달았다. 입사 후 사장에 오르는 기간도 부모 세대는 평균 43.5세에 사장단이 되면서 평균 14.4년 걸렸고, 자녀 세대는 41.3세에 사장단에 올라 13.6년이 소요됐다. 

이 같은 경향은 그룹 규모가 작을수록 짙게 나타났다. 조사 대상 중 30대 그룹에 포함된 21개 그룹 오너 일가는 임원 승진까지 5.5년 걸렸는데, 30대 그룹 밖 22개 그룹은 3.4년으로 2.1년 빨랐다. 사장단까지의 승진 속도도 30대 그룹 밖은 평균 12.5년으로 30대 그룹 14.8년보다 2.3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