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군 이래 최악의 집단감염…청해부대 미스터리 셋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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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대응 실패로 부대원 301명 중 271명 확진…국방부, 청해부대 감사 착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장병들이 탑승한 버스가 2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국방어학원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장병들이 탑승한 버스가 2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국방어학원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청해부대 34진(문무대왕함)에서 발생한 집단감염 사태는 최악의 방역 실패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청해부대 소속 부대원 90%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작전 도중 전원이 귀환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군 당국의 총체적 부실 대응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는 가운데 집단감염 원인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22일 국방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입국한 청해부대에서 271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부대원 301명의 경우 현지 검사에서 247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으나, 지난 20일 조기 귀국 후 실시한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23명이 추가됐다. 이날 음성 판정을 받은 뒤 격리 중이던 장병 1명도 증상 발현으로 다시 진단검사를 받아 확진되기도 했다. 귀환 전보다 확진자가 24명 더 늘어 감염률은 무려 90%에 달한다. 동일집단 10명 중 9명이 감염된 건 전례에 없는 일이다.

 

감염경로 어디서부터 시작됐나…사흘간 기항한 아프리카 현지 유력

아울러 청해부대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 급격한 확산에 이르기까지 여러 의문점이 풀리지 않고 있다. 먼저 ‘감염경로’부터 오리무중이다. 이 그나마 유력한 감염경로는 문무대왕함이 6월28일~7월1일까지 군수물품 적재를 위해 기항한 아프리카 해역 부근이다. 청해부대가 육지와 떨어진 바다에서 임무 수행을 하는 만큼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은 군수품 보급을 위해 땅을 밟았을 때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기간 기항한 직후 첫 유증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인과 접촉해 감염됐다는 추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당시 항구엔 크레인이 없어 장병 10여 명이 직접 내려가 물자를 일일이 배로 옮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모든 장병이 방호복을 착용하는 등 방호규정에 따라 이뤄져 감염 확률이 낮다고 군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또 현지인들이 항구에 물품을 쌓아놓으면 장병들이 나르는 식으로 진행돼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장병들이 기항 기간 무단 이탈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평소라면 장병들은 해상에서 2~3주간 계속 근무하는 탓에 함정이 기항할 때마다 외출이 허용됐다. 땅을 밟는 자체가 고립감을 해소하는 일종의 휴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외출은 전면 금지됐다. 군 당국은 현재까지 무단 외출은 없다고 밝혔지만, 추가 조사 여지를 남겨둔 상태다. 

유증사자들을 단순 감기 환자로 판단하고 대처한 점도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다. 함정에 군의관을 두 명이나 동반하고도 고열 증세를 보이는 장병을 격리하기는커녕 감기약을 처방하는 데 그쳤다. 부대 내 의료진 소견뿐 아니라 의무사와 원격 화상 진료까지 했는데 모두 감기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엑스레이 결과, 폐렴 증상이 없었다는 점도 감기라고 판단한 이유다. 하지만 이런 군 당국의 오진은 방역 골든타임을 놓친 최대 패착으로 작용했다.

부대원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증상을 호소했는데도 간부들이 묵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방위원회 소속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청해부대 소속 군인 아버지와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고열이 40도까지 올라가는 데도 부대에선 '외부인과 접촉을 안 했으니 코로나일리가 없다'며 타이레놀 한 두 알만 주고 버티게 했다”고 밝혔다. 실제 부대원들이 어떤 증상을 호소했는지, 이를 감기로 판단하는 구체적 과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20일 오후 청해부대 34진 장병을 격리·치료 시설로 이송 중인 버스 안에서 한 부대원이 서울공항 정문에 모인 취재진을 향해 손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청해부대 34진 장병을 격리·치료 시설로 이송 중인 버스 안에서 한 부대원이 서울공항 정문에 모인 취재진을 향해 손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병사들 유증상 호소 묵살했나…엉뚱한 검사키트 가져간 이유는 무엇

문무대왕함이 출항할 당시 정확도가 높은 신속항원검사키트 대신 왜 신속항체검사키트를 챙겨 갔는지도 규명되야 할 부분이다. 신속항체검사키트는 초기 감염 감별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방부는 코로나19 발병 위험이 큰 장기 출항 함정에 감염 여부 판별이 즉시 가능한 신속항원검사키트를 구비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문무대왕함은 신속항체검사키트 800여 개만 실었다. 이 때문에 지휘명령 체계에 허점이 드러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와 해군이 엇갈린 입장을 내놓으면서 오히려 의문을 키우고 있다. 지난 18일 해군은 “청해부대가 올해 2월 출항할 때는 (개인용) 항원키트가 승인이 안 되어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용 항원검사키트와 항체검사키트 모두 이미 지난해 11월 정식 허가가 난 상태였다. 반론이 일자 국방부는 “지난 1월 항원키트를 활용하라는 공문 지시를 내려보냈다. 합동참모본부와 해군이 왜 항체키트를 가지고 출항했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군 당국은 귀국한 청해부대원들이 안정을 찾는 대로 역학조사는 물론 진상조사에 착수해 시비를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이날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조사본부 조사관 2명을 포함해 감사관 등 10명을 투입해 각종 의혹과 각 기관이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규명할 계획이다.

감염원 차단에서부터 초기 대응까지 총체적 부실 방역이 확인된 만큼, 군 수뇌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문책론이 거세지고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20일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와 함께 국방부 장관 해임을 요구하는 등 공세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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