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허익범 특검과의 대화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2 08:00
  • 호수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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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익범 특검(62)이 김경수 경남지사의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 범죄 사실을 증명해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건 기적에 가깝다. 35개월, 1100일간 진실 추적의 여정에서 종종 추적자와 도망자가 뒤바뀐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명수 사법부의 정치성이 의심받은 지는 오래됐고, 김경수는 문재인 정권의 2인자였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틈만 나면 그를 감쌌으며 ‘묻지마 친문’ 세력의 기세등등한 여론몰이는 특검팀엔 거의 협박 수준으로 다가왔다.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법원 선고가 진행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허익범 특검이 법정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법원 선고가 진행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허익범 특검이 법정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아내의 걱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허 특검은 7월28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내의 걱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권력을 건드리는 것이니까. 여권의 촉망받는 분을 상대로 한 수사였으니…그 정도로만 하자”며 말끝을 흐렸다.

허 특검이 기적 같은 일을 해낸 것의 의미는 크다. 첫째, 그는 죄가 있는 곳에 벌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법치의 확립이다. 죄를 힘으로 덮으려는 권력자들의 교만함에 제동을 걸었다. 인치(人治)나 당치(黨治)의 위험으로부터 법치(法治)를 구한 것이다. 둘째, 김경수의 죄는 여론을 조작하고 민심의 선택을 왜곡시킨 죄다. 이 죄를 단죄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대선캠프들은 다양한 방식의 여론조작 부정선거를 양심의 가책 없이, 아무런 부담 없이 자행했을 것이다. 허익범은 인민민주주의나 정권교체 없는 베네수엘라식 민주주의로부터 선거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허익범과의 대화에서 기적은 기적적으로 일어난 게 아님을 알게 됐다. 그것은 특검팀의 공적 정의를 세우기 위한 인간적 집념과 원칙의 결실이었다. 성실성과 심적 고뇌가 쌓인 결과였다.

기적을 일으킨 첫 번째 요소는 원칙과 집념이다. 허 특검은 “처음부터 거의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김경수 지사와의 대결에서 의지할 것은 증거밖에 없었다. 김 지사는 드루킹 산채(파주 경공모 사무실)에서 킹크랩 시연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특검팀은 운전기사가 식사한 영수증과 김경수의 차량 이동시간, 네이버 서버에서 로그 기록 등 연관된 물증을 찾아내 주장을 뒤집었다. 한두 가지가 아니라 전체를 부인하니 결국 사람의 말보다 객관적 증거,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물적 증거를 찾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저는 법률가 인생을 ‘증거가 말하게 하라.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간다’는 원칙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시간 앞에 초조했다”…1주일 119시간 노동

기적의 두 번째 요소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성실성의 다른 표현이었다. 허 특검은 “디지털 분량이 엄청나게 많았다. 테라바이트 규모였다. 이 가운데서 무의미하고 미심쩍은 것을 다 제거하고 법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명료한 증거만을 시간에 맞춰 제시해야 했다. 시간 앞에서 초조했고 무너질 뻔했다. 특검팀 열 명이 단순무식한 노가다 작업을 25일간 하루 17시간씩 주말도 없이 디지털 증거 분류 작업에 매달릴 때도 있었다”고 했다. 따져보니 그 시기에 특검팀은 ‘1주일 119시간’ 노동을 한 셈이다.

허익범 특검이 기적을 일으킨 세 번째 요소는 인간적 고뇌에서 주저앉지 않은 것이다. 그는 노회찬 의원의 자살과 어머니의 임종을 같은 날 겪어야 했다. 허 특검은 이때를 최대의 위기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수사도 좋지만 이게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일까. 내가 하는 일이 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해야 할 만큼 중대한 일일까. 그런 회의가 일자 침울하고 우울해졌다. 그날 많이 울었다. 나는 크리스찬인데 이 일이 나라가 맡겨준 소명이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특검 중단을 원치 않으시리란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졌다.” 허익범 특검은 7월30일 대통령과 국회에 특검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임기가 종료된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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