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세계로 스며든 가상 인플루언서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2 10:00
  • 호수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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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통해 소통하는 ‘힙한’ 가상 인간들이 뜬다
기업의 얼굴로도 나서

광고 속에서 경쾌한 춤을 추던 매력적인 외모의 한 여성을 보고, 데뷔를 앞둔 연예인 지망생이나 걸그룹 멤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신한라이프의 광고 모델 ‘로지’ 얘기다. 22세, 키 170cm, O형, 취미는 해외여행과 요가, 러닝이다. 인스타 팔로워는 4만 명 이상.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며 팬들과 소통하던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팬들을 놀라게 했다. 로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 인간이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의 발전은 완전히 새로운 가상 인간을, 가상 인플루언서를 탄생시켰다. 비대면과 메타버스의 트렌드를 타고 이들은 더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신한라이프 제공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가상 인플루언서는 ‘릴 미켈라’다. LA에 거주하는 19세의 그녀는, 가상세계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모델이고, 뮤지션이다. 현실 패션잡지인 ‘보그’ 등에 미켈라의 이야기가 실렸고,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와 양말은 매진 행렬을 이뤘다. 뮤지션으로 발표한 음원도 인기리에 스트리밍된다. 프라다, 구찌, 샤넬의 모델로도 활동한다. 미켈라의 한해 수입은 무려 130억원. 타임지는 그녀를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일본에는 ‘이마’가 있다. 일본 스타트업 AWW가 만든 이마는 분홍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해 이케아는 하라주쿠에 팝업 스토어를 오픈하면서 이마의 일상을 공개했다. 이마가 3일 동안 먹고, 자고, 요가를 하고, 청소를 하고, 가구를 조립하는 모습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이마는 광고 수입 등으로 지난해에만 7억원을 벌어들였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34만 명을 보유한 파워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이미 로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가상 인플루언서는 국내에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LG전자가 선보인 ‘김래아’는 서울에 거주하는 DJ이자 전자음악 작곡가다. 리플레이스 앱으로 제작한 뮤직비디오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소주를 사러 간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며 팬들과 소통한다. 김래아는 올해 1월 세계 최대의 IT·가전 전시회인 CES 2021에 등장해 유창한 영어로 LG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디오비스튜디오가 탄생시킨 ‘루이 리’도 있다. 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실제로 촬영한 동영상에 가상의 얼굴을 합성하는 방법으로 제작된 가상 인간이다. 루이는 루이커버리라는 유튜브를 운영한다. 이미 구독자는 2만3000명 이상. 22세인 루이는 노래와 춤이 특기다. 팝송 커버 영상을 올리거나 일상 속 브이로그를 공유하며 소통하던 루이는 최근 온라인 쇼핑몰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유튜브

MZ세대의 특성과 선호도 반영돼 인기

이렇게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가상 인간이 등장한 핵심 배경은 ‘기술’이다. 1998년 등장했던 국내 1호 남성 사이버 가수 아담은 누가 봐도 ‘가짜 인간’ 비주얼이었다. 지금은 고도화된 그래픽을 기반으로 인공지능까지 접목해 실제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발전했다. 기술의 집합체인 셈이다. LG전자는 김래아를 만들 때 모션캡처 작업을 통해 7만여 건에 달하는 실제 배우의 움직임과 표정을 추출했다. 목소리와 언어 역시 4개월간 자연어 정보를 수집한 뒤 학습 과정을 거쳐 완성시켰다.

가상 인간의 비주얼을 선호하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실제로 가상 인간의 얼굴을 개발할 때, MZ세대가 좋아하는 수백 개 얼굴을 조합하기 때문이다. 로지 역시 MZ세대가 좋아하는 얼굴들을 조합해 탄생했다. 여기에 Z세대의 문화도 투영한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좋아하는 특성을 가상 인플루언서의 성격에 반영하는 것. 이성 친구와의 만남과 이별을 SNS에 당당히 공개하고, 각종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릴 미켈라의 팔로워는 300만 명에 이르는데, 그중 83%가 24세 이하 Z세대다. MZ세대가 선호하는 트렌드를 반영하면서 기업은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여기에 ‘리스크’가 없다는 점도 가상 인플루언서가 기업의 얼굴로 속속 등장하는 배경이다. 광고 모델에게 부정적인 이슈나 스캔들이 발생하면 곧바로 기업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가상 인플루언서들에게는 이런 리스크가 없다. 아프지도, 늙지도 않는다. 활동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도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장점으로 부각된다. 이제 가상 인간은 최첨단 정보기술을 반영하는 존재이면서, 메타버스와 현실을 연결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기업이 인플루언서에게 쓰는 마케팅 비용은 2019년 80억 달러(약 9조1800억원)에서 2022년 150억 달러(약 17조2000억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이 중 상당 부분을 가상 인플루언서가 차지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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