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자녀 위해 무릎 꿇은 엄마들의 ‘절박한 목소리’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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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학교 설립까지 험난한 여정 담은 독립 다큐영화 《학교 가는 길》
상영금지 가처분으로 법정에…“우리 사회 중요한 디딤돌” 靑 청원
2017년 9월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과 2021년 5월5일 개봉한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 영화사 진진 공식 페이스북 캡처
2017년 9월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과 2021년 5월5일 개봉한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 영화사 진진 공식 페이스북 캡처

학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 아니다.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더라도 누군가에게 학교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도 험난한 과정이다. 장애인과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당연한 것 같은 국민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싸우고, 호소하고, 무릎 꿇어야 했다. 

2017년 9월 서울 강서구 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던 주민들 앞에 무릎 꿇은 엄마들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학교만 세울 수 있다면 수 백번도 더 조아리겠다던 엄마들은 학교 설립을 막으려는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 날 그 공간에 있던 시민 모두가 사실은 피해자였다.

국가와 사회 전체가 감당하고 해결했어야 할 일을 한 쪽으로 치워두고 등 돌린 동안 '국민과 국민'이 싸우는 구조가 돼버렸다. 무릎 꿇은 엄마들이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고개 숙이고, 일부에선 "쇼를 멈추라"며 소리를 질러대던 그 때 해당 지역구의 정치인의 답변은 "저는 힘이 없습니다"였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의 한 장면. 2017년 9월5일 특수학교 설립 주민 공청회에서 발달장애아들을 위한 학교 설립 필요성을 주장하는 부모의 모습이 담겼다. ⓒ 유튜브 캡처
영화 《학교 가는 길》의 한 장면. 2017년 9월5일 특수학교 설립 주민 공청회에서 발달장애아들을 위한 학교 설립 필요성을 주장하는 부모의 모습이 담겼다. ⓒ 유튜브 캡처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개봉한 독립 다큐영화 《학교 가는 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누군가를 향한 비판, 비난, 원망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무엇 때문에 2017년과 같은 일을 겪어야 했는지,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묻고 교육이 무엇인지, 여전히 소외되고 배제되는 사람이 생겨나는 교육 환경을 꼬집는 것이었다. 2020년 3월 긴 기다림 끝에 문을 열게 된 서진학교가 설립되기까지 아이들과 부모가 얼마나 긴 여정을 돌아왔는지 설명하는 기록이다. 

집에서 3시간 넘게 걸리는 특수학교에 가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등교를 준비해야 했던 아이와 가족들, 부모들이 왜 서진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을 꿇어야 했는지, 스쿨버스 차창 밖으로 비치는 '장애인 시설 반대' 현수막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 이 아이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너무도 두려운 부모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적절한 때, 적절한 곳에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자립이 쉽지 않은 장애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또 다시 밀려날 수밖에 없고, 이들에 대한 교육 기회 박탈이 결국은 공동체에도 많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란 숙제를 담고 있기도 하다.  

2018년 4월30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삼보일배 행진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4월30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삼보일배 행진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독립 다큐영화 《학교 가는 길》은 7월 말 한 시민으로부터 명예훼손을 이유로 배급 및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당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소를 제기한 인물은 '강서특수학교 설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서 활동했던 주민 중 한 사람으로, 과거 주민토론회에서 발언하던 자신의 모습이 10초 가량 영화에 포함된 것을 문제삼았다. 제작진이 모자이크 처리와 법적 문제를 모두 검토한 뒤 반영한 것이었고, 소를 제기한 주민을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법정으로 가게 됐다. 

영화사는 작품에서 토론회 장면이 가진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삭제하거나 수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학교 가는 길》의 상영금지에 반대하며 탄원서 작성 참여를 호소했다.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진행된 탄원서 모집에는 나흘간 4만 명 넘는 시민들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연대는 "《학교 가는 길》은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폐해, 모순된 사회 구조 속에서 오랜 기간 고통 당한 주민들의 애환 등 지역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충실히 담고 있다"며 어느 한쪽의 일방된 입장 만을 담은 영화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학교 가는 길》을 보며 장애 자녀를 둔 부모는 공존하는 세상을 향한 커다란 디딤돌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며 탄원서 동참을 호소했다. 

절박한 호소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도 이어졌다. 자신을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학교 가는 길》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청원인은 "사회의 편견에 맞서서 자녀들이 부당한 처지에 놓이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흘렸던 눈물과 땀의 세월이 스크린에 투사되고, 공감해주는 말을 들으면서 정말 큰 위로와 힘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영화는 단순한 사회 갈등, 단선적 장애인 인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통합교육과 정책, 사회 인식 등 보편적인 의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사회 통합에 관한 묵직한 메시지를 두루 던지고 있다"며 사회적 의미와 인식 개선을 위해서라도 상영금지 되는 일이 없도록 시민들의 연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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