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훈련 중지해 대선 재미 좀 보겠다는 건가
  •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bcshin@gmail.com)
  • 승인 2021.08.09 07:30
  • 호수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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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임기 말 성과 없는 남북관계 포장하고 싶은 듯
김여정, 훈련 중단 성공시켜 한국 정부 쉽게 끌고 가려 해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 요구는 남북관계, 한·미 관계, 미·북 관계, 그리고 국내 정치라는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는 북한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한·미 관계의 이간책을 구사하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개입하며 그들에게 유리한 전략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포석일 뿐이다. 북한이 진정성 있게 나온다면 이처럼 무리한 요구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뒷모습)이 2018년 5월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나와, 북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악 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통신선 복원은 북한의 기본 의무

김여정이 중단을 요구한 8월 훈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을 배려하느라 그 이름이 없어지기 전에는 을지 프리덤 가디언(Ulchi-Freedom Guardian), 줄여서 UFG 훈련으로 불렸다. 이 훈련은 지휘소연습(CPX)이다. 즉 야외 기동훈련이 아니고 전쟁 발발 시 지휘소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점검하며 전쟁 수행 절차를 숙지하는 것이다.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는 방어적 훈련이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이어서 북측을 자극할 일이 없다.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 ‘매년 개최하는 연례훈련인데 한 번 양보할 수 있는 일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연합훈련을 잘 아는 분들은 하나같이 그 중요성을 평가한다. 현재 다수의 주한미군은 한국에 붙박이로 근무하지 않고 순환근무를 한다. 그 복무기간은 길어봐야 1년여다. 봄철과 여름철에 개최하는 연합훈련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를 만회할 기회가 없다.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군대가 강군이 될 리 없다. 실제로 북한이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주된 이유는 훈련이 북한에 위협이 돼서가 아니라 훈련이 없어야 연합대비태세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김여정의 연합훈련 중단 요구는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통신선 복원과 연합훈련을 바꿀 수 있다면 그다음에는 더한 요구도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통신선 복원은 북한의 의무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안이다. 북한이 이를 차단하는 명분으로 삼은 대북 전단 역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으로 해결됐다. 국내적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있어 헌법소원까지 제기됐지만, 문 정부는 북한의 요구에 호응했다. 이 정도면 통신선 복원은 북한의 의무가 된다. 더구나 우리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사과나 배상 요구도 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김여정은 통신선 복원이 마치 무언가를 베풀기라도 한 것인 양 ‘희망이냐 절망이냐’를 택하라고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연합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통신선 복원 이전 상황으로 갈 수 있음을 협박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북한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면 남북관계의 주도권은 항상 북한이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연합훈련을 중단했을 경우 북한은 다음 단계에서 제재 완화와 같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것이다.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가겠다고 협박할 것이다. 결국 언제든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문재인 정부는 계속 끌려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연합훈련 중단되면 미국의 실망 클 것

연합훈련 중단은 한·미 간 갈등 요인이 된다. 주한미군이나 미 합참, 그리고 미국 국방부는 연합훈련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입장이다. 전 세계에서 실전을 치러본 미군은 훈련의 중요성을 그만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북한의 요구대로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한·미 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을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한국 정부가 요청할 경우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국 정부나 국방 관련 인사들 사이에서는 실망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동맹은 위기 때 서로를 돕겠다는 약속이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가 결여되면 위기가 찾아왔을 때 동맹이 작동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미 연합훈련은 적어도 수개월 이전부터 준비된다. 그런데 북한의 요청에 따라 불과 2주를 남겨두고 연합훈련을 중단한다면, 훗날 미국도 유사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통신선 복원은 남북관계의 문제이고, 비핵화 협상은 국제사회와의 문제다. 북한의 핵능력 강화에 한·미 양국은 연합대비태세 강화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핵능력을 유지하면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라고 한다. 이는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북한과의 핵협상에도 차질 생길 것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정책 검토를 마친 후 이를 북한에 전달했고,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 핵심 내용은 단계적 비핵화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대화에 복귀해 협상을 시작할 경우 연합훈련은 그 보상 카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비핵화 협상도 아닌 통신선 복원에 연합훈련 카드를 사용하면, 비핵화 협상에 사용할 중요한 카드가 사라지게 된다. 북한은 제재 완화를 요구할 것이고, 대화도 시작하기 전에 제재 완화가 이뤄지면, 북한의 핵능력을 나누어 협상하는 단계적 비핵화 협상에서 나중에 보상할 카드가 남지 않게 된다. 이 경우 협상은 중단되고 북한의 핵보유 명분만 강화될 수 있다.

북한이 터무니없게 행동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무리한 요구라도 들어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대화에 목매어 있는 문재인 정부를 계속 압박해 그들에게 유리한 남북관계의 쐐기 박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요구사항을 거부한다면 남북관계는 언제든지 통신선 복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북한이야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런 성과 없이 임기를 마쳐야 하는 문재인 정부는 아쉬움이 클 것이다.

작금의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나 서해에서 표류한 공무원 사살 행위에 대한 사과나 배상, 이산가족 상봉, 북한 억류 우리 국민 송환과 같이 우리가 원하는 것도 이뤄져야 건강한 남북관계다. 이러한 실질적 노력 없이 남북대화나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성과 없는 남북관계를 마치 무언가 있는 양 포장해 대선 기간 중 정치적으로 재미 좀 보겠다는 것 아닌가. 현시점에서 연합훈련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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