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공생, 박물관이 해야 할 일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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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공예 진화 보여주는 안국동 서울공예박물관

지난 7월 사전관람을 시작한 서울 안국동의 서울공예박물관 ⓒ김지나
지난 7월 사전관람을 시작한 서울 안국동의 서울공예박물관 ⓒ김지나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공예박물관이 생겼다. 코로나로 개관식은 연기됐지만, 정식 오픈 전 사전예약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방문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연일 이어지는 중이다. 서예박물관, 나전칠기박물관, 자수박물관 등 전통 공예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 그동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은 모든 시대, 모든 분야의 공예를 다루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예 전문박물관이란 점에서 특별함을 강조한다.

전시는 그런 의미가 있는 공간다웠다. 각양각색의 우리 공예 문화가 분야별로 화려하게 소개돼 있었다. 전시관을 가득 매운 공예품들만큼, 이런 공예의 역사를 묵묵히 이끌어 나가고 있는 장인들의 이야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현대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공예의 현 주소를 다룬 기획 전시관은 유독 채광이 좋고 널찍하게 개방돼 있어 색다른 분위기였다. 이번 기획전시는 우리나라 전통 공예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을 환기시키고자 한 의도가 느껴졌다.

탁트인 개방감과 채광이 좋은 서울공예박물관 기획전시실 전경 ⓒ김지나
탁트인 개방감과 채광이 좋은 서울공예박물관 기획전시실 전경 ⓒ김지나

인사동에 ‘독’이 된 업종 규제

박물관 조성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금은 2만점 이상의 소장품이 있지만, 처음엔 자체 유물이 부족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부적정 통보를 받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학교 건물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주차공간이 부족하단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서울공예박물관이 집중해야 하는 앞으로의 역할에 비하면 이런 문제점들은 사소한 이슈에 불과하다.

서울공예박물관의 맞은편은 인사동길로 이어진다. 인사동은 우리나라 전통 공예문화의 정수를 이어가던 곳이었다. 골동품점, 필방, 표구점, 도예점 등, 빠르게 현대화하는 대도시 서울 안에서 옛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유일한 거리였다. 하지만 점차 관광객을 끄는 데 몰두한 나머지, 전통과 상관없는 점포들이 늘어나면서 고유의 풍경을 바꿔놓고 말았다. 인사동의 변질을 막겠다며 업종 규제를 강화했지만, 오히려 전통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까지 없앤 꼴이 됐다. 이제 인사동은 예전의 매력을 잃어버렸다는 의견이 대세다.

위기라고 하나, 전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은 여전하다. 쌈지길은 지금의 인사동에서 몇 안 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꼽힌다. 길을 따라 다양한 공예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인사동 거리의 특징을 4층 규모 건물에 재현해내, 이 지역만의 독특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곳이다. 인근의 익선동은 ‘핫플레이스’로 부상하며 인사동과 줄곧 비교되고 있다. 익선동에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시대와 국적을 뒤트는 자유분방한 시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전통을 계승하되 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낸 사례들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의 맞은편에서 시작되는 인사동길 ⓒ김지나
서울공예박물관의 맞은편에서 시작되는 인사동길 ⓒ김지나

보존과 개발 사이 고민은 현재진행 중

서울공예박물관이 위치한 안국동 일대는 고궁과 한옥마을로 둘러싸인 ‘역사도시’ 서울의 중심이다. 그만큼 전통을 보존 혹은 개발하는 이슈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지역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로구의 여러 상권들이 뜨고 지는 것을 보며, 전통문화를 보존과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상업화’와 ‘의미 있는 재창조’를 누가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결국 시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전통의 입장에서 제시하는 것이 박물관의 역할이다. 원형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은 채, 젊은 세대의 취향이 전통을 해친다며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이런 교육을 책임지는 박물관이 있음으로써 도시의 문화는 과거를 수구적으로 지키는 데 머물지 않고 더 자유롭게, 더 창의적으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2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된 서울공예박물관의 임무는 도시 안에서 전통과 현대가 공생할 수 있도록 진지한 연구와 교육으로 뒷받침하는 일이다. 이 새로운 박물관이 600년 역사도심의 공예 사랑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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