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이전 대통령 감옥 보내는 정치는 이제 끝내야”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3 16:00
  • 호수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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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종찬 전 국정원장 “文 정부, 한반도 평화 조성은 잘한 일”
“경제 완전 실패, 대통령 진영에 갇히고 주변국에 너무 저자세”

이종찬 전 국정원장(85)은 소용돌이 쳤던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가로질러온 인물이다. 그는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과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마침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 전 원장을 찾았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이 전 원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통합’을 강조했다. ‘보복의 정치’라는 악순환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의미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더 잘 알려진 그는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끝으로 현역 정치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다시 광복절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을 빼놓고 우리 근현대사를 논할 수는 없다. 우당 선생의 정신 중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 이번 대선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화두가 될 것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왜 나왔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노블레스가 뭔가. 세대교체다. 실제 우리 사회는 최근 세대교체가 됐다. 촛불혁명으로 민주화 세력이 주류가 됐다. 그렇다면 ‘오블리주’ 즉 책임과 의무를 다했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부터 나서야 하는데, 나만 옳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가혹한 이야기지만 우리 국민은 지금 이렇게 느낀다고 본다.”

공정이라는 화두가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다.

“맞다. 개인적으로 적폐 청산은 필요했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엔 오블리주가 반드시 전제돼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기회의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말이 바로 오블리주였다. 이게 이뤄졌다면 달랐을 거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어떤 대통령이 탄생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갈라져 있다. 분열이 체질화됐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더라도 통합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한다. 사회를 다시 하나로 통합해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진보와 새로운 보수가 싹트게 해서 경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여야의 유력 대선후보들을 평가한다면. 

“모두가 일장일단이 있다. 이재명 후보는 천의무봉(天衣無縫) 같다. 옷을 입었는데 꿰매지 않은 옷이라 팔다리가 여기저기 마음대로 튀어나온 모습이다. 이낙연 후보는 고정적인 틀이 있어 보인다. 윤석열 후보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하게 정리가 안 됐다. 최재형 후보도 아직 무엇을 할 것인지가 확실히 나오지 않았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윤석열 후보와 평소 가까운 사이라는 얘기가 있다. 윤 후보에게 어떤 조언을 했나.

“관용의 정치를 하라고 강조했다. 보복의 정치라는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아주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민주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보복이 반복됐다.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지 보복을 위해 이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는 일은 이제 정말 끝내야 한다.”

윤 후보는 어떻게 받아들였나.

“충분히 동의했다. 그리고 실제 관용의 정치를 할 것이다. 자라온 배경을 잘 안다. 그렇게 할 거라고 확신한다. 김대중도서관에 방문한 이유가 무엇이겠나.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국민 화합에 신경을 쓴 지도자는 없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보복 없는 정치를 했다.”

내년에 출범할 새 정부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정부조직 개편이다. 우리가 직면한 난제가 바로 인구문제다. 0.8명대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는 인구문제를 전담해 다루는 부처가 없다. 그동안 정부는 인구문제 해결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효과적이지 못했다.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역할을 딱 한 곳에 몰아서 제대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 동시에 인구문제도 선진국 스타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도 가족이라는 형태를 다시 고민할 때가 됐다. 미혼모·미혼부도 사회의 일원으로 정당하게 받아주는 인식의 전환과 시스템 변화가 절실하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가족부를 인구가족부로 바꾸면 좋겠다.”

최근 여성가족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잘 알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인구문제에 정부가 집중하면 여성의 권익은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된다. 아이를 누가 낳나. 여성이다. 인구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 복지와 인권 증진이 반드시 선결돼야 한다.”

또 제안하고 싶은 정부조직 개편이 있나.

“통일부를 민족문화부로 바꾸는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북한은 통일부를 싫어한다. 국정원장일 때부터 느꼈다. 자신들을 흡수 통일하려 한다고 인식한다. 이런 오해를 받을 필요가 없다. 또 우리는 통일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2000만 동포도 우리의 민족 문화로 묶는 게 중요하다. 오히려 이게 통일로 가는 길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조선족을 너희가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냐’고 의심할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민족 문화를 넓히자는 얘기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고유한 문화, 정체성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디아스포라부가 있다. 해외에 있는 유대인들을 다 연결한다. 우리도 이럴 필요가 있다. 때가 됐다.”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 이전 정부에서 높아졌던 긴장은 상당히 해소되고, 전쟁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다.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장 잘못한 일은 무엇일까.

“한반도 평화 조성과 달리 나머지 분야에서 문 대통령이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문제를 짚고 싶다. 먼저 통합의 기회를 놓쳤다. 적폐 청산은 집권 초기 1년 안에 마치고 그 이후에는 통합의 길을 걸었어야 했다. 지금 문 대통령은 국민 절반의 지지만 받는 반쪽짜리 대통령이 됐다. 진영에 갇힌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의 실패다.”

다음 문제는 무엇인가. 

“경제는 완전히 실패했다. 부동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기업을 너무 홀대했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으면 기업 활성화를 시켰어야 했다. 정부가 공공 영역에서 사람 뽑는다고 일자리가 활성화되는 게 아니다. 최저임금도 너무 빠르게 올렸다. 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자영업자 등은 당연히 고용을 줄이게 된다. 경제는 조화가 핵심인데, 그 조화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통합과 경제 문제를 지적했다. 마지막은 뭔가.

“외교다. 문 대통령이 주변국에 너무 저자세였다. 이런 모습이 반복되니 우리 대통령이 주변국으로부터 깔보이게 됐다. 북한에 대해서도, 평소 친화를 해도 경우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따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막말은 국민 자존심에 많은 흠집을 주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도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에 대해 확실히 따질 것은 따졌어야 했다. 경제 보복을 한 일본에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아직 9개월 정도 남았다. 무엇을 꼭 바꿨으면 하나.

“(책상을 내리치며) 대통령을 욕먹게 한 청와대 참모들과 외교안보 라인의 교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외교 무대에서 격이 떨어졌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존경받는 모습이어야지 폄하되면 우리 국민이 망신당하는 꼴이다.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정말이지 청와대 참모들과 외교부 장관, 외교안보 라인은 다 나가야 한다. 더 있을 이유가 없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이야기는 나라가 크고 작은 것과는 관계없다. 베트남은 작은 나라지만 중국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 할 얘기는 당당하게 하기 때문이다. 외교라는 게 무엇인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대표하는 단 한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여당도 이해가 안 된다. 북한이 대통령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면 소리라도 질러야 할 것 아닌가.  지금 이 정부에는 대통령이 욕을 먹어도 책임지는 인물이 한 명도 없다.”   

 

■ 이종찬은 누구인가?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경기고 졸업 후 육사 16기로, 1965년 공채 수석으로 중앙정보부에 들어갔다. 중앙정보부 총무국장,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서울 종로 지역구에서 4선 의원을 지냈다. 국가안전기획부의 마지막 부장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 만들어진 국정원의 초대 원장을 맡았다. 현재는 우당이회영교육문화재단 이사장과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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