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를 헤쳐 나갈 지혜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2 11: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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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작가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시월이일 펴냄 │452쪽│1만5800원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시월이일 펴냄 │452쪽│1만5800원

2018년 봄, 일본 오사카에서 한국인 여행객이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창 불거진 혐한 분위기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범인인 일본인의 범행 동기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 일본의 극우단체들이 도쿄, 오사카 등 한국인 거주지에서 주말마다 벌이는 혐한 시위에서는 “조선인을 죽여라!”라고 외치는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혐한 시위가 한 해 평균 250건 벌어졌다는 일본 법무성의 통계도 있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내 여동생이 살해를 당했습니다.” 재일 한국인 3세 이용덕 작가가 펴낸 소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절규한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테마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 소설을, 작가는 “시대가 쓰게 만들었다”고 집필 의도를 밝힌다. 이를테면 도쿄 극우단체의 시위에 사용된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다 죽이자’라는 플래카드나, 오사카에서 중학생 소녀가 마이크에 대고 “쓰루하시 대학살을 일으킬 겁니다!”라고 외친 실제 사건들이 소설의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혐한’을 소재로 ‘차별주의’ 극복할 대안 고민

소설의 배경은 디스토피아적인 일본의 근미래다. 일본에 첫 여성 ‘혐한’ 총리가 탄생한다. 이렇게 배외주의자들의 꿈은 이루어지고 말았다. 재일 한국인 사냥, 외국인 생활보호대상자 생계자금 지급 중지, 헤이트 스피치, 증오범죄 빈발…. 이런 절망적 현실에 여섯 명의 젊은이가 분노와 슬픔을 느끼며 일어선다.

“이 소설의 제목이 내포한 의미에 대해 말하자면, 1923년 일본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조선인이 소동을 틈타 우물에 독을 풀었다’와 같은 유언비어를 정말로 믿은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급조해, 죽창과 곤봉과 단도 등 주변에 있던 흉기를 들고, 그전까지 이웃에서 함께 생활하던 재일 조선인을 차례차례 학살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작가가 ‘혐한’이라는 소재로 ‘혐일’을 끌어내려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재일 한국인이 너무 미워서 차별하고 싶어 하는 일본인도 있었지만, 전력을 다해 그에 맞선 일본분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혐오’라는 현상 자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작가는 오히려 그런 혐오들로부터 “이 세계를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절망이나 염세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메시지는 주인공의 말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나는 폭력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건 결코 찬성하지 않아. 폭력을 증오해서는 아니고, 폭력을 이용해 봤자 다른 쪽의 차별은 절대 없앨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증오를 먹이로 삼는 차별주의자를 기쁘게 하는 일만 되니까. 우리들은 좀 더 현명하게 싸워야만 해. 비폭력 불복종 운동도 간디를 지지한 인도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성공한 거야.’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이건 우리나라 한국에서도, 혹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인 일이라는 느낌을 받기를 원한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당사자의 목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 것인데, 이 소설을 읽는 것이 그런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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