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끊은 ‘전과 14범’ 연쇄 살인마…법무부·경찰 빈틈 노렸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8.3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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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서 1명 살해 뒤 전자발찌 끊고 도주…또 다른 여성 살해
법무부·경찰 우왕좌왕 대처로 추가 피해 못 막아
경찰이 8월30일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뒤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강아무개(56)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연합뉴스
경찰이 8월30일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뒤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강아무개(56)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연합뉴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뒤 여성 2명을 살해한 50대 남성은 여러 차례 당국의 감시망을 뚫고 대담한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과 14범에 달했던 범죄자에 대한 허술한 관리감독 체계가 드러나면서 법무부와 경찰을 향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30일 경찰과 법무부에 따르면,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 돼 구속영장이 신청된 강아무개(56)씨는 강도강간과 강도상해 등 전과 14범으로, 지난 5월 천안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강씨는 전자감독 대상으로 분류, 출소와 동시에 전자발찌를 찼다.

강씨는 전과 14범이었지만, 법무부가 1대1로 관리하는 집중 관리 대상자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법무부는 범죄 경력이나 수법, 사회적 환경 등을 고려해 '집중 관리 대상자'와 '1대1 관리 대상자'를 분류하는데, 강씨는 집중 관리 대상자로 분류됐다. 

1대1 관리 대상자는 정신질환이 있거나 19세 미만 상대로 3차례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위치추적 기간 성범죄를 다시 저지르고 출소한 경우 등으로 한정된다. 엄격한 분류 조건 탓에 현재 1대1 전자 감독을 받는 대상자는 19명에 불과하다.

전자발찌를 끊고 살인 행각을 벌인 강아무개씨의 서울 송파구 거주지 모습 ⓒ연합뉴스
전자발찌를 끊고 살인 행각을 벌인 강아무개씨의 서울 송파구 거주지 모습 ⓒ연합뉴스

법무부, 강씨 '전과 14범' 정보 경찰에 미통보

만일 강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사실을 인지한 뒤에라도 법무부가 적절하게 대응했다면 인명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법무부는 강씨가 전과 14범이라는 범죄 전력 등을 경찰에 제대로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는 청소년이던 17세 때 특수절도 혐의로 첫 징역형을 받은 후 강도강간·강도상해 등으로 총 14회 처벌을 받았다. 구치소·교도소 등에서 실형을 산 전력도 8회에 달했다. 1996년 10월에는 30대 여성의 금품을 빼앗고 폭행·강간해 징역 5년과 보호감호 처분을 받았고, 2005년 9월에는 출소 5개월 만에 2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빼앗고 성추행해 징역 15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강씨는 신상공개 제도가 시행된 2008년 전 범행해 신상공개 대상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강씨의 추가 범행 전조는 전자발찌 훼손 당일에도 감지됐었다. 강씨는 전자발찌 훼손 당일인 27일 새벽 0시14분께 야간 외출 제한 금지 경보가 울려 보호관찰소 내 범죄 예방팀이 즉각 출동했다. 하지만 범죄예방팀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인 0시34분께 강씨가 귀가하면서 외출 제한 위반 상황이 종료됐다. 범죄예방팀은 향후 조사하겠다는 계획만 강씨에게 고지한 뒤 돌아왔다. 

만일 이 때 강씨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면 피해자들이 살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결국 강씨는 이날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한 거리에서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

강씨가 전자발찌를 끊은 이후 관계당국이 실시간 추적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도 맹점으로 꼽힌다. 강씨의 전자발찌 훼손 경보가 울리자마자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 직원은 이를 112 상황실과 강씨를 관할하는 서울동부보호관찰소에 통보했다.

이후 동부보호관찰소 직원들이 전자발찌 훼손 지점에 도착했지만 이미 강씨는 도주한 뒤였다.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기 때문에 실시간 위치추적은 불가능했다. 거주 지역의 폐쇄회로(CC)TV를 추적해 강씨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강씨가 거주했던 서울 송파구에 설치된 CCTV는 중앙관제센터와 실시간 연결이 돼있지 않았다. 

중앙관제센터와 실시간 연계된 지자체는 서울 시내 25개 구 중 11곳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내년까지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와 서울 지자체 간 CCTV 관제센터를 연계시킬 계획이다.

50대 성범죄자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 8월30일 법무부가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 방지를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동대문구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의 모습 ⓒ 연합뉴스
50대 성범죄자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 8월30일 법무부가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 방지를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동대문구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의 모습 ⓒ 연합뉴스

거주지 다섯 번이나 찾았지만…시신 있던 집 수색 못해

경찰이 강씨 도주 후 그의 주거지를 다섯 번이나 찾아갔을 때 집안 내부를 수색하지 못한 것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경찰은 강씨 주거지를 수색할 법적 근거가 없었으며 수색 영장 등도 없는 상태여서 집안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여러 차례 강씨 집을 찾았을 당시 집 안에는 먼저 살해된 40대 여성의 시신이 있었다. 만약 이 시신을 경찰이 먼저 발견했더라면 두 번째 피해자는 살릴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강씨의 범행은 29일 오전 7시55분께 그가 송파경찰서로 두 번째 살해한 여성의 시신을 차에 싣고 오면서 끝이 났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전자감독 대상자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며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자발찌를 훼손한 사례는 11건에 달한다. 2018년 23명, 2019년 21명, 2020년 13명으로 매년 훼손 사례가 나오고 있다. 훼손 후 도주한 이들 중 2명은 추적에 실패해 현재까지 검거하지 못한 상태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경찰의 제한된 권한으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점을 강조하며 "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장 경찰관들이 적극적인 경찰권 행사를 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경찰관 직무 집행 범위가 협소한데, 경찰청과 협의해 제도적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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