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릎 꿇어 좋은 때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3 17:00
  • 호수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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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행사장에서 무릎 꿇은 자세로 우산을 펼쳐 상관을 받쳐주고 있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 보다가 꽤 오래전 노년의 기관장이 어린이를 향해 무릎을 꿇었던 장면이 생각나 다시 찾아봤다. 당시 국립생태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전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어린이에게 상을 주면서 키를 맞추느라 무릎을 꿇었던 사진들.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꿇어앉은 할아버지 기관장, 분홍색 운동화를 신고 예쁜 미소를 지으며 상장을 받아든 아이, 나란히 키를 맞추며 기념촬영을 할 때까지도 내내 무릎을 꿇고 있던 원장님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그 무렵 사람들이 입이 닳도록 ‘좋은 말’ 하던 기억도 생생하게 떠올라 잠시 즐거웠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8월27일 오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초기 정착 지원과 관련해 브리핑하는 도중 관계자가 뒤쪽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연합뉴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8월27일 오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초기 정착 지원과 관련해 브리핑하는 도중 관계자가 뒤쪽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연합뉴스

‘꿇어!’라는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명령이 아니라, 저절로 마음이 움직여, 기꺼이 좋은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이의 모습은 다르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강압’이나 ‘억울한 항복’ ‘사죄’ ‘벌’ 등 부정적인 말부터 떠올릴 필요도 없겠다. 천하의 귀신도 감동할 만한 자세로 발을 모으고 무릎을 꿇어 소망을 말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그림에서, 영화에서 수도 없이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무릎 꿇은 모습에서 ‘언제, 어디서, 왜’가 훤히 보이고, 무릎 꿇은 이의 마음에 공감하던 때가 한두 번이었던가?

고전을 읽다가 마주치는 말 중에 ‘무릎걸음’이라는 단어가 있다. 무릎 ‘슬’, 다닐 ‘행’자를 써서 ‘슬행(膝行)’이라고 한다.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벌벌 기며 ‘무릎 꿇고 기었다’는 일화도 없는 것은 아니만, ‘무릎으로 걸어 나아가 지극한 정성을 표한다’는 ‘예’와 ‘정성’의 키워드로 등장할 때도 많다. 나는 이 단어를 《삼국사기》에 기록된 우리 음악사의 한 페이지에서 처음 만났다.

통일신라의 고위 관리 중에 윤흥이라는 이가 있었다. 지리산 자락의 남원 공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이때 왕으로부터 받은 미션이 특별했다. 거문고 연주의 비법을 지닌 ‘귀금 선생’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세속에 나오지 않고 있어 ‘거문고의 도’가 끊길 위기에 놓여 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비법을 전수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윤흥은 아내와 함께 남원에 부임한 뒤, 우선 지역의 젊은 인재를 선발해 귀금 선생 문하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귀금 선생은 이 청년들에게 일정 부분만 가르쳐줄 뿐, 끝내 ‘비밀 전수’는 허락하지 않았다.

3년이 지나도 진척이 없자 마침내 윤흥이 아내와 함께 귀금 선생을 방문해 가르침을 청하는데, 이 장면에서 ‘무릎걸음’ 얘기가 나온다. ‘윤흥은 술을 들고, 아내는 잔을 받쳐 들고 무릎걸음으로 나아가 예와 정성을 다해 귀금 선생에게 올리며 그 작품을 꼭 알려 달라 간곡하게 청했다’는 것이다. 지방관 부부의 ‘무릎걸음’은 과연 효력이 있었다. 옥보고라는 유명한 선대 거문고 스승이 그의 지정 제자에게 전하고, 그 제자가 또 그 방식으로 비밀리에 이어오던 ‘그 무엇’을 마침내 공개하게 됐다. 이로써 지리산 자락에 꼭꼭 숨겨져 있던 거문고의 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음악 편에 기록된 이 이야기를 음악 관점에서 읽다 보면 귀금 선생의 비밀 전수 작품이 무엇이었는지에 관심이 쏠리지만, 윤흥 부부가 어떻게 허락을 얻어냈는지에 초점을 둬 다시 읽어보면 ‘무릎걸음’의 의미가 새삼 각별해진다.

이즈음 떠들썩해진 ‘무릎 꿇은 이’의 속마음, 이 장면을 보자마자 대뜸 욱해진 이들의 마음이 한 방향일지는 알 수 없지만 숨 한 번 크게 고르고 ‘무릎 꿇어 좋은 때’의 맥락을 한번 생각해 봤다. ‘꿇어!’가 아니라 ‘마음의 정성을 다한 순간적 판단’이었기를.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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