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지하철에서 비맞고 일하는 기분”...이유 있는 그들의 파업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9 14: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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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총파업 철회에도 계속되는 의료인의 고충...“간호사 갈아쓰는 현실 바꿔야”

백의의 천사들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간호사 직종이 조합원의 60%를 차지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지난 3개월 동안 보건의료 인력과 공공의료 확충 등을 요구하며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과중해진 업무가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보건의료노조는 ‘교섭 결렬시 9월2일 총파업’까지 예고했다. 그러다 파업 당일 새벽에 정부와 극적으로 합의하며 업무로 복귀했다. 하지만 합의안이 이행되기까지는 지지부진한 행정적 절차가 남아 있다. 그 사이 간호사들은 계속 고된 업무와 맞닥뜨려야 한다. 천사들의 분노를 자아낸 의료현장의 실상은 어떨까.

상급 종합병원의 응급실은 코로나19의 최전선에 있는 참호다. 코로나19 증상으로 의심되는 중증 질환이 발견되면 즉각 응급실로 실려간다. 그곳에서는 매일 밤낮으로 병마와의 사투가 벌어진다. 의료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다. 최근인 지난 7월에는 서울의 40대 남성이 코로나19 검사 후 응급실에서 결과를 기다리다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고대의료원지부가 9월6일 오전 11시 고대안암병원을 시작으로 고려대학교 앞까지 도보 행진 시위에 나섰다. ⓒ 보건의료노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고대의료원지부가 9월6일 오전 11시 고대안암병원을 시작으로 고려대학교 앞까지 도보 행진 시위에 나섰다. ⓒ 보건의료노조

 

‘최전선 참호’ 응급실의 격무...“안철수 땀복은 ‘쇼’ 아냐”

“환자를 못 받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무섭죠. 일도 힘들지만 이런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부담감이 더 커요.” 서울 한 공공병원의 30대 남성 간호사 A씨가 시사저널에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까지 응급실에서 코로나19 업무를 전담했다. 정확히는 응급실 내 격리실에서 코로나19 감염 의심환자를 돌보는 일을 맡았다. 감염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확진자와 똑같은 수준으로 대응해야 한다.

응급실은 3교대 근무로 돌아간다. A씨에 따르면, 각 근무시간에 코로나19를 전담하는 간호사는 단 1명뿐이다. 간호사는 원칙적으로 4명의 감염 의심환자를 맡게 된다. 격리실이 4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격리실이 가득 찬 경우가 많아 6명까지 맡을 때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3월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코로나19 확진자 진료봉사 현장을 담은 사진이다. 당시 진료실에서 막 나온 안 대표의 간호복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A씨는 “누구는 그걸 보고 ‘쇼’라고 하던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누구나 1시간만 일해도 딱 그 모습이 된다는 것이다.

땀을 젖게 만드는 원인은 각종 보호구다. 코로나19 의심환자에 접촉하는 의료진은 ‘레벨D 보호구’를 입어야 한다. 이는 온몸을 덮는 보호복과 마스크, 장갑, 신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착용하면 땀을 배출시킬 방법이 없다. 방예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는 수기집 《우리들의 반짝이는 500일》을 통해 이렇게 묘사했다. “교대시간이 되어 레벨D 보호구를 탈의할 때 거울을 보면, 나의 옷은 땀에 흠뻑 젖어 진한 색으로 변해있다.”

A씨는 “최근에는 비닐가운을 포함한 4종 보호구로 다소 간소화됐지만 땀이 차는 건 매한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4종 보호구를 입고 진료하는 느낌을 비유하자면, 비를 맞으며 급히 뛰어서 탄 만원 지하철 안에서 부대끼는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응급실 간호사의 일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호흡곤란이 발생하면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한다. 혈액검사와 심전도 검사도 해야 한다. 각종 항생제를 투약하려면 추가 검사를 해야 한다.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 와중에 산소조절은 계속 해줘야 한다. 만약 혈압이 떨어지면 승압제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이후 감염 의심환자에 대한 검사 결과가 나오면 격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환자가 격리실을 나가면 또 업무가 폭풍처럼 몰아친다. 소방서에서 전화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하루에만 100여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대부분 코로나19 의심환자의 수용 가능 여부를 묻는 내용이다. A씨는 “전국 격리실이 과포화 상태라 서울은 물론 경기권에서도 전화가 온다”고 했다.

A씨는 “일하면서 정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호흡기 중증 환자가 2명 연속으로 들어왔을 때다. 게다가 진료 중인 감염 의심환자는 정원인 4명을 채운 상황이었다. A씨는 “일대일 진료를 해야 하는데 2명을 한 번에 맡게 되니 눈앞이 캄캄했다”고 회상했다.

8시간 사투의 대가는 3만원...“파견 간호사에 비하면 불공평”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고 나면 추가 근무수당을 받는다. 액수는 3만원. 사투를 8시간 동안 벌인 대가다. 시급으로 치면 4000원이 채 안 된다. 보통 3~4년차 응급실 간호사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 격리실 전담 업무에 투입된다. 돈에 비해 일이 너무 힘들다보니 젊은 간호사들은 속앓이가 심하다고 한다.

일선 간호사들의 박탈감을 키우는 점은 또 있다. 파견 간호사에 비해 급여가 너무 낮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 중 파견 간호사를 계약직으로 뽑는다. 이들은 생활치료센터나 선별진료소 등에 배치돼 근무한다. 급여는 위험수당 등을 포함에 하루 30만원 선. 한 달에 20일만 일해도 600만원이다. A씨는 “병원에 소속된 정규 간호사들보다 2배 정도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파견 간호사들은 비교적 경증 환자를 간호하기 때문에 병원보다 업무 강도가 낮은데 받는 돈을 보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응급실에서 코로나19 의심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 확진병동으로 옮겨진다. 응급실이 최전선이라면 확진병동은 2차 전선이다. 여성 간호사 B씨(30)는 서울 한 대형병원의 확진병동에서 수개월간 일했다. 그에 따르면, 확진병동 전담 간호사는 출근하자마자 레벨D 보호구를 입어야 한다. 그리고 4시간 동안 병실 안 확진자를 돌보게 된다.

노재옥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장이 9월6일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노재옥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장이 9월6일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2차 전선’ 확진병동, 확진자 급증에 온종일 비상대기

확진병동에 격리되는 환자는 중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거동조차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간호사들은 레벨D 보호구를 입은 채 병시중을 해야 한다. 투약 업무는 기본이고 대소변을 받아내거나 목욕하는 것도 도와줘야 한다. 병실 근무가 끝나면 밖에서 서류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 보호구를 벗자마자 간호 기록을 검토하고, 확진자가 필요한 물품을 주문해야 한다. 동시에 CCTV로 끊임없이 확진자를 관찰해야 한다.

코로나19 담당 간호사들이 벼랑 끝에 몰리는 순간이 있다. ‘코드블랙(Code Black)’이다. 이는 환자가 너무 많이 유입돼 치료할 의료진이 부족한 상태를 뜻한다. 응급실에 환자가 몰려드는 와중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코드블랙이 발동된다. 원래 응급실 소속인 B씨는 그때마다 확진병동으로 뛰어가 다시 땀을 흘려야 한다. 이렇게 되면 B씨가 맡고 있던 응급실 환자들은 담당 간호사가 잠시 사라지게 된다. 의료 공백이 불가피해지는 셈이다. B씨는 “코로나 확산 시기에는 하루에 2~3번씩 코드블랙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그런데 현장 업무보다 B씨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고 한다. 출근 스케줄이 수시로 바뀌는 점이다. B씨는 “확진자 수가 폭증하면서 갑자기 출근 통보가 떨어지는데, 그게 출근 몇 시간 전에 결정된다”며 “원래 들쑥날쑥한 3교대 근무가 더 불규칙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연차 휴가도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써야 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무엇보다 언제 확진자가 나올지 모르니 하루 종일 긴장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A씨와 B씨는 최근까지 이번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 추진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노조 소속이 아닌데다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응급실 간호사들이기 때문이다. 응급실 의료진은 필수 인력으로 분류돼 파업 여부와 상관없이 근무를 이어가야 했다. 이번 총파업에 참여 의사를 밝힌 인원은 필수 인력 등을 제외하고 약 1만8000명 정도로 추산됐다. 이는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8만여 명의 22%에 해당한다.

파업 철회됐지만 불씨 여전히 남아있어

파업과 상관없지만 A씨와 B씨는 “파업 취지에 동의한다”며 입을 모았다. A씨는 “노조가 핵심 쟁점으로 내세운 공공의료 확충이 실현되면 격리병상이 늘어나 환자 수용 능력이 커진다”면서 “그러면 오히려 간호사보다 환자들에게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B씨는 “최소한 지금처럼 간호사를 갈아 쓰는 상황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도 현황 개선을 전제로 총파업을 철회했다. 지난 5월부터 이어온 협상 과정에서는 17개 쟁점에 대해 우선 합의를 이뤘다. 파업을 앞둔 날에는 △공공병원 확충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야간 간호료 확대 등 5가지 쟁점에 대해 의견 일치를 봤다. 그렇다고 합의안이 즉각 이행된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 세부 실행방안은 없고, 예산안을 언제 수정하겠다는 계획도 없다.

보건복지부는 “당정에서 여러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여지를 남겼다. 의사들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보건의료노조와 정부 간 합의문을 두고 “내용 대부분이 의협과 논의할 사안인데 복지부가 파업 철회를 위해 공수표를 남발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대선 정국을 앞둔 정략적 합의’란 의혹마저 제기하는 형국이다.

파업의 불씨도 꺼지지 않았다. 9월9일 오전 기준 고대의료원과 조선대병원 등이 8일째 개별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서울 성북구 고대안암병원에 모인 노조원들은 간호사 근무환경 실태를 폭로하고 병원 측 경영 마인드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간호사들 앞에 높인 벽은 여전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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